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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 - 20세기 한국을 읽는 25가지 풍속 키워드
손성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시각적 자극에 아주 민감한 모양이다. 작년쯤 돌이 갓 지난 어린 조카가 컴퓨터로 실행되는 만화 동영상에 빠져서 한동안 헤어나오질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여달라고 조르는 것은 물론이고 한번 보기 시작하면 한 시간 이상 꼼짝 않고 눈을 못 떼며 볼 정도였다. 결국 적절하게 조치를 취해서 컴퓨터 중독을 고치긴 했지만 그런 일이 다시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어 동생 부부는 늘 신경을 쓰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컴퓨터' 라고 하는 문명의 이기에 빠져 있다면, 옛날 아이들은 바보 상자라 불리는 tv에 쉽게 빠져 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tv가 없었다. 하루 세 끼 밥 먹기도 어려웠던 시절, tv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물건이었다. 동네에 tv가 있는 집이 몇 안 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한 7살쯤 되었을라나. 어느 날, 저녁을 먹은 후 어린 내가 화장실에 갔다 온다고 하면서 슬그머니 집 밖으로 나가더란다. 그 때만 해도 으레 화장실 하면 몇 개 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옥외 공동 화장실뿐이었다.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난 지 한참이 지나도 화장실 간다고 나간 내가 돌아오지 않자 모친은 이내 나를 찾으러 나서셨다. 내 평소 활동 반경을 잘 알고 계시던 모친은 곧바로 평소에 내가 마실 잘 다니던 집으로 가셨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식사 중인 남의 집에 가서 그 집 식구들과 같이 tv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실 수 있었다. 내 또래의 그 집 아들이 자기 집에 tv 보러 오는 나를 달가워 안 해서 얻어맞고 울며 쫓겨 온 지 채 하루도 못 돼 벌어진 일이다. tv에 대한 나의 열정이 얼마만 했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결국 모친께서는 얼마 후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tv를 한 대 놓으셨다. 대한전선에서 나온, 다리와 미닫이가 달린 전형적인 구식 tv였다. 처음 tv가 우리 집에 온 '역사적인 그 날' 미닫이를 열었다 닫았다, tv를 켰다 껐다 그리고 몇 개 되지도 않는 채널을 이리 저리 돌려가며 엄청 좋아했던 기억은 난다. 또 이런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자다가 가위에 눌려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깨어났는데, 깨나 보니 내가 tv 다리 밑에서 팔,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지 뭔가. tv만 보면 바보 된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여러 면에서 모자라는 건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줄기차게 보아 온 tv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은 tv보다는 책에 빠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은 바로 우리네(30대 이상)의 향수 어린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신 풍기는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연령과 상관없이 예전 어른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달고나, 쫀쫀이, 눈깔사탕, 아이스케키 등 달콤한 먹거리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놀이터 대신 골목길에서 했던 다양한 놀이들, 소풍, 수학 여행, 운동회 때 벌어진 웃지 못할 정경 등 저자의 향수 어린 글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무성 영화나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내가 경험했거나 봐왔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 외 다른 여러 분야에 대한 이야기들도 꽤나 흥미로웠다. 특히 1970, 80년대는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금지곡이 된 노래들이 많았는데, 그 면면을 살펴 보면 정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밖에 안 나오는 이유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라는 노래에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라는 부분이 있는데 그러면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거냐, 행복의 나라가 북한이냐며 금지시켰다. <거짓말이야>는 불신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배호의 <0시의 이별>은 0시부터 통금인데 그 때 이별하면 어떡하느냐는 이유로, 심수종의 <순자의 가을>은 대통령 부인의 이름을 썼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p.162, 163}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책을 읽어 가면서 참 많은 것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시절의 낭만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고단했던 그 시절의 삶이 오히려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마도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유행이 지났다고 해서 몇 번 입지도 않은 옷을 쉽게 버리고 새로 사는 요즘 아이들에게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꿰매서 입던 그 시절 이야기가 낭만적이기는 커녕 구질구질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때가 있어서 지금이 있다는 사실까지는 부인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대학 때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됐다. 결혼해서 서울 근교 소도시에 살고 있는 그 친구와는 꽤나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됐었다. 그런데도 통화를 시작하자 마자 봇물 터지듯이 할 말이 생기고 스스럼없이 삶을 나누게 되었다. 사회 생활하면서 만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격의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 학창 시절 그리고 순수했던 그 시절들이 그리워진다. 아,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