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쟁 - 제2차 세계대전은 어떻게 중국의 민족주의를 형성하는가
래너 미터 지음, 유강은 옮김 / 언더스탠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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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전쟁』- 중국은 왜 아직도 전쟁 이후를 살고 있는가,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 현재의 국가를 만든다


CHINA’S GOOD WAR: How World War II Is Shaping a New Nationalism 


✍🏻 저자 : 래너 미터 Rana Mitter 

✍🏻 옮긴이  : 유강은 

🏢 출판사 : 언더스탠드


🎯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책이라고 했을 때 나는 중국을 먼저 떠올리지는 않았다. 유럽 전선과 미국, 일본의 기억이 훨씬 익숙했기 때문이다. 현대 중국사를 연구해 온 래너 미터는 바로 그 익숙함의 바깥에서 질문을 던진다. 중국은 왜 지금 다시 전쟁을 말하고, 한때 적이었던 국민당의 항전까지 복원하며, 그 기억을 오늘의 국가 정체성과 국제질서에 연결하는가. 시선은 현재의 중국 쪽으로 옮겨간다.




🔖 제2차 세계대전의 중국 이야기가 일본 침략과 피해의 역사에 무게를 둘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래너 미터는 시작부터 다른 새로은 기준을 말한다. 중국이 전쟁을 설명할 때 핵심에 둔 것은 자유보다 ‘질서’였다는 지점이다. 같은 전쟁을 치렀어도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는 달랐다. 이 차이를 따라가자 익숙했던 연합국의 전쟁 서사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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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오 시대에 주변으로 밀려났던 국민당의 항전이 개혁개방 이후 다시 불려 나오는 과정은 꽤 복잡하다. 공산당이 과거의 숙적을 인정해서라기보다 계급 대신 민족을 묶어낼 더 큰 서사가 필요해졌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충칭의 폭격 기억과 장제스의 흔적이 도시의 공적 기억으로 복원되는 장면을 읽으며, 역사에서 지워진다는 것이 단순한 망각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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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전쟁 기억이 박물관이나 교과서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와 방송, 인터넷, 지역 기념관을 거치며 기억은 계속 모양을 바꾼다. 일본의 야만성을 말하는 듯하다가도 실제로는 오늘의 중국이 어떤 국가이고 싶은지를 비추는 경우가 많다. 과거를 복원하는 일과 현재의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불편하면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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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자신을 단순한 전쟁 피해국이 아니라 1945년 이후 질서를 함께 만든 승전국으로 설명하려 한다. 카이로 회담과 반파시즘 전쟁의 기억이 여기서 중요한 근거가 된다. 경제력과 군사력만 보고 중국을 읽으면 놓치는 것이 있다는 말이 이해된다. 결국 중국이 요구하는 것은 힘의 인정만이 아니라 ‘정당한 강대국’이라는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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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중국의 전쟁 기억을 하나의 선전 공식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학계, 지역 기억, 영화, 인터넷, 외교까지 여러 층으로 나눠 보여준다. 다만 사례가 촘촘한 만큼 중간중간 논지가 흩어져 보이는 구간도 있다. 그래도 중국의 현재를 군사력이나 경제 규모만으로 읽어왔던 독자라면 다른 좌표를 얻을 수 있다. 역사와 현재가 서로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궁금한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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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를 읽다
엘런 F. 데이비스 지음, 손승우 옮김 / 복있는사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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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를 읽다』-  익숙한 말씀 앞에서 다시 낯선 독자가 되는 일

안다고 생각했던 텍스트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순간

Wondrous Depth


✍🏻 저자 :엘런 F. 데이비스 Ellen F. Davis 

✍🏻 옮긴이 :  손승우

🏢 출판사 : 복있는사람



🎯 성서를 오래 읽는 것과 성서를 깊이 읽는 것은 같은 일일까. 『구약성서를 읽다』를 펼치기 전에는 구약 해석과 설교를 다루는 책이니 어느 정도 전문적인 논의를 각오했다. 그런데 엘런 데이비스가 처음 건드리는 것은 지식의 부족보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다. 익숙함이 이해의 증거가 아니라 더 읽지 않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 지적 앞에서 이 책은 설교자를 위한 책이라는 첫인상보다 내가 성서를 어떤 자세로 읽어 왔는지를 묻는 책에 가깝다.




