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단층집 짓기 - 작게 지어 넓게 쓰는
엑스날러지 엮음, 이지호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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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직접 지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지니며 사는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건축·인테리어에 관한 정보나 책을 들여다보는 편이다. 최근 <작게 지어 넓게 쓰는 멋진 단층집 짓기>를 읽어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책의 저자가 일본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플러스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작은 토지 면적에 집을 짓는 게 일반화 되어 있는 일본의 주택 건축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것에 중점을 둘 거란 생각에서다. 60채 이상의 집을 분석해서 만든 책이라는 책 소개를 보고 난 후, 얼마나 멋진 아이디어로 아담한 단층집 공간을 구성해놓았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펼친 책이다.


   책을 펼쳤을 때 목차보다 먼저 나를 반기고 있었던 건 '멋진 단층집을 만드는 방법'이란 제목 아래 그려진 두 페이지에 걸친 도면 일러스트였다. 책의 핵심을 모아 한눈에 알기 쉽게 축약해놓은 듯한 일러스트와 간결한 말풍선 설명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 어떨지 -이제 막 첫 페이지를 펼쳤음에도-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다. 그건 바로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할 때까지 도면 일러스트와 사진, 간결한 설명을 통해 요점만 실어놓은 이 책의 편집 방식은 읽는 내내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작게 지어 넓게 쓰는 멋진 단층집 짓기>는 크게 3장으로 나뉘어 있다. 각 장에는 단층집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조언이 실려있다. 1장은 '단층집의 모범 답안'이란 큰 주제 아래 멋진 단층집을 짓는 데 도움이 되는 10가지 모범 답안이 나와 있다. 2장은 '단층집 설계의 고민 해결' 파트인데, 단층집을 지을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비용, 구조, 온열 환경, 내진 성능, 방범 등에 관한 해답이 주를 이룬다. 끝으로 3장에서는 '거주 만족도를 높이는 단층집의 작은 테크닉'이란 주제로 정원, 현관, 욕실, 천장, 수납공간, 밝기, 유지보수, 프라이버시 등 다방면에서 뽑아온 단층집 짓기에 관한 테크닉을 아낌없이 수록해놓았다.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항상 이층집만 떠올리며 살아왔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단층집이 이층집보다 더 매력 있었으면 있었지, 절대 덜하진 않음을 느꼈다. 집을 지을 때 부지가 너무 협소해서 반드시 이층으로 지어야 하는 게 아니라면, 단층집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이 책이 알려줬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 발견한 단층집의 여러 가지 매력 중 인상 깊었던 점 세 가지만 꼽자면 첫째로 정원이나 외부와의 연결성이 좋다는 것, 둘째로 지붕의 형상을 비교적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특성에서 오는 이득(채광 확보 등)이 꽤 된다는 것, 셋째로 상하층으로 이동할 일이 없어 집안일 동선을 간결하게 정리하기 좋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건축법들이 다수 있는데, 꼭 단층집에서만이 아니라 이층집을 지을 때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이디어여서 마음에 들었다.

