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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ㅣ 풀빛 그림 아이
숀 탠 지음, 김경연 옮김 / 풀빛 / 2022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너에게 막대기를 던졌다.
너는 막대기를 도로 가져왔다.
나의 손이 너의 귀를 쓰다듬었다.
너의 코가 내 무릎 뒤쪽을 스쳤다.
어느새 우리는 나란히 걷고 있었다.
마치 언제나 나란히 걸었다는 듯이.
- 본문에서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거나 막대기를 던져대던 '나(인간)'와 '너(개)'. 어느 날 이들은 우연이 놓아준 다리를 통해 서로 교감하게 되고, 더 이상 서로를 적대하지 않게 됩니다. 머리 위로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과 드넓은 평야 속에서 개는 '이 세상은 우리 거야!'라고 외치고, '나'는 그런 개의 곁에서 온 세상을 가진 듯한 기분으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많은 순간을 함께 헤쳐 나갑니다.
시간이 흘러 개가 세상을 먼저 떠났을 때 '나'는 개를 저 아래 강으로 데려갑니다. 그 후 '내'가 죽었을 때 개는 강변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이 둘은 서로를 만나지 못한 채, 끝없이 흘러가는 강처럼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소용돌이를 거쳐 갑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요. 인류의 흥망성쇠 속 수많은 시대의 강변을 거쳐, 우연이 또 한 번 다리를 놓아 '나'와 개는 다시 함께하게 됩니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인해 오염된 자연과 '시간은 그저 우리에게서 도망치는 것'만 같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모습을 한 현재의 세상에서 말이죠.
하지만 '나'와 개는 걱정 없습니다. 개는 언제나 그랬듯 '세상은 우리 거야!'라고 외치고, '나'는 그런 개와 나란히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갈 테니까요.

방금까지 제가 정리하고 해석해본 내용은 숀 탠의 그림책 <개>의 줄거리인데요. 이 그림책은 2018년에 출간한 숀 탠의 <이너 시티 이야기>에 등장하는 25가지 동물 이야기 중 '개'의 이야기만 따로 떼어 만든 것입니다. 숀 탠은 과거 제가 몹시 힘들었을 때 그의 작품 <빨간 나무>를 틈틈이 읽으며 위로받은 것으로 인연이 닿은,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랍니다.
저는 동물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너 시티 이야기>를 아직 읽어보지 못하고 이렇게 <개>를 먼저 만나보게 되었는데요. 인간과 개의 유대 관계와 인간에 의해 변화하고 오염되어 가는 자연의 모습을 글자를 최대한 배제하고 그림만으로 전달하는 숀 탠의 탁월한 표현력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책을 덮은 후, 한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인간을 따르는 개와 함께 이 지구에서 존속하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무엇부터 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더구나 오늘은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환경의 날이어서 그런지 책의 내용이 좀 더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숀 탠의 <개>는 다소 모호하면서도 상징성을 가진 그림, 축약해서 표현한 텍스트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끔 만들어 놓은 점이 꽤 매력적인 작품이었는데요.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의 해석이 어떨지 문득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