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 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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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하권 합해서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다. 5일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이것만 붙잡고 있었다. (사실은 상권 보다가 머리도 식힐 겸 영화 본 기념 겸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읽었지만.-_-) 일단 분량이 방대하기도 하고 내용이 너무나 복잡 미묘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용어들이 간혹 툭툭 튀어 나와 당황케도 해서 다 읽는데 시일이 조금 걸렸다. 그러나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5일간 완전히 이 책의 향기에 취해 버리고 말았다.

 

이 책은 14세기 중세 교회를 배경으로 쓰여진 책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중세에 대한 지식이란 중, 고등학교 다닐 때 배웠던 세계사와 몇 편의 영화와 몇 권의 만화를 통해 배운 조악한 것들뿐이다. 그러니 형편없는 단편적인 지식(없느니만 못한)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성경을 몇 번 완독했던 경험은 이 책을 읽는 데 꽤 큰 도움이 되기는 했다. 특히나 작품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부분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이다. 혹 이 책을 읽을 계획을 가지고 있거나 지금 읽고 있다면 요한계시록(책에는 요한의 묵시록이라 기록되어 있다.)을 두, 세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살펴 보자.
이탈리아의 멜크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조사를 맡게 된 윌리엄 수도사와 그의 조수 아드소가 문제의 수도원에서 겪은 7일간의 모험담이 이 책의 주요 골격이다. 아델모를 시작으로 문서 사자실의 필사사였던 수도사들과 수련사들이 하나, 둘 살인을 당하게 되는데 그들이 죽은 모습이 요한 계시록의 재앙에 관한 예언 부분과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윌리엄은 수사 담당 수도사다운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여 문제의 살인 사건과 수도원의 자랑인 장서관 사이의 어떤 연관성을 알아내게 되고 미궁 속같던 사건의 전모는 하나, 둘 밝혀진다. 그러나 마지막에 뒤통수를 아프도록 때리는 반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묘미란 실로 대단하다.

 

이 책을 단순한 추리물로만 볼 수는 없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의 과정이 주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에코의 박학다식함이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기도 하다. 철학과 신학, 역사와 미학에 이르기까지 그가 풀어낸 방대한 지식의 양에 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고 개인적으로 오래도록 사유할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한 에코가 세상을 보는 눈의 깊이에 나는 여러 차례 탄복했는데 특히 하권 중반 부분에 나오는 세속적 권력에 대해 펴 놓은 논리 부분이 정말 인상 깊었다.

 

인간은 유한하다. 잠깐 피었다 지는 꽃에 불과하다. 책을 읽으며 지적 허영심(허영을 부릴 만한 지식을 소유하지는 못했지만)이 얼마나 큰 위험의 소치가 될 수 있는 지 깨달았다. 또한 자신의 신념에 대한 무조건적인 확고함도 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 속에 펼쳐 수놓은 신의 섭리를 인간이 다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역사를 더듬어 보면 더욱 인간의 어리석음이 눈에 두드러진다.

 

인간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허울뿐인 육신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육신이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은 무얼까? 이 책의 제목과 어떤 연관성이 있지는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에 보면 '기초란 필요없는 부분을 버리고 필요한 부분만 남기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는 에코가 기존의 질서를 다 무너뜨려 전소시키고 새로운 기초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을 이 책을 통해 표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잠시 해보았다. 너무 허무맹랑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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