   내가 집에서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채광'인데, 이 책으로 천창이나 고창을 활용해 집안을 환하게 만드는 법, 중정을 이용해 건물 밀집 지역에서도 채광을 확보하는 법 등 채광에 관한 다양한 건축법을 배울 수 있었던 점 또한 좋았다. 특히 중정은 가족의 쉼터나 놀이터로, 빨래 건조 공간으로, 건물 밀집 지역에선 채광을 확보함과 동시에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등 개방감을 느끼게 하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이점과 매력을 갖고 있다. 내가 집을 짓는다면 단층으로 짓든 2층으로 짓든 이 중정을 꼭 넣고 싶어졌다. 만약 중정을 넣지 못한다면 이 책 초반에서 소개한 '루프 발코니'라도 꼭 넣으리라.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집 중 무릎을 '탁' 쳤던 집 두 곳을 소개하고 싶다. 미야기 현의 '오키노의 집'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해 외벽에 큰 창을 배치하지 않는 대신 방형지붕 중심에 루프 발코니를 두고 이 루프 발코니를 빙 돌듯 고창을 설치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집안 어디서든 하늘을 볼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채광과 통풍 문제도 해결했다. 아이치 현의 '가와라의 집'은 방금 말한 오키노의 집 못지않게 구조가 무척 독특하다. 가와라의 집은 좁은 부지에 담장 없이도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방형지붕을 이용해 건물의 사방을 깊은 처마로 둘러쌌는데, 이와 더불어 바닥 높이를 1미터 높이고 외벽의 창문을 낮게 설치했다.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흔하게 사용되는 장지문이나 나무 없이 처마와 바닥의 높이를 조절함으로써 커튼이 필요 없는 실용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아 참, 채광은 천창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이 두 집 외에도 마음에 드는 집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가 벅찰 정도이다. 하지만 취향이 확실한 나는, 물론 이 책의 모든 집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다. 바닥의 높낮이 차이로 공간을 나눈다는 '모범 답안 07' 속에 예시로 나온 세 집의 아이디어는, 뭐 분명 근사해 보이긴 하다. 하지만 높낮이로 공간을 나누면 사람이든 로봇청소기이든 청소하게 될 때 반드시 불편이 따를 것이다. 또한 집안 공간 중 거실·식당의 바닥을 400밀리미터 낮추면 독특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주기는 하겠지만, 사람이 복도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며 발생할 먼지가 다른 공간보다 푹 꺼진 거실·식당의 바닥에 모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에 비염이나 먼지에 예민한 사람들에게 이 방식은 최악이 될 수도 있다.



   방금 저렇게 막 단점처럼 써놓긴 했어도, 다른 공간보다 810밀리미터를 낮춰 멋지게 만든 거실 소파의 실제 사진을 보고 있으면 포근하면서도 아늑한 그 분위기에 저기에 한 번 앉아나 보고 싶단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한 집 중 멋지지 않은 단층집은 하나도 없다. '모범 답안 09'에 수록된 지바 현의 '사쿠라의 집Ⅱ'은 집 어디에서나 엽록소 가득한 식물을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이게 집인지 펜션인지 헷갈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2장의 '다세대 주택' 편에서 3세대가 평면 공간에서 느슨하게 연결되어 편안한 거리감으로 생활하고 있는 멋진 집을 보고 있노라니, '단층집은 최적의 다세대 주택이 될 수 있다'는 책 속의 글귀가 바위처럼 마음속에 쿵 와닿았다. 층간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독주택에서 하루빨리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두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읽은 까닭에, 생각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아서 마구 쏟아내다 보니 두서없는 글이 된 것 같다. 끝으로 딱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여기에 정보를 너무 많이 옮겨놓으면 출판사에 실례가 될까 봐 일부러 소개하지 않은 3장은, 작은 건축 테크닉(내가 평소 꿈에 그리던 현관이 딱, 있어서 반가웠던!)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에 관한 엑기스가 있기에 반드시 읽어보기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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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위대한 스캔들 - 세상을 뒤흔든 발칙한 그림들 50, 마사초에서 딕스까지
제라르 드니조 지음, 유예진 옮김 / 미술문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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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캔들(scandal).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일단 인상부터 찌푸리게 되지만, 미술의 영역에서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미술계에서의 스캔들은 작품의 가치가 올라감과 동시에 작가의 명성이 드높아지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스캔들은 무질서를 질서로 탈바꿈시킨다.

하지만 이때의 질서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 질서다.

새로운 질서는 모든 논리로부터 자유로우며,

조롱과 모순, 기괴함과 참신함을 혼합하고,

예술 작품에 대한 비평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 피에르 카반, <예술 스캔들> (본서 17쪽)


   프랑스 작가 제라르 드니조가 이 '스캔들'에 주목하여 제작한 책 <미술의 위대한 스캔들>. 저자는 마사초의 1426년작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에서 시작하여 오토 딕스가 1932년에 선보인 <전쟁>까지, 즉 15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던 회화 작품 중 50점을 골라 되짚어본다.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나 펠리시앙 롭스의 [창부 정치](1878),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1800)와 같이 스캔들을 일으켰다고 익히 들은 유명한 회화 작품들을 비롯해,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1857)처럼 "아니 이 작품이 스캔들의 중심에 있었다고?" 싶은 작품도 꽤 되어서, 작품별로 스캔들의 이유를 알아가는 재미가 무척 쏠쏠했던 책이다.