🔖 “텍스트 자체가 정말로 말을 건네 온다”는 폰 라트의 말에서 좋은 설교에는 ‘지적인 모험’이 있다는 표현도 흥미롭다. 이미 배운 내용을 능숙하게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본문 앞에서 설교자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일이라니. 그렇다면 성서를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 때로는 가장 위험한 익숙함이 될 수도 있겠다. 텍스트에 답을 요구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안다고 전제했는지부터 살펴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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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카시아누스가 묘사하는 시편 읽기는 시편을 반복해 기도하다 보면 옛 예언자의 말이 어느 순간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언어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과한 표현처럼 읽혔지만, ‘제2의 본성은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얻는다’는 설명을 지나며 뜻이 달라진다. 시편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과 시편의 언어로 기도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나는 성서의 문장을 이해하려고는 하면서 그 문장이 내 언어가 될 만큼 반복해서 읽고 있는가. 질문은 의외로 단순한 곳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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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의 정밀함’이라는 말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단어를 붙여 놓는다. 성서에 하나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원하는 의미를 마음대로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정답 하나를 확인하고 읽기를 끝내는 것도 데이비스가 말하는 해석과는 거리가 있다. 예측하기 어렵지만 텍스트를 벗어나지 않는 읽기, 낯설게 보되 정밀함을 잃지 않는 읽기다. 특히 익숙한 구절에 “허를 찔릴 각오”가 필요하다는 대목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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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조의 말과 실제로 ‘설교하는’ 설교를 구분하는 장면은 신학적 논의를 꽤 현실적인 자리로 끌어온다. 훌륭한 잔소리는 사람을 몰아세울 수 있지만 마음까지 움직이지는 못한다. 반대로 참된 설교에서는 설교자의 인격과 언어조차 텍스트의 쓰임을 받는다고 한다. “텍스트가 더 빛날 수 있도록 조금 더 여지를 주는 것.”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좋은 설교자의 존재감이 오히려 작아지는 역설이 보인다. 말하는 사람이 앞에 서 있는데도 결국 듣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말솜씨가 아닌 본문이어야 한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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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런 데이비스는 구약을 설명해야 할 오래된 자료보다 지금도 말을 걸어오는 현존으로 다룬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성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보다, 익숙한 본문이 다시 낯설어질 자리를 남겨 두고 있는지가 더 신경 쓰인다. 다만 강연을 바탕으로 한 만큼 설교와 주해의 논의가 촘촘해 일반 독자에게는 몇몇 대목의 진입 장벽이 있다. 그럼에도 성경을 여러 번 읽어 이제는 내용을 안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오히려 꼭 읽어주길 바란다. 다음번에는 익숙한 한 구절 앞에서도 조금 다르게 서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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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아이템 도감 - 장면에 서사를 더하는
야마우타 지음, 송해영 옮김 / 모스그린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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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아이템 도감 - 장면에 서사를 더하는』- 사물 하나가 장면의 이야기를 바꾸는 순간,무엇을 그릴지보다, 왜 그곳에 두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책


物語が動き出す演出アイテム図鑑 387アイテム+演出例 


✍🏻 저자 : 야마우타 (山うた) 

✍🏻 옮긴이 : 송해영

🏢 출판사 : 모스그린



🎯 분류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아이템을 왜 그려 넣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사물을 골라 넣는 일이 장식이 아니라 장면의 의미를 정하는 일이라면, 내가 평소 그림이나 이야기를 볼 때 놓친 것도 꽤 많았을 것 같다.





