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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인격의 심리학 -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놀라운 여행
리타 카터 지음, 김명남 옮김 / 교양인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다중 인격이란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영화 <프라이멀 피어>였다. 에드워드 노튼의 놀라운 연기력과 마지막 반전 장면이 인상 깊은 영화였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 (노튼의 비교적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영화의 부차적인 매력 요소로 꼽을 수 있다.) 다중 인격의 심리학이란 책의 제목과 함께 '생생한 사례, 과학적이며 인문학적인 연구가 담긴 책'이라는 소개 문구를 보고 내가 기대한 건 아마도 <프라이멀 피어>의 로이(애런)와 같은 실제적인 사례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예상한 수준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다윗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사도 바울이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성경 속 인물 중 하나로 위대한 설교자요, 뛰어난 전도자였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 삼아 열심히 뛰었던, '작은 예수'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도 "내가 원하는 바 선善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惡은 행하는도다(로마서 7장 19절)" 라며 탄식한다. 그에겐 오직 선인(신의 뜻을 행하는 자)과 악인(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이라는 두 인격밖에 없었는지 몰라도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두 가지 이상의 인격을 소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벌써 나부터도 그렇다. 집에서 딸노릇할 때와 친구들과 함께 할 때 그리고 직장 생활할 때의 내가 서로 다르다. 남들에게 카멜레온 혹은 사이코란 소릴 들을 정도로 극과 극을 오가는 건 아니지만 분명 각각 다른 점이 있다.
이 책은 바로 평범한 나 같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실제적인 지침이 담긴 심리학 책이다. 저자는 1부에서 다중 인격에 대한 몇 가지 설문을 통해 해리성 정체 장애를 가진 사람은 이 책을 그만 접으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저자의 기준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나는 2부로 넘어갈 수 있었다. 1부에서 일반론을 펼쳤다면 2부에서는 다중 인격 사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직접 고안한 인격 바퀴(DISC)를 통해 각 개인이 어느 정도의 다중성을 가지고 있는지 진단하게 하고 그 각각의 인격과 대화하며 자신을 콘트롤하고 좀 더 나은 자아를 위해 노력할 점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MBTI 성격 유형과 비슷한 점도 있지만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안의 여러 인격들이 서로 대화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일 것이다.
책에 제시된 대로 다중 인격 사용법을 따라가는 동안 저자가 이 책 한 권을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을지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갔다. 그만큼 꼼꼼하게 세부적인 사항까지 점검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하지만 한 개인을 어떤 정형화된 틀 안에 두고 일반화한다는 건 어쩌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자신을 면밀히 들여다볼 기회를 준 점은 고맙지만 이 책이 아니더라도 나는 늘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관심을 두고 살기 때문에 이 책이 매우 특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이 책이 좋지 않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참고할 정도는 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말이다. 한번쯤은 자신을 점검하는 데 이 책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