   저자는 먼저 책의 서문에서 스캔들의 의미와 미술 스캔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성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캔들의 발생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는 바로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주제와 기법이다. 스캔들의 방식 또한 무척 다양한데 그중 여성의 나체, 폭력성, 여성 동성애, 민중을 주제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또한 시대 배경에 따라 스캔들의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종교처럼 과거엔 막강했던 분노의 주체가 그 힘을 잃고 침묵하게 되기도 한다.

   종교계 인사들과 아카데미, 언론, 권력자들은 본인들의 특권을 풍자하거나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 싶으면, 혹은 단지 낯설고 새롭다는 이유로 조롱과 혹평을 쏟아내고 도덕성을 운운하며 새로움을 선사하는 작품을 깎아내리기 바쁘다. 새로운 것에 대한 몰이해로 기존 질서를 옹호하느라 자신들이 얼마나 편협하며 우둔한 짓을 하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작품에 진정성을 담으면 때로 그것은 시위를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화가는 자신이 받은 인상을 그대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기만을 선택했을 뿐이다."


-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를 향한 비난에 맞서며


"흰색의 교향곡이 아니라니··· 원피스는 누렇고··· 머리는 적갈색이라나.

그렇다면 바장조 교향곡에는 다른 음은 전혀 없고 오로지 파, 파, 파, 이렇게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바보 얼간이 같으니!"


- 제임스 맥닐 휘슬러, [흰색의 교향곡 1번, 하얀 소녀]를 향한 공격적인 기사를 읽고 짜증을 표출하며


"고상할 수 없고, 위선적일 수 없고, 나는 롭스다."


- 펠리시앙 롭스, [창부 정치]를 향한 비방에 당당히 응수하며


   평단과 언론, 대중의 몰이해에 맞서 화가들이 보인 반응들은 실로 다양하다. [흰색의 교향곡 1번, 하얀 소녀](1862)의 전시를 거절하는 아카데미의 반응에 이 작품을 그린 휘슬러는 오히려 즐거워했다. 또한 미래주의 화가들은 이전의 화가들과는 다르게 스캔들을 선전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대중의 분개를 두려워하기는커녕 되려 그런 반응이 나오도록 도발했다.

