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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1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신 클래식 강의
조윤범 지음 / 살림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좋은 음악이 나오거나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귀에 착 감기는 멋진 음악이 나오면 '좋구나!'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항상 그 다음이 문제다. 좋은 곡이네 싶긴 해도 이 곡이 누가 지은 곡이고 부른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궁금증을 음악을 듣는 동안은 갖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 곡을 굳이 애써서 찾는다거나 하진 않는다.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명 박순희들처럼 특정 가수의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소장하는 일도 거의 해보지 않은 거 같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음악 CD가 거의 없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듣는 동안은 큰 감흥을 받지만 그 뒤로는 그냥 잊고 말게 된다.
최근 즐겨 보는 드라마를 통해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조금 커졌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 이름도 유명한 베토벤에게 관심이 생겼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거 같다. 고전 음악가 중 왜 베토벤을 최고로 치는지 알고 싶어졌다. 일단은 음악사를 전체적으로 훑으면서 베토벤이란 음악가가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얼마만한가를 아는 게 먼저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과 조우하게 됐다.
표지를 보는 순간 저자가 심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팍 온다. 나는 한번도 접해 보지 못했지만 예당아트 TV 프로그램에서 클래식 강의를 한다는 저자는 '콰르텟엑스'라는 현악4중주 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가다. 저자 소개글을 읽으면서 저자가 글도 쓰고 영화나 역사, 철학에 조예가 깊다고 하길래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이 양반이 애니와 록음악은 물론이고 게임에까지 열광하는 대중 문화 아이콘이란다. 괴짜처럼 보이는 그의 외모와 그의 이력이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솜씨가 보통은 넘는다. 물론 그러니까 책을 낼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보통 전체적인 맥을 짚어가며 이야기하는 게 참 어려운 법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국사는 못했어도 세계사는 잘했다. 이유는 세계사 선생님이 굉장한 이야기꾼이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흐름을 딱딱 짚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간간이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맛깔스럽게 해주셔서 지루한 줄 모르고 수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내 고교시절 세계사 점수는 거의 항상 만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국사 수업은 지루했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잘 알 거라 믿는다. 아무튼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를 재미있게 가르치던 은사님의 수업과 비슷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연대 순으로 대음악가들을 차례로 소개하는데, 음악가의 삶과 그의 음악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음악적 특성은 뭔지,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누구에게 영향을 줬는지까지 언급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훌륭한 음악은 물론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 중 아쉽게도 잘 연주되지 않거나 묻혀 있는 음악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련 번호로 돼 있는 곡들에 저자 나름의 제목을 붙여서 소개하는 점은 무척 재미있고 독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번호가 아닌 제목을 붙였기 때문에 그 곡과 더 친근해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또 저자 자신이 현악4중주단에서 바이올린 파트를 맡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악4중주 곡에 대한 편파적인 애정(?)이 살짝씩 엿보이는 데 물론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만하다.
곡에 대한 깔끔한 해설과 재미있는 에피소드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을 소개하면서 진행되는 그의 강의를 듣다 보면(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강의를 듣는구나 하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이유는 아마도 중간중간 음악을 들으며 그의 해석을 다시 음미했기 때문일 게다.) 너무도 당연하게 그 곡이 들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곡을 찾아서 들어가며 책을 읽다 보니 진도가 잘 안 나갔다. 이 책 한 권을 읽는데 거의 보름 이상이 걸렸다. 중간중간 관심 가는 음악만 들었는데도 보름이 걸렸으니 그 많은 음악을 다 들으며 책을 봤으면 한 달 이상 걸렸을 지도 모른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림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건 저자의 클래식 대중화에 대한 열망이 이 한 권의 책에 잘 녹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클래식은 지루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대중 가요는 새로운 곡들이 쏟아져도 누군가 듣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클래식은 그렇지 못하다. 이제 적어도 나만큼은 클래식에 대한 생각을 바꿀 때가 된 듯하다. 클래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청력을 잃은 여주인공에게 괴팍한 남주인공이 스메타나의 현악4중주 1번 <나의 생애로부터>가 담긴 CD를 던져주는 장면을 보고는 괜히 혼자 뿌듯해 하고(좀 안다고)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중 피아노 배틀 장면을 보면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클래식이 지루한 음악이 아니라는 반증이 될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클래식도 대중과 친숙해 질 수 있는 음악이라는 걸 지금 나 자신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내일 베토벤의 음반을 하나 주문해야겠다. 그나저나 베토벤이 클래식 음악사에서 왜 그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음악가인지 혹시 아는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답을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베토벤의 음악을 포함해 클래식 음악 전부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지불식간에 생길 거라고 감히 예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