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사랑하기
빌헬름 게나찌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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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다. 젊은 것도 아니고(50대의 중년이다.), 능력이 있는 것 역시 아니고(평생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다.), 특별하게 잘 생겨서 그런 것은 더욱 아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_-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안 나온다.) 다만 조금 지적인 사람이기는 하다. 왜냐하면 강연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인간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무기로 하는 종말 강연이기 때문에 사기꾼과 별다름 없다. 물론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강연을 듣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다지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다.-_-)

 

주인공이 사랑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해 보자. 둘 중 한 명은 그의 아내일 것이고 다른 한 명과는 불륜의 관계일 거라는 상상은 말라. 그 남자는 결혼했다가 한 번 실패한 사람이다. 이혼 후 만난(잔드라의 경우 결혼 전부터 알던 사이지만) 두 여자와 줄다리기 사랑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두 여자는 그 남자가 양다리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한 명은 유디트라는 예술 감각이 뛰어나고 지적인 동년배 여자다. 그와 대화가 통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이 그녀의 장점이지만 다소 신경질적이고 가정적이지 못한 것은 흠이다. 또 다른 한 명은 그보다 연하인 잔드라. 가정적이면서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여자다. 하지만 그와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준은 못되는데다 그녀가 취미 삼아 그리는 그림을 그는 아주아주 형편없어 한다. (물론 티를 내지는 않지만)

 

두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양편 부모를 똑같이 사랑하는 것과 같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고 주장하던 이 남자. (모 개그 프로에서 우스꽝스런 얼굴의 두 남자가 목이 터져라 부르짖던 짧은 문장이 생각난다.-_-) 이제 그는 선택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점점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 게다가 병을 앓고 있다. 성기능도 저하되고 있다. 모든 것이 우울한 상황이다. 게다가 그의 주위에는 이상한 사람들(대다수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직업과 인생 편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잔뜩 있는데 그들의 행동양식과 사고는 그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 뿐이다.

 

그는 과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유디트일까, 잔드라일까?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나는 흠뻑 빠졌다. 이 책은 줄거리라고 할 건 그다지 없다. 한 남자가 두 여자를 사랑하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만 나올 뿐이다. 이 책을 영화로 만든다면 정말 지루할 것이다. 대사도 별로 없고 특별한 사건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문드문 블랙 코미디를 보는 거 같은 착각에 빠져 실소를 하기도 했다. 아무튼 두 여자를 사랑하는 주인공이 소소하고 일상적인 상황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잔잔하게 전해주는 독백체에 가까운 책이다.
그래서 나는 남의 일기를 훔쳐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것만큼 재미있는 게 어디 있을까? 게다가 문체가 매우 독특하다. 대화체의 문장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생각과 묘사와 대화가 두루뭉수리하게 엉겨 있기 때문에, 숨 쉴 틈 없이 주인공을 통해 전달되는 작가의 생각에 마구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삶은 아름답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 묘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은 온통 혼란스러움으로 가득차 있다. 이 남자가 욕심이 많고 파렴치한 사람이라서 두 여자를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 남자가 오히려 종말을 향해 가는 인류의 가치관에 대한 혼동과 종말에 대해 두려워하는 모두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는 예상치 못한 때에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할 만한 사람은 잔드라 말고는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고들 종종 표현하는 데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대체로 그렇다. 그들이 관심을 갖고 몰두하는 일은 터무니없을 정도다.

 

괴로운 마음으로 책을 덮어야 했다. 그렇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둘러 쓰고는 '제대로' 문명 사회를 꼬집고 있다. 현대 독일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이 작가, 내 블랙리스트에 완전히 올라 섰다.

 

* 인상 깊었던 부분 

내가 맞서 싸워야 할 인간이 한 명 있다. 그건 바로 나다.

 

이 순간 바지는 이상하게 설렁설렁/얼기설기/뒤죽박죽 이어져 온 내 인생 편력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잠시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상한다. 내 인생이 아주 흥미롭게 느껴지더니, 그것도 잠시일 뿐, 갑자기 지루해지는 것이다.