   하지만 이렇게 스캔들을 즐긴 화가들보다는 스캔들로 인해 괴로움을 겪은 화가들이 대체적으로 더 많았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1536-41)은 여러 교황으로부터 계속해서 비난 받은 끝에 미켈란젤로 사후 그의 제자가 작품 일부를 수정해야 했으며, 베로네세는 비난 속에 열린 종교 재판소의 판결로 작품 제목을 [최후의 만찬]에서 [레비 가의 향연]으로 변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비너스와 프시케](1864)나 앙리 제르벡스의 [롤라](1878) 등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살롱전에서 거부당한 그림들도 있다.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1912)는 작품의 소재나 기법 때문이 아닌 제목이 도발적이라는 이유로 '앵데팡당전'에 거부되었고, 이는 뒤샹에게 오랫동안 상처로 남았다. [아일라우 전투의 나폴레옹](1807-08)을 그린 앙투안 장 그로는 초기의 긍정적인 평가에서 돌변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비난의 뭇매를 맞았고, 도덕적·예술적 혼란에 괴로워하다 센강에 투신하여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분할주의와 점묘법의 창시자인 조르주 쇠라조차 스캔들에서 안전하지 못했는데, 그의 작품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6)는 1886년 5월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에 전시된 후 "이집트 환상곡", "잘못 만든 마네킹"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한편 누드의 백인 여자와 옷을 입은 채 그 곁에 있는 흑인 여자라는 동일한 조합이 등장하는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1863)와 펠릭스 발로통의 [백인 여자와 흑인 여자](1913)는 비슷한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화가의 의도가 다르기에 두 작품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며, 그래서 스캔들의 이유도 다르다. [올랭피아]는 외설스러운 매춘부를 그린 타락한 그림이라는 비난을, [백인 여자와 흑인 여자]는 내밀한 분위기에 있는 두 여성이 동성애를 암시하는 듯 모호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화가가 추구한 것과는 동떨어진 의도를 들먹이며 예술가를 괴롭히는 종교인과 평론가, 기자들, 대중을 보며 그들이 일으킨 여러 스캔들의 어이없는 이유 때문에 이따금 실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악의적인 평론들이 있었던 반면, 소수이긴 하지만 호의적인 지지자들의 응원 역시 있었던 덕에 비난을 받는 화가들이 그나마 작품 활동에 전념할 힘을 얻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살롱전이나 여타 전시회에서 거부되어 스캔들을 일으키거나 제작 당시에 스캔들을 터뜨렸던 그림만 조명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1866년작 [잠]은 개인 소장품으로 존재하다가 20세기가 되어서야 대중에게 첫선을 보였기에 적어도 화가 생전엔 비난받지 않았다. 부유했던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자신의 아파트 안에서 그린 [소파 위의 누드](1882)를 그린 후 평단과 대중에게 그림을 굳이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스캔들을 모면했다. 브뤼셀의 '20인전'에 전시될 예정이었던 제임스 앙소르의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1888)은 스캔들을 일으킬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었음에도 전시회가 개최되는 순간까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해 화가가 출품을 포기함으로써 스캔들을 모면한다(푸하핫-). 뒤 누이의 [백인 노예](1888)는 스캔들을 일으킬만한 소재로 구성되어 있었음에도 오히려 이 작품이 공개된 당시엔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후대 평론가로부터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저자는 스캔들이 발생한 당시 시대적 상황과 전개 양상에 관해 차근차근 설명하며 나를 -현재의 시각에서 벗어나게 함과 동시에- 화가가 마주한 현실로 데려가 주었다. 지금 나의 시선으로 그림을 보았을 때 느껴지고 읽어지는 것과 살롱전에 전시되었을 때 평단과 대중이 느끼고 읽어냈던 것의 간극, 저자는 이 간극의 존재를 짚어주며 당시 평단과 대중은 왜 그렇게 그 그림을 혐오하고 멸시했는지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그림을 구석구석 확대해서 설명을 덧붙이고, 관련 사실을 인용해놓으며 독자로 하여금 그림을 심층적으로 해석해볼 기회를 가지게 한다. 이는 내가 이 책을 더욱 괜찮게 느꼈던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실제로 경찰과 정부, 상인이 대중은 무관심을 보인 작품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면 예술 스캔들은 니체의 신과 마찬가지로 죽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설사 죽음이 아니더라도 스캔들은 그것을 정의하던 위배를 반복함으로써 결국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로 전락했다.


- 본서 221쪽


   저자는 맺음말에서 대중의 무관심으로 인해 현재 "스캔들은 죽었다"라고 말한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예술가와 에이전시, 대형 갤러리, 큐레이터, 아트딜러 등 미술계 주체들이 짜고치는 스캔들로 작품값 올리기에 혈안이 된 현대의 미술계를 생각하면 그들을 향한 대중의 무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과거의 예술가들이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스캔들로 곤혹을 치르렀다면, 현대의 예술가들은 제대로 된 스캔들을 못 만들어서 곤혹을 느낀다. 저자도 이를 짚고 있듯 미술 스캔들이 힘을 잃은 현재의 이 상황은 스스로 무덤을 판 예술가들의 자업자득일 테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주프랑스 터키 대사 '칼릴 베이'라는 사람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쿠르베에게 [세상의 기원](1860)과 [잠]을 의뢰하고, 앵그르의 [터키탕](1862)을 구입한 이 사람 말이다. 세 작품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여성의 신체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고 그림의 분위기가 무척 에로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였던 쿠르베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칼릴 베이의 요구를 잘 들어주었다. 책에 실린 [세상의 기원]을 보고 있노라니 쿠르베의 한결같은 신념이 너무 지나치게 굳건했음이 괜히 원망스럽다. 아닌가. 원망 대신 호색가의 기호 덕분에 이와 같은 -적나라한- 명작이 탄생하였음에 기뻐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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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어린이작가정신 클래식 9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상남 옮김, 찰스 산토레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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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살 때였더라. 아주아주 어린 꼬꼬마였을 무렵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그림 동화로 처음 읽고 느꼈던 그 충격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슬픈 엔딩에 가슴이 너무 아려 거의 한 달 동안 <인어공주> 생각만 했다. 어린이용으로 쉽고 짧게 편집된 버전이었음에도, 어린 나는 너무 슬프게 느꼈었나 보다. 뭔가에 홀린 듯 멍하니 한 달을 보냈으니 말이다.

