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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동화 - 삶의 지혜가 담긴 아름답고 신비한 허브 이야기
폴케 테게토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예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안도현 님의 시 중에 '애기똥풀'이라는 시가 있다. 그 시의 전문은 이렇다.
애기똥풀
안도현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 애기똥풀을 몰랐다는 안도현 님의 솔직한 고백처럼 나 역시도 스물 아홉이 될 때까지 봄철 길가에 잘디 잘은 노란 꽃이 피는 것은 보았으되 그들의 이름이 '애기똥풀'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그저 그들은 내게 '들풀'이고 '들꽃'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람은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우리 땅에, 우리 주변에 나는 작은 풀과 나무들에 대해서 차츰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이제 그들 중 몇몇이나마 제 이름을 불러 줄 수 있으므로, 그들은 내게로 와서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으므로...
그런 맥락에서 폴케 테게토프의 <식물동화>는 읽어 보기 전부터 참으로 부러운 책이었다. 우리 나라에도 이처럼 식물에 얽힌 전래동화들이나 식물과 연관 지어 만들어진 창작 동화들이 있을 테지만 내가 쉽게 꼽을 수 없을 만큼 그닥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처럼 식물 동화들을 발굴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첫 장을 넘기게 되었다.
'쉽게 읽히는 허브 백과사전', 이것이 내가 <식물동화>를 읽고 받은 전체적인 인상이다. 동화보다는 식물쪽에 방점이 찍힌 느낌이랄까? 허브의 특징이나 모습을 두고 쉽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허브들을 주변에서 많이 접할 수만 있다면 백과사전을 찾지 않아도 그 모습만 보고도 쉬이 효능과 특징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또한 이 책의 그림들은 자꾸 책을 열어서 또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것들이다. 책 전체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판화 그림은 동화책 답게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 같은-'꿈이 뭉글뭉글 피어나는 듯한'이라고 말하고 싶다-대채로운 느낌이다. 예를 들어 '짧은 다리 용의 딸꾹질'에 나오는 짧은 다리 용이 거리를 헐레벌떡 뛰어다니며 딸꾹질을 하는 모습(p51)은, 안쓰럽지만 너무 귀엽다. '페루에서 솟아오른 불꽃'에 나오는 여러 가지 색의 불꽃이 보름달이 크게 떠 있는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p77)에서는 그 불꽃들이 대장장이 청년의 사랑을 축복해 주는 축포 같다. 그 밑에 '사랑의 꽃'을 발견하고 환희에 차서 뛰어가는, 검은 그림자 뿐인 대장장이 청년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고 맘에 드는 그림은 페이지 99쪽에 있는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는 장면을 그려놓은 것이다. 이 그림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애상적인 느낌을 준다. 큰 배경 위에 검은색 원이 있고, 그 지구 같은 원 안에 흰 민들레가 있고...
다만 아쉬운 점은, 바질이나 회향처럼 이름이 익숙하거나 우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양의 식물들이라 이름부터 너무 생소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사진은 없고 그림만 두어컷 실려 있어 동화로 인해 저절로 얻어지는 지식이 있어도 실제 알아보고 활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찻집이나 상점에서 '페퍼민트' '레몬밤(멜리사)'라고 쓰여져 있으면 "아, 나 저거 <식물동화>에서 봤어!"하고 반가워하면서 마셔 본 후 '음, 이게 책에서 본 그 맛이란 말이지...?'하고 음미해 보는 정도로 그치게 될 것 같다. 나의 생각으로는 실제로 이 식물들과 함께 생활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빛날 것 같은데... <식물동화>는 동화면서도 그만큼 상세하고 알기 쉽게 허브에 대해 풀어 놓았다는 얘기다. 이는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이 보완해 주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서도.
사실 '레몬밤'의 경우 일반 찻집에서 흔하게 파는 차는 아니지만-옛날에 비해서는 그래도 요즘 많아졌지만-내가 꽤 좋아하는 차다. 더운 물을 붓고 나면 은은하게 방안을 맴도는 레몬의 향이 무척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차를 꿀꺽 삼킬 때 입에서 코로 훅 밀어 올라오는 더운 레몬의 향도 좋고, 마신 후 피곤이 풀리는 듯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도 좋고... 이 책에는 '멜리사'란 이름으로 실려 있다. 그래서 아나스타시우스 수사가 숲의 도둑 두목을 멜리사로 혼내 주는 이야기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나중에 친구들과 다시 찻집에 가게 되면, 언제나처럼 나는 레몬밤 차를 마실 거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같지만 이후의 하나는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며 싱거운 수다를 떠는 대신, 이제는 <식물동화>에서 봤노라며 재미난 허브 이야기를 펼쳐 주련다. 그러면 우리들이 마시는 허브 차가 더욱 사랑스럽고 맛있어 질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