 

두 여자를 동시에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적극 권장할 만한 일이다.(중략)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이다.(그리고 정상으로 만들어준다.) 왜 어떤 경우에는 이중의 사랑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왜 다른 경우에는 이런 사랑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인지 실로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 삼의 여자가 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종업원과 어떻게 해볼까 하는 생각을 벌써 세 번씩이나 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는 유디트를 배웅하면서) 마음 속에서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이 감정이 다른 사람들을 향한 것이지, 아니면 나 자신을 향한 것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연민을 자기연민과 명쾌하게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 두 연민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도 연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중대한 사랑의 과오를 피하기 위해 나는 윤리를 위반하는 사소한 행위들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인다. 내가 이런 생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다. 이로써 나는 불안에 떨면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랑의 생존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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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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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하권 합해서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다. 5일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이것만 붙잡고 있었다. (사실은 상권 보다가 머리도 식힐 겸 영화 본 기념 겸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읽었지만.-_-) 일단 분량이 방대하기도 하고 내용이 너무나 복잡 미묘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용어들이 간혹 툭툭 튀어 나와 당황케도 해서 다 읽는데 시일이 조금 걸렸다. 그러나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5일간 완전히 이 책의 향기에 취해 버리고 말았다.

 

이 책은 14세기 중세 교회를 배경으로 쓰여진 책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중세에 대한 지식이란 중, 고등학교 다닐 때 배웠던 세계사와 몇 편의 영화와 몇 권의 만화를 통해 배운 조악한 것들뿐이다. 그러니 형편없는 단편적인 지식(없느니만 못한)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성경을 몇 번 완독했던 경험은 이 책을 읽는 데 꽤 큰 도움이 되기는 했다. 특히나 작품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부분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이다. 혹 이 책을 읽을 계획을 가지고 있거나 지금 읽고 있다면 요한계시록(책에는 요한의 묵시록이라 기록되어 있다.)을 두, 세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살펴 보자.
이탈리아의 멜크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조사를 맡게 된 윌리엄 수도사와 그의 조수 아드소가 문제의 수도원에서 겪은 7일간의 모험담이 이 책의 주요 골격이다. 아델모를 시작으로 문서 사자실의 필사사였던 수도사들과 수련사들이 하나, 둘 살인을 당하게 되는데 그들이 죽은 모습이 요한 계시록의 재앙에 관한 예언 부분과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윌리엄은 수사 담당 수도사다운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여 문제의 살인 사건과 수도원의 자랑인 장서관 사이의 어떤 연관성을 알아내게 되고 미궁 속같던 사건의 전모는 하나, 둘 밝혀진다. 그러나 마지막에 뒤통수를 아프도록 때리는 반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묘미란 실로 대단하다.

 

이 책을 단순한 추리물로만 볼 수는 없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의 과정이 주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에코의 박학다식함이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기도 하다. 철학과 신학, 역사와 미학에 이르기까지 그가 풀어낸 방대한 지식의 양에 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고 개인적으로 오래도록 사유할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한 에코가 세상을 보는 눈의 깊이에 나는 여러 차례 탄복했는데 특히 하권 중반 부분에 나오는 세속적 권력에 대해 펴 놓은 논리 부분이 정말 인상 깊었다.

 

인간은 유한하다. 잠깐 피었다 지는 꽃에 불과하다. 책을 읽으며 지적 허영심(허영을 부릴 만한 지식을 소유하지는 못했지만)이 얼마나 큰 위험의 소치가 될 수 있는 지 깨달았다. 또한 자신의 신념에 대한 무조건적인 확고함도 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 속에 펼쳐 수놓은 신의 섭리를 인간이 다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역사를 더듬어 보면 더욱 인간의 어리석음이 눈에 두드러진다.

 