   나이를 좀 더 먹은 후 원문 그대로 읽은 <인어공주>는 여전히 슬프게 다가왔다. 어른의 눈으로 다시 만난 <인어공주>는 지금의 사고방식과는 다소 동떨어진 설정이 눈에 살짝 들어오긴 했지만, 어릴 때 느꼈던 감동은 그대로였다.


막내 공주는 자기 목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막내 공주는 멋진 왕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왕자와 함께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을 갖고 싶었다.


- 본서 21쪽


   안데르센 동화 중 마음이 아프게 느껴지는 동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항상 이 <인어공주>를 가장 먼저 꼽을 정도로 인어공주의 사랑은 지금도 너무 슬프다. 그래서 가슴 아픈 이 동화를 한동안 읽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략한 부분이 없는 원작 내용과 찰스 산토레의 그림으로 완성된 <인어공주>를 본 순간 그 생각이 싹 사라져버렸다.



   그린이 찰스 산토레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많은 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뉴욕 현대미술관과 필라델피아 자유도서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의 출중한 그림 실력은 본서 <인어공주>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각기 다른 색깔과 무늬를 지닌 물고기와 바다의 물결, 그리고 물거품은 그 디테일이 수준급이어서 넋을 잃게 만든다. 여섯 인어공주들의 아름다움은 글로는 표현하기 힘들 만큼 아름답다. 섬세하게 표현한 인어공주의 검고 긴 머리카락과 우아한 몸의 곡선, 매력적인 표정, 비늘, 화려한 장신구들은 찰스 산토레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여준다. 그의 뛰어난 표현력은 이 환상적인 바닷속 공간이 어딘가에 실재하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짙고 푸른 녹색 빛깔로 에워싸인 차가운 바다 공간과 대비되는, 노란색과 붉은 계열 색깔로 표현된 범선 및 지상 궁전의 색감은 인어들의 세상과 인간들의 세상을 극명히 나누고 있다.


인어공주는 다시 한번 왕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곧바로 온몸이 물거품으로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 위로 태양이 솟았다. 따뜻한 햇볕이 바다의 차디찬 물거품 위로 부드럽게 쏟아졌다. 인어공주는 죽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머리 위로 빛나는 태양과 이리저리 떠다니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공기 방울 수백 개를 보았다.


- 본서 42쪽



   인어공주의 맹목적인 사랑과 왕자의 이중적인 태도 및 배신, 큰 희생이 따르는 거래를 제안하는 마녀 등 인어공주를 애절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요소들은 때때로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어공주> 이야기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인어공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목소리를 버릴 만큼 뜨거운 사랑을 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진실했으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선택한 왕자의 심장을 찌르고 다시 인어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물거품이 되는 걸 선택했다.

   어린 시절 이 동화를 읽지 않았다면, 나도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인어공주의 사랑은 참으로 순수해서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게 곧 인어공주에게 독이 되었듯 나도 그렇게 쓰디쓴 맛을 본 경험이 있다. 찰스 산토레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인어공주>는 이러한 쓴맛도 달콤한 맛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진실한 사랑이라는 건, 달콤 씁쓸한 초콜릿처럼 원래 그런 것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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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 마블 1 - 비정상 시공그래픽노블
G. 윌로우 윌슨 지음, 애드리언 알포나 그림, 이규원 옮김 / 시공사(만화)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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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한국의 디즈니+에서 드라마 [오비완 케노비]와 [미즈 마블] 방영이 시작되었다. 그중 드라마 [미즈 마블]은 2014년부터 연재되고 있는 마블 코믹스에서 많은 설정을 따왔다. 한국에 출간된 미즈 마블 코믹스 중 나는 <미즈 마블 VOL. 1: 비정상>을 읽어보았다. <미즈 마블 VOL. 1: 비정상>에는 G. 윌로우 윌슨이 쓰고 애드리언 알포나가 그린 'Ms. Marvel Vol. 3 #1-5'와 'All-New Marvel Now! Point One #1'의 미즈 마블 수록분이 실려 있다.