🔖 책을 펼치기 전에는 387개의 아이템을 정리한 자료집에 가까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첫 장에서부터 물건을 ‘그릴 대상’이 아니라 ‘이야기를 움직이는 장치’로 보는 시선이 먼저 들어온다. 카페 장면에 메뉴판, 서빙 로봇, 반쯤 남은 음료를 더하자 인물들의 시간과 관계가 생긴다. 사물이 많아진 게 아니라 장면 안에 이유가 생긴다는 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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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없음’을 벚꽃이나 비눗방울, 아침 이슬, 필름 카메라 같은 아이템으로 풀어내는 대목은 꽤 흥미롭다. 감정을 직접 그리는 대신 사라지는 것, 흔들리는 것, 빛을 통과시키는 것을 고른다. 그 선택만으로 장면의 온도가 달라진다. 특히 무엇을 넣을지보다 왜 넣는지를 먼저 정하라는 방식은 그림뿐 아니라 글의 장면을 구상할 때도 그대로 옮겨볼 수 있겠다. 사물을 보는 순서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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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반지와 오래된 사진으로, 연애 관계를 자전거와 스마트폰으로, 집착을 위치 추적기와 수신 기록으로 보여주는 구성은 이 책의 성격을 선명하게 만든다. 같은 ‘관계’라도 아이템이 바뀌면 장면이 곧바로 다른 방향으로 기운다. 대사를 길게 쓰지 않아도 물건 하나가 인물의 태도를 대신 말할 수 있다는 점. 다만 예시가 직관적인 만큼 그대로 가져다 쓰면 익숙한 장면에 머물 위험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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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템 자체보다 배치와 빛, 실루엣, 우선순위가 더 중요해진다. 야마우타가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작업해 온 사람이라서인지 설명은 이론보다 실제 화면에서 무엇이 먼저 보이는지에 가깝다. 정면을 향한 실루엣과 비스듬히 앉은 실루엣의 차이, 무엇을 빛에 두고 무엇을 그림자에 숨길지 같은 선택은 결국 연출이 ‘추가’보다 ‘선별’의 문제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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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바로 써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분명하지만, 창작자가 예시를 그대로 따라가면 표현이 정형화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연애나 집착처럼 익숙한 장치는 자기 장면에 맞게 비틀어 볼 필요는 있다. 그래도 사물을 서사의 언어로 보는 연습을 시작하기에는 꽤 실용적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뿐 아니라 장면을 쓰는 사람, 무엇을 넣어야 할지 자주 막히는 창작자라면 한 번 펼쳐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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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스펙이다 - 연애·결혼·인간관계를 위한 핵심 역량 인생수업
조동춘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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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스펙이다』- 사랑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감정이 지나간 자리에서 관계를 다시 배우는 일


✍🏻 저자 : 조동춘

🏢 출판사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사랑’과 ‘스펙’이라는 두 단어가 쉽게 붙지 않다. 스펙은 쌓고 관리하고 증명하는 것인데, 사랑까지 그렇게 바라봐야 하나 싶었다. 저자가 말하는 스펙은 조건이나 자격이 아니라 관계를 감당하는 능력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공부와 일에는 꽤 많은 준비를 한다. 부족하면 배우고, 실패하면 원인을 찾고,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방법도 바꾼다. 이상하게 사랑에서는 그렇지 않다. 좋아하는 마음이 충분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다가 관계가 흔들리면 사랑이 식었다거나 인연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랑을 잘한다는 건 대체 어떤 모습일까. 다정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인지, 싸우지 않는 사람인지, 아니면 갈등이 생긴 뒤에도 상대와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인지.




🔖 책에서 사랑은 뜨거운 감정보다 구조에 가까워진다. 열정, 친밀감, 책임이라는 세 축 가운데 하나만 크게 남으면 관계도 기울 수 있다는 설명을 읽으며 ‘좋아한다’와 ‘함께 살아낼 수 있다’는 꽤 다른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벽돌을 쌓는 건축에 빗댄 대목은 낭만을 조금 걷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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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의 언어’. 사랑을 너무 경영의 언어로 바꾸는 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상대의 침묵을 곧바로 ‘나를 무시한다’고 번역하는 대신 사실과 내 해석을 나누어 보라는 설명까지 읽으니 의도가 선명해졌다. 상대를 내 방식에 맞게 개조하는 대신 서로 다른 언어를 번역한다는 말도 같은 방향에 있다. 관계에서 내가 확신해 온 해석 중에는 사실이 아니라 불안이 붙여놓은 이름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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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을 다룬 부분에서는 정답을 빨리 내놓는다. 누군가 힘들다고 말할 때 해결책부터 건네는 일이 도움처럼 보여도, 상대에게 필요한 것은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물러 주는 사람일 수 있다. 책은 경청을 맞장구나 대화 요령이 아니라 상대의 주파수를 읽는 ‘안테나’에 비유한다. 해결사가 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판단을 늦추는 것. 말하지 않은 마음까지 알아내라는 요구라기보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한 채 듣는 연습처럼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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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반부에서 사랑은 연애와 부부관계를 넘어 부모와 자녀, 다음 세대로 넓어진다. 아이에게 완벽한 정답을 주는 대신 ‘실패의 운동장’을 허락하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는 장면은 앞에서 말한 사랑의 실력과 이어진다. 대신 결정해 주는 사랑보다 스스로 판단할 공간을 남기는 사랑. 여러 철학자의 개념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부분은 조금 빽빽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랑을 한 사람의 자립과 안목을 돕는 일로 확장하는 방향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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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의 ‘스펙’이 처음과 다르게 읽힌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갖추는 조건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을 함부로 해석하지 않고 갈등 앞에서 자기 방식부터 돌아볼 수 있는 능력에 가깝다. 다만 경영·데이터·시스템 같은 표현이 반복되면서 사랑의 모호함이나 설명되지 않는 감정까지 지나치게 구조화하는 듯한 순간도 있었다. 철학과 심리학의 여러 개념이 빠르게 이어지는 대목 역시 조금 더 천천히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럼에도 연애 기술 몇 가지를 건네는 책과는 방향이 분명히 다르다. 사랑을 시작하는 법보다 관계를 살아내는 법이 궁금한 독자, 특히 익숙한 갈등을 운명 탓으로만 돌리고 싶지 않은 독자가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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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살펴보는 다양성 이야기 - 신체, 문화, 성, 인종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철수와 영희를 위한 사회 읽기 시리즈 19
주수원 지음 / 철수와영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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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살펴보는 다양성 이야기』-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한 걸음 옆으로,스크린 너머의 삶을 내 자리 가까이 가져오는 영화들