인간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허울뿐인 육신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육신이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은 무얼까? 이 책의 제목과 어떤 연관성이 있지는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에 보면 '기초란 필요없는 부분을 버리고 필요한 부분만 남기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는 에코가 기존의 질서를 다 무너뜨려 전소시키고 새로운 기초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을 이 책을 통해 표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잠시 해보았다. 너무 허무맹랑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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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스내처 - 이색작가총서 1
잭 피니 지음, 강수백 옮김 / 너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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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피니의 '바디 스내처'는 책 나눔으로 받은 책이다. 책과 함께 떠나는 여행란에 이 책이 올라왔기에 읽어 보고 싶다고 요청했는데 나늬님께서 선뜻 보내주셨다. SF 공포물이라고 하면 장르상 맞을 거 같다. 1950년대에 쓰여진 이 책은 1978년에 영화로 제작되었고 1993년에는 리메이크 되었다. 책이 오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가 X-파일의 멀더와 스컬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곧 남녀 주인공을 멀더와 스컬리로 생각하며 읽어 버렸다. 어쩌면 그래서 더 흥미진진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공포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공포를 그다지 즐길 줄은 모르는 사람이다. 호러물이나 공포물을 볼 때 저 상황은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음은 물론 픽션이라고 스스로 암시를 하는 모양이다.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어떡해'를 연발하며 두려움에 떨 때 나는 그 사람의 귀에 대고 살짝 속삭여 준다. "이건 그냥 영화일 뿐이야."라고.-_- 진정한 공포물 매니아들은 완전 몰입해서 오싹하는 공포를 맛볼 줄 안다고 하는데 나는 매니아는 절대 못 될 위인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공포물들에는 그다지 공포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적인 공포를 주는 영화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그다지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공포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은 바로 '알 포인트'다. 유령이나 귀신이 나타나는 것보다 더 두려웠던 건 바로 옆에 있는 이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닐 거라는 심리에서 오는 공포, 바로 그것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3일 동안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_- 그리고 배우 감우성을 더 좋아하게 됐다. 아무튼 나와 친숙한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설정, 그것이 무척이나 낯설고 두려웠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대 후반의 일반 개업의이자 이혼남인 마일즈(멀더)는 어느 날 고교 동창인 베키(스컬리)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베키로부터 그녀의 사촌 윌마를 만나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유인즉 윌마가 그녀를 길러 준 삼촌 내외가 진짜 그녀의 삼촌과 숙모가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사는 조용하고 아담한 시골, 밀 밸리에서는 윌마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게 된다. 집단적인 히스테리 현상으로 치부하던 마일즈는 그의 친구 잭을 통해 이 기이한 현상의 실체를 알게 되고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줄거리는 여기까지...^^)

 

남아 있는 페이지 수가 채 10페이지도 안 되는 상황까지도 끝을 알 수 없게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구성력은 참 놀라웠다. 하지만 마무리 부분은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약간은 어이가 없기도 한 결말이다(스포일러 자제하기 힘들지만 참는다.-_-).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일즈가 짧은 며칠 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동안 표현됐던 심리 묘사는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여서 나는 같이 숨을 헐떡이며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다. 마일즈와 베키의 운명은, 밀 밸리의 운명과 인류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끊임없이 감정 이입이 되는 상황들이 연출되는 데 그 때마다 내 생각을 한 발 앞서가는 작가의 상상력에 나는 손을 들고 말았다.

 

"전시에 행해진 연설의 일부가 문득 뇌리에 떠올랐다. 우리는 들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산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한 국민을 상대로 행해진 연설이었지만, 이것은 인류 전체에도 해당되는 영원한 진실이다. 광대한 우주 그 어디에도 우리를 패퇴시킬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정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말이다. 인간의 생존 욕망은,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열의는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강하고 질기다.

 

"가짜에게는 감정이 없어. 강렬하고 인간적인 감정 대신 기억과 감정의 흉내만이 존재했던 거야. 그것을 제외하면 아이라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했던 거지."

 

"당신에게 기쁨이라든지 두려움이나 희망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당신을 이루고 있는 그 더러운 잿빛 물질과 똑같은 잿빛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야."

 

"그건 그리 나쁘지 않아. 야망이나 희망, 그런 것들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얼까, 생각해 보았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SF물을 읽은 거 같아 흐뭇했다.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의 다른 책들이 어떨까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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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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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고향 브루클린을 쓸쓸히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 위한 장소로 선택한 50대 남자 네이선. 거기서 자신의 죽은 여동생의 아들, 조카 톰을 만나면서 그의 생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자신의 진정한 안식처를 찾아가는 작은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대단히 이성적이고 지적인 사람이라도 돈을 휴지로 쓸 만큼 부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혹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이거나(혼자 영원한 건 지옥일 거다.) 세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을 정도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본인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그렇기에 사람은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만이 한 사람과 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브루클린은 바로 그런 희망을 그려 내기에 적합한 장소로 작가에 의해 낙점된다. 인종도 성별도 나이도 학력이나 이력도 문제가 되지 않는 곳, 심지어 힘의 논리조차도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으로.

 

인상 깊었던 몇 부분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전략)제 실존의 호텔은 어디인가요, 해리? 잘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문제와 관계가 있을 것 같아요. 이 쥐구멍 같은 도시에서 벗어나 내가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 말이에요."(중략)
"자네의 그 작은 이상향(실존의 호텔)은 어디에 있는 건데?"
"이 나라 밖의 어딘가에 있겠지요. 거기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넓은 땅과 충분한 건물이 있는."