   드라마 [미즈 마블]의 포스터 중 노을이 지는 도시를 배경으로 가로등 위에 미즈 마블이 앉아 있는 모습의 포스터는 코믹스 'Ms. Marvel Vol. 3 #5'의 표지에서 따온 것이다. 드라마의 엔딩 크레딧 속에 코믹스 'Ms. Marvel Vol. 3 #1'의 표지이자 한국에 발매된 <미즈 마블 VOL. 1: 비정상>의 표지이기도 한 그림이 그대로 등장할 정도로 원작 코믹스와 드라마 [미즈 마블]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코믹스와 드라마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하기 전에, 지난 주말에 읽어본 마블 코믹스 <미즈 마블 VOL. 1: 비정상>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본다.



   게임에 열정적이며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는 16살의 평범한 소녀 카말라 칸. 그녀는 부모님, 오빠와 함께 미국 뉴저지 주의 저지시티에 살고 있으며 파키스탄계 미국인 2세이자 무슬림 소녀이다. 카말라는 팬픽션을 직접 만들 정도로 슈퍼히어로에 푹 빠져있는데, 특히 캡틴 마블의 광팬이다. 이런 그녀를 이해하는 친구는 브루노와 나키아 뿐.

   카말라는 나이가 듦에 따라 학교의 다른 여자애들처럼 자유분방하게 살지 못하고 이슬람교의 율법과 엄마가 제시하는 규칙에 얽매여 사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 무슬림 배경을 가진 소녀로서 왜 자신은 고기를 먹지 못하고 채소 도시락을 싸 다녀야 하는지, 자기만 운동 수업을 왜 빠져야 하며 이상한 휴일은 왜 지켜야 하는지, 다른 애들은 자유로이 쏘다니는 파티에 왜 자신은 가지 못하는지 등. 고민이 많다. 카말라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마치 지구상에 본인과 본인의 고민 외엔 그 무엇도 중요한 게 없다고 느끼는- 사춘기 소녀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카말라는 파티에 가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몰래 강변 파티에 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조 짐머, 브루노와의 사이에 각각 작은 마찰을 겪고, 기분이 상해 파티에서 벗어나려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던 중 테리젠 안개(인휴먼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초능력을 각성하게 만드는 미스트)에 노출되어 기절한 카말라는 캡틴 마블과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하는 환각을 본 후 '판타스틱 4'의 리드 리처즈처럼 신체를 변형시킬 수 있는 초능력과 더불어 자가 치유 능력을 얻게 되는데...!

   그토록 바랬던 슈퍼히어로로서의 삶이건만, 당장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신체 변형 능력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누는 법부터 연습하기 급급한 카말라. 조 짐머의 목숨을 구한 일로부터 보람을 느낀 카말라는 이 능력을 갈고닦아 사람들을 돕기로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진정한 자아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다, 처음 변신했을 때의 코스튬-1대 미즈 마블인 캐럴 댄버스를 쏙 빼닮은 금발의 미즈 마블 코스튬-에서 벗어나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살린 코스튬으로 정립해간다.

   능력을 써먹기 위해 몰래 외출하느라 엄마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가고, 브루노의 도움을 받아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며 브루노의 동생 '빅'이 휘말린 모종의 사건을 해결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카말라. 빅이 언급한 '인펙터'라는 자는 대체 누구이며, 카말라는 과연 저지시티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인펙터에게 대항할 만큼의 힘을 각성할 수 있을까?


난 그저 다른 히어로의 아류가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야···.

···나는 최고의 카말라가 되기 위해 여기 있는 거야.

지금이 그 출발점이야.


- 본문에서



   코믹스 <미즈 마블 VOL. 1: 비정상>은 십대 소녀를 다루고 있는 코믹스답게 발랄하면서도 가벼운 유머가 잘 버무려져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의 자아정체성에 관한 끊임없는 고뇌에 나도 그 고민에 진지하게 동참하게 되는,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만화이다. 카말라 칸이라는 캐릭터가 내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슬림 가족의 신조를 따르는 것에 수동적이고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막상 도덕적으로 중요한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는 평생 부모님에게 들어왔던 쿠란의 교훈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선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카말라가 가진 이런 모순적인 모습과 결점, 무슬림이면서도 머리카락을 감추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는 성향은 캐릭터를 생생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데 일조한다.