✍🏻 저자 : 주수원

🏢 출판사 : 철수와영희



🎯 영화를 보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의 편을 들었던 순간이 있던가?. 그 인물이 나와 비슷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살아 보지 않은 삶을 보고 있었기 때문일 때도 있다. “내가 한 번도 서 본 적 없는 자리에 잠시나마 서 보자”라는 문장을 지나면서 조금 다른 방향이 보였다. 다양성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보다, 나는 타인을 어떤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는가를 묻는 책에 가깝다. 영화 열여섯 편을 고른 이유도 거기에 있는 듯하다. 설명을 먼저 듣는 것과 한 인물의 시간을 따라가는 것은 꽤 다르니까.



🔖 〈슈렉〉부터 〈위대한 쇼맨〉까지 읽다 보니 외모와 장애를 둘러싼 문제보다 먼저 걸리는 것이 있다. 사람을 보는 나의 시선이다. “다름이 틀림은 아니다”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이미 실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외모를 농담거리로 삼거나 불편해 보이는 사람에게 괜히 거리를 두는 순간까지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세상을 바꾸는 것이 법과 제도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선과 말, 행동”이라는 대목에서는 거창한 주장보다 내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부터 돌아보게 된다. 차별은 언제나 노골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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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다양성을 다룬 부분에서는 〈옥자〉의 음식, 〈인턴〉의 나이, 〈컬러풀 웨딩즈〉의 문화적 차이, 〈리틀 포레스트〉의 도시와 지방이 한데 놓인다. 처음에는 서로 꽤 먼 주제처럼 보였다. 그런데 읽을수록 내가 ‘보통’이라고 부르는 생활 방식이 사실은 내가 익숙해진 환경의 기준일 뿐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든다. 특히 도시와 지방을 어느 한쪽의 우열로 나누지 않고 서로 가진 장점을 주고받는 관계로 바라본 점이 흥미롭다. 장소, 세대를 대하는 태도까지 넓혀 놓으니 일상의 범위도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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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엘리어트〉, 〈82년생 김지영〉, 〈천하장사 마돈나〉, 〈윤희에게〉를 지나면서 질문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은 누가 정했고, 타인의 성 정체성과 성 지향을 내가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 넣어야만 존중할 수 있는 걸까. 책은 동성애를 고쳐야 할 무엇이 아니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성 지향 가운데 하나라고 분명히 짚어준다. 커밍아웃을 누군가가 건네는 신뢰로 바라보는 부분도 그렇다.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한 뒤에야 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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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북〉, 〈미나리〉, 〈완득이〉, 〈엘리멘탈〉에서는 피부색과 국적, 이민자의 삶이 이어진다. 그중 불과 물이 섞일 수 없다는 〈엘리멘탈〉의 설정은 편견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단순하면서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엠버와 웨이드는 서로 달라서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처럼 출발하지만, 관계가 시작되자 차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나타난다. 실제 사람을 알기도 전에 외모와 언어, 출신만으로 관계의 가능성을 닫아 버리는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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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수원은 법학과 교육공학을 공부하고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사회 이야기를 꾸준히 써 온 저자답게 어려운 주제를 영화라는 익숙한 입구로 끌어온다. 책의 설명을 정답으로 받아 적기보다 거기서부터 서로 다른 답을 꺼내 보는 편이 이 책과 더 잘 맞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바라봐야 할지 막막했던 독자라면 꼭 읽어주길 바란다. 책을 덮고도 모든 질문에 답할 필요는 전혀없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조금 옆으로 움직여 보는 것, 우선은 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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