톰과 해리가 주고 받은 말이다. 톰은 의미없는 삶에 지쳐 있었고 큰 희망도 없는 상황이었다. 현실은 그에게 아무런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나라 밖이라고 못 박고 있는 것일까?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지 않은가, 실존의 호텔과는 거리가 먼 나라다.) 그는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기대하고 있다. (톰은 정말 착한 남자다.) 나는 나의 실존의 호텔을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내가 아는 만큼 꿈 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기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내가 믿는 하나님과 내 삶의 신념을 더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 나는 얼마나 좁은가? 지경을 넓혀야만 한다.)

 

"내가 길로 들어선 것은 오전 여덟시, 세계 무역 센터의 북쪽 타워에 첫 번째 비행기가 충돌하기 딱 46분 전인 2001년 9월 11일 오전 여덟시였다.(중략) 하지만 그 때는 아직 오전 여덟시였고,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 밑에서 거리를 따라 걷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 그 때까지 살아왔던 어느 누구 못지않게 행복했다."

주어진 생에 족하자는 뜻이리라. 고난과 역경이 올지라도 - 우리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 그저 담담하게 받아 들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아니라고 화를 내도 어쩔 수 없다.) 생이 우리에게 주는 고통에 너무 낙심하고 절망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해리는 절망 때문에 죽었다.)
 

"어느 경우에나 그것은 사랑의 문제일 수 밖에 없을 터였다."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모든 삶의 문제는 사랑에 귀결된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치열하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려 한다.

 

가슴 한 가득 푸근한 정이 넘치게 하는 소설이다. 밝고 따뜻한 색을 잔뜩 입힌 아름다운 수채화 한 편을 감상한 느낌이다. 폴 오스터는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이 책으로 혹 영화를 찍는다면 꼭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정도다. 무엇보다 작위적인 느낌이 없어서 참 좋았다. 조용히 삶을 뒤돌아 보게 하는 힘이 이 책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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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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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추억의 이름이다. 프로야구 원년에 나는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주인공과 나는 비슷한 연배인 셈이다. 게다가 나는 인천 토박이다. 신포동, 연안 부두, 공설운동장, 인천체육관, 제물포고...... 너무도 낯익은 이름들이 처음 보는 괴상한(책 안표지 사진을 보고 살짝 놀라 - 로커인지 작가인지 구별이 안가더이다 - 먹던 음료를 살짝 흘렸음 -_-) 작가가 쓴 책에서 봄날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마냥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걸 보는 것이 신기했고 일단은 반가웠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까지는.

 

만년 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마 같은 프로팀 삼미'와 함께 울고 웃던 나와 친구 조성훈. 어린이 팬클럽 회원인 그들의 피를 토하는 응원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들을 남기고 삼미는 창단 3년 6개월만에 청보에 팀을 인계하고 역사의 한 귀퉁이로 사라졌다. 삼미 유니폼을 입고 치른 마지막 시합(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았을 것을)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조성훈의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그렇게 그들만의 별 삼미를 가슴에 묻고 나와 조성훈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떠나 보냈다. 미친 듯이 공부를 해서 일류대학에 가고, 불꽃 같은 사랑을 하고, 대기업에 들어가고, 부잣집 아가씨와 중매 결혼을 하고, 죽도록 일하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프로로 살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프로가 될 수는 없었다. 미국의 프랜차이즈로서의 대한민국에서 프로가 되기를 강요 받았지만 소속이 다르고 지층이 다르다는 이유로 낙오해야만 했다. 삼미처럼.(줄거리는 이쯤에서 접는 것이 좋겠다.)

 

자본주의 세계 권력과 무한 경쟁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꽤 신랄하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가벼운 어조 때문이리라. 뛰어난 상상력과 재기 넘치는 말투는 거의 쓰러지도록 대단하다. 내가 좋아하는 재일 작가 가즈키의 입담(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쓰는) 못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가즈키구나, 생각했다. 일본의 박민규구나, 그런 말이 나오도록 작가의 변에 쓴 대로 창작에 전념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책 서두에 '1할 2푼 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그래서, 친구들에게'라고 쓰여진 글귀를 보며 살짝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은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으리란 이 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고 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어 내 마음 한 켠에서 삼미의 별처럼 수수하게 빛난다. 그리고 나는 작가의 말에 화답하는 의미로 한 줄 후기를 책 마지막 장에 써 넣었다.

"내 인생은 아직 실패가 아니다. 이제 플레이 볼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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