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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최인호 유고집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우리에게 올 겨울은 결코 쉽지 않은 계절이었다.

 

첫 책을 마무리 하던 중 둘째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입덧과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첫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설렘을 다 누리기도 전에 시작된

고작 16개월 된 딸아이의 입원, 수술

그리고 시 외할아버지의 별세.

 

이때만큼 삶과 죽음을 생생하게 느꼈던 적이 없었다.

번뇌와 고통과 숱한 다짐이 제멋대로 떠다녔고,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생각을 할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는 날들이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기를,

그래서 내가 겪어야 하는 모든 것들이 희미해지기만을 바랐다.

 

우연일까, 인연일까.

재밌게도, 이번 달에 서평을 작성해야 할 신간 두 권이

모두 고인이 되신 분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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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호 작가 유고집 <눈물>.

 

이 책은 2008년 암 진단을 받은 작가가 2013년 가을 영면하기까지

5년간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사랑하는 벗에게' 쓴

편지 형식의 영적 고백들이다.

 

그런데 그 대상이 재밌다.

 

이 편지를 받는 그대가 누구인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대는 이미 제가 만났었던 사람인지, 친하였던 동무였는지,

아니면 오가는 길가에서 스쳤던 사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내 사랑하는 벗이 되어 생전 처음 그대에게 쓰는

이 편지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 19쪽.

 

 

죽음의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써내려간 것이

사랑하는 아내나, 자식이나, 혹은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상조차 불분명한 이들을 위한 것이라니.

 

독자들 중에는 그의 강한 종교적 색채나 신앙 고백이

불편한 이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인간은 언젠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그의 행보를 먼저 간 어떤 이의 것으로 이해하면

글이 신앙 고백의 형식인 것 역시 죽음에 이르는 수많은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죽음을 앞둔 순간이야 말로 신과 가장 가까울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면에서 볼 때 그가 부르는 '사랑하는 벗'이란 종교 유뮤를 떠나

본인이 경험한 신의 기적, 신앙의 신비를 공유하고픈 모든 사람들,

혹은 (본인처럼)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어찌 두렵지 않았을까.

어찌 외롭고 무섭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닥친 현실에서 도망치거나 곡해하지 않았다.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였고,

고통속에 절망했고, 그러나 다시 일어섰다.

가끔 내가 상상헤보곤 하는, 나의 마지막 모습과도 무척 닮아 있었다.

그 같은 신앙의 동료가, 선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산 자인 나에겐 위로이자 희망이었다.

 

언뜻 보면 이 책은 한 개인의 신앙, 혹은 성경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

투병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느낀 인간의 아름다움과 슬픔, 외로움,

특히 작가로서 죽고 싶어한 그의 '숭고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과연 나에겐 그 만큼의 열정이, 확고한 의지가 있는가.

자신이 없다.

 

 

수십년 간 그를 곁에 지켜본 이들의 말을 빌어보면

그의 유쾌하고 정이 많았으며, 자신의 일에 무척 열정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청년이라 부르고, 반항아라 묘사한다)

 

손톱이 다 빠져버릴 만큼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손가락에 골무를 끼워서까지 마지막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완성했고(337쪽),

"나는 수녀님이 나랑 사귀다 실망해서

수년원 간 거라고 뻥치고 다닐거다. 으하하"하며 이해인 수녀님과 장난을 쳤다(290쪽).

"망가져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다고.

그냥 써 쓰고 싶은 걸 쓰기만 하면 되는 거야." 라며

살뜰히 후배들을 아끼고 챙겨주는 선배였다(327쪽).

 

내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무척 많지만

가톨릭 신자로서, 그리고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초보작가로서

마음에 새기고 싶은 두 부분만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도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잘못한 형제를 무한정 용서하라는 말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입니다.(중략)

내가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사랑의 행위인 것 같지만

실은 교만인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남을 용서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남을 단죄할 수 없듯이

내가 남을 용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용서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받은 존재이자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발견입니다."

- 210쪽.

 

 

둘.

 

"저는 주님에게만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진실로 인정받고 칭찬받고 잊히지 않고 싶은 분은

오직 단 한 사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그러하오니 주님.

만년필을 잡은 제 손 위에 거짓이 없게 하소서.

제 손에 성령의 입김을 부디 내리소서."
- 194쪽.

 

 

이제 그가 남긴 글을, 한 인간의 역사를

천천히 따라가며 읽어가야 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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