   마블 코믹스 최초 무슬림 여주인공이자 최초의 단독 무슬림 주인공인 카말라 칸. 코믹스 <미즈 마블 VOL. 1: 비정상>과 드라마 [미즈 마블]의 큰 차이점이라면 바로 '능력' 면이다. 드라마는 원작과 다르게 테리젠 안개가 등장하지 않고, 그 대신 할머니의 팔찌로 능력을 쓰게 된다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신체 변형이 아니라 에너지를 발산해 만든 구조물로 능력이 발현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더해 드라마에선 원작의 강변 파티가 '어벤져콘'으로 대체되었다. 그 외 카말라가 원작에선 딱히 왕따로서의 이미지가 부각되지 않는 반면, 드라마에선 학교 또래 아이들이 대놓고 카말라를 무시하는 듯한 묘사를 넣어 카말라의 아웃사이더로서의 면모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또한 원작에서 캐럴 댄버스가 초대 미즈 마블에서 캡틴 마블이 되면서 카말라 칸이 2대 미즈 마블이 되었지만, 드라마는 MCU 설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카말라 칸이 1대 미즈 마블이 되었다.


   방영 초기인 드라마 [미즈 마블]은 각종 애니메이션 효과를 이용한 기발한 연출과 플롯 전개를 통해 코믹스보다 훨씬 발랄한 분위기를 전면으로 내세워 두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코믹스 또한 수준 높은 작화 퀄리티로 만만치 않게 마음을 사로잡으니, 앞으로 4주간 방영될 드라마 [미즈 마블]을 보면서 코믹스를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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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빛 그림 아이
숀 탠 지음, 김경연 옮김 / 풀빛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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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너에게 막대기를 던졌다.

너는 막대기를 도로 가져왔다.

나의 손이 너의 귀를 쓰다듬었다.

너의 코가 내 무릎 뒤쪽을 스쳤다.

어느새 우리는 나란히 걷고 있었다.

마치 언제나 나란히 걸었다는 듯이.


- 본문에서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거나 막대기를 던져대던 '나(인간)'와 '너(개)'. 어느 날 이들은 우연이 놓아준 다리를 통해 서로 교감하게 되고, 더 이상 서로를 적대하지 않게 됩니다. 머리 위로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과 드넓은 평야 속에서 개는 '이 세상은 우리 거야!'라고 외치고, '나'는 그런 개의 곁에서 온 세상을 가진 듯한 기분으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많은 순간을 함께 헤쳐 나갑니다.

   시간이 흘러 개가 세상을 먼저 떠났을 때 '나'는 개를 저 아래 강으로 데려갑니다. 그 후 '내'가 죽었을 때 개는 강변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이 둘은 서로를 만나지 못한 채, 끝없이 흘러가는 강처럼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소용돌이를 거쳐 갑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요. 인류의 흥망성쇠 속 수많은 시대의 강변을 거쳐, 우연이 또 한 번 다리를 놓아 '나'와 개는 다시 함께하게 됩니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인해 오염된 자연과 '시간은 그저 우리에게서 도망치는 것'만 같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모습을 한 현재의 세상에서 말이죠.

   하지만 '나'와 개는 걱정 없습니다. 개는 언제나 그랬듯 '세상은 우리 거야!'라고 외치고, '나'는 그런 개와 나란히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갈 테니까요.



   방금까지 제가 정리하고 해석해본 내용은 숀 탠의 그림책 <개>의 줄거리인데요. 이 그림책은 2018년에 출간한 숀 탠의 <이너 시티 이야기>에 등장하는 25가지 동물 이야기 중 '개'의 이야기만 따로 떼어 만든 것입니다. 숀 탠은 과거 제가 몹시 힘들었을 때 그의 작품 <빨간 나무>를 틈틈이 읽으며 위로받은 것으로 인연이 닿은,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랍니다.


   저는 동물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너 시티 이야기>를 아직 읽어보지 못하고 이렇게 <개>를 먼저 만나보게 되었는데요. 인간과 개의 유대 관계와 인간에 의해 변화하고 오염되어 가는 자연의 모습을 글자를 최대한 배제하고 그림만으로 전달하는 숀 탠의 탁월한 표현력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책을 덮은 후, 한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인간을 따르는 개와 함께 이 지구에서 존속하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무엇부터 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더구나 오늘은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환경의 날이어서 그런지 책의 내용이 좀 더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숀 탠의 <개>는 다소 모호하면서도 상징성을 가진 그림, 축약해서 표현한 텍스트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끔 만들어 놓은 점이 꽤 매력적인 작품이었는데요.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의 해석이 어떨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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