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시네 - 르 클레지오, 영화를 꿈꾸다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이수원 옮김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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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르 클레지오'라는 작가가 노벨상을 타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그의 작품을 만나볼 생각은 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발라시네>가 영화 에세이라는 점도 내 구미를 당겼기 때문에 이 책을 작가와의 첫 작품으로 정했다. ('발라시네'는 우리 말로 영화 산책이란 뜻이다.)

 

어릴 적 주말마다 TV에서 방영되던 영화들을 참 좋아했다. 물론 돈 내고 극장 구경 갈 형편이 안 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따뜻한 아랫목 이불 속에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보았던 영화는 드라마나 쇼 프로와는 또 다른 재미를 내게 선사해 주었다. 주로 늦은 시간에 방영되기 때문에 영화 보고 난 다음 날 아침이면 일어나는 데 곤욕을 치르기 일쑤였다. 간혹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잠들어 버려서 결말을 보지 못했을 때의 아쉬움이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좀 커서는 영화관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작가처럼 용돈 아껴가며 영화를 보러 다닐 정도로 광적이진 않았다. 요즘도 간혹 기분 전환 삼아 영화를 보는데 주로 우리 영화를 돈 주고 보고 외화의 경우 잘 보러가지 않는 편이다. 케이블 TV에서 해줄 때까지 기다리며 고통없이 인내하곤 한다.

 

요런 단편적이면서 보편적인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나 같은 사람에 비해 이 작가의 어린 시절은 조금은 특별했다. 영사기와 필름 조각들을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로 영화와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의 할머니가 간이 영화관을 그 분 집에 만들어 놓으셨고 그것은 고스란히 작가의 장난감이 된 것이다. 또 영화일을 하시던 할머니의 먼 사촌쯤 되는 여자 편집기사가 있었다는 데, 그녀를 회상하는 부분에서 작가가 그 분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그 당시 영화일을 하는 여자가 흔치 않았기에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언급한 페이지에서 유독 애틋함이 많이 묻어나는 느낌이었데 아마도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그가 책에서 언급한 대다수의 영화를 나는 접해보지 못했다.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구해서 보기가 어려운 작품들일 듯하다. 아무튼 어떤 영화에 대한 디테일한 분석이 영화에 대해 잘 아는 다른 사람들에겐 어떻게 다가올 지 모르겠으나 이 분야에 비교적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감이 없지 않다. 작가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내가 따라가는 데는 좀 무리가 있었다. 내 경험상 소설보다는 산문을 더 어렵게 쓰는 작가들이 간혹 있는데 르 클레지오가 그런 부류인지도 모르겠다. 유려한 글은 분명 맞는데 쉽게 와 닿지 않아 참 많이 아쉬웠다. 일본 영화를 소개한 페이지에서 그나마 눈을 반짝이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상상의 스크린을 뒤덮는 동양적인 그 무언가를 느끼기에 충분했으니까. 일본 소설이나 만화를 다만 얼마만이라도 읽어보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공감한 게 아닐가 싶다. 

 

책의 후반부에 우리 감독 세 분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그 부분에 주로 관심이 가는 것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경관이 아름다운 어떤 지방을 기차로 통과하는데 기차에서 내내 졸다가 종착역쯤에서 잠이 깬 기분이랄까. 창 밖 풍광이 정말 끝내줬는데 넌 자더라, 하고 누군가 핀잔을 주더라도 할 말은 없다. 다음에 다시 지나갈 기회를 만들어 볼 밖에.

 

르 클레지오와의 첫 만남이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잠시나마 영화에 대한 나만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해야 할 거 같다. 작가의 첫 소설과는 새로운 기분으로 만나게 되길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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