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약성서를 읽다
엘런 F. 데이비스 지음, 손승우 옮김 / 복있는사람 / 2026년 7월
평점 :
『구약성서를 읽다』- 익숙한 말씀 앞에서 다시 낯선 독자가 되는 일
안다고 생각했던 텍스트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순간
Wondrous Depth
✍🏻 저자 :엘런 F. 데이비스 Ellen F. Davis
✍🏻 옮긴이 : 손승우
🏢 출판사 : 복있는사람

🎯 성서를 오래 읽는 것과 성서를 깊이 읽는 것은 같은 일일까. 『구약성서를 읽다』를 펼치기 전에는 구약 해석과 설교를 다루는 책이니 어느 정도 전문적인 논의를 각오했다. 그런데 엘런 데이비스가 처음 건드리는 것은 지식의 부족보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다. 익숙함이 이해의 증거가 아니라 더 읽지 않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 지적 앞에서 이 책은 설교자를 위한 책이라는 첫인상보다 내가 성서를 어떤 자세로 읽어 왔는지를 묻는 책에 가깝다.

🔖 “텍스트 자체가 정말로 말을 건네 온다”는 폰 라트의 말에서 좋은 설교에는 ‘지적인 모험’이 있다는 표현도 흥미롭다. 이미 배운 내용을 능숙하게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본문 앞에서 설교자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일이라니. 그렇다면 성서를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 때로는 가장 위험한 익숙함이 될 수도 있겠다. 텍스트에 답을 요구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안다고 전제했는지부터 살펴야 하는 셈이다.
🛐 ───────── 🛐

🔖 요한 카시아누스가 묘사하는 시편 읽기는 시편을 반복해 기도하다 보면 옛 예언자의 말이 어느 순간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언어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과한 표현처럼 읽혔지만, ‘제2의 본성은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얻는다’는 설명을 지나며 뜻이 달라진다. 시편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과 시편의 언어로 기도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나는 성서의 문장을 이해하려고는 하면서 그 문장이 내 언어가 될 만큼 반복해서 읽고 있는가. 질문은 의외로 단순한 곳으로 돌아온다.
🛐 ───────── 🛐

🔖 ‘상상의 정밀함’이라는 말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단어를 붙여 놓는다. 성서에 하나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원하는 의미를 마음대로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정답 하나를 확인하고 읽기를 끝내는 것도 데이비스가 말하는 해석과는 거리가 있다. 예측하기 어렵지만 텍스트를 벗어나지 않는 읽기, 낯설게 보되 정밀함을 잃지 않는 읽기다. 특히 익숙한 구절에 “허를 찔릴 각오”가 필요하다는 대목이 재미있다.
🛐 ───────── 🛐

🔖 설교조의 말과 실제로 ‘설교하는’ 설교를 구분하는 장면은 신학적 논의를 꽤 현실적인 자리로 끌어온다. 훌륭한 잔소리는 사람을 몰아세울 수 있지만 마음까지 움직이지는 못한다. 반대로 참된 설교에서는 설교자의 인격과 언어조차 텍스트의 쓰임을 받는다고 한다. “텍스트가 더 빛날 수 있도록 조금 더 여지를 주는 것.”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좋은 설교자의 존재감이 오히려 작아지는 역설이 보인다. 말하는 사람이 앞에 서 있는데도 결국 듣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말솜씨가 아닌 본문이어야 한다는 뜻일까.
🛐 ───────── 🛐
📌 엘런 데이비스는 구약을 설명해야 할 오래된 자료보다 지금도 말을 걸어오는 현존으로 다룬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성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보다, 익숙한 본문이 다시 낯설어질 자리를 남겨 두고 있는지가 더 신경 쓰인다. 다만 강연을 바탕으로 한 만큼 설교와 주해의 논의가 촘촘해 일반 독자에게는 몇몇 대목의 진입 장벽이 있다. 그럼에도 성경을 여러 번 읽어 이제는 내용을 안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오히려 꼭 읽어주길 바란다. 다음번에는 익숙한 한 구절 앞에서도 조금 다르게 서게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