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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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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기에 인생의 멘토를 만나는 사람은 얼마나 행운아인가.

실직하고 어려운 집안 형편 속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폰더씨는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 때의 폰더씨는 이미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고, 전부라고 생각해 왔던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였고, 오직 절망만이 그 때의 그를 잠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여덟 명의 멘토를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서 많은 교훈을 얻고 삶을 위한 새로운 의욕과 의지를 얻게 된다.

8인의 멘토. 물론 폰더씨에게 교훈을 준 진정한 멘토들은 7인이다. 그러나 마지막 미래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폰더씨가 얻은 희망과 확신 용기를 생각하면 미래의 데이비드 폰더 역시 그의 멘토가 될 자격이 있을 것이다.

폰더씨에게 깨달음을 준 7인의 멘토는 트루먼과 같은 대통령에서 안네 프랑크라는 소녀, 천사 가브리엘까지 각양각색의 존재들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삶에서 얻은 크나큰 교훈을 기꺼이 그에게 물려주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폰더씨는 재기할 수 있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독자 역시 폰더씨와 함께 여행을 하며 많은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자네는 수많은 선택을 했고 그것이 모여서 오늘날의 상황을 만들어 낸 거라네.’라는 구절에 깊이 공감했다.

그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대강 보내온 시간들이 쌓여 현재의 우리를 만들었고 그렇기에 지금 자신의 모습은 오로지 본인이 책임 져야할 몫이라는 말이다. 즉 그 말은 현실에 충실해 미래의 우리를 만들어가라는 뜻과 일맥상통할 것이고 그렇기에 삶에 대한 의욕을 느낄 수 있었다.

폰더씨의 멘토들이 주는 교훈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것들이다. 여느 성공학 도서들이 딱딱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에 비해 소설의 형식을 취한 이 책은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도 굉장히 쉽게 읽힌다. 이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경제 상황이 침체되어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사람들은 이런 작은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비극은 인간이 그 게임에서 진다는 것이 아니라 거의 이길 뻔한 게임을 놓친다는 것입니다.

가브리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폰더와 함께 보낸 하루는 어려운 때일수록 절망하지 않고 재기를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도와준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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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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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연애,섹스,엽기성을 떠올리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계보로 후배작가들이 거의 마구잡이로 어설픈 베끼기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하루키의 소설이 선구자 적인 위치를 지니고 있어 이러한 대중 소설들보다 한 층 높은 단계라면 나머지 카피본들은 주제의 식에 관한 면에서는 꽤나 상투적이며,불명확한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상황은 일본 문학이 대중 소설과, 순수 문학을 갈라놓고 평한다는 상황하에서 더욱 심해졌다. 더군다다 한국에 번역된 소설들도 일본의 여러 작가들이 아닌,몇 몇 작가에 한정되 있 고, 다른 책을 번역하기 보다는 이미 소개된 작가들의 작가들의 '전집'을 번역하기 때문에, 우리는 에쿠니 가오리의 사랑이야기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환상적인 연애와 오컬트적인 요소가 조합된 이 야기, 무라카미 류의 엽기적이며 선정적인 이야기에 젖어 있게 된것이다. 물론 이들 작가들의 수준을 비하하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이러한 작가들에 너무 익숙해 진 나 머지 우리 시각이 일본 문학을 일정한 주제에 끼워 맞춰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그러한 상투적인 일본 문학의 주제의식을 탈피하고 있다. 우정, 그것 도 특별한 상황에 연령대 맞지 않는 사람들의 오래 지속되는 아름다운 우정을 이 책은 그리고 있었 다. '수학은 미학'이라는 말을 언젠가 들어본 기억이 있다. 확실히 수학은 신기한 학문이다.

그러나 이 수학이라는 학문을 소설이라는 분야에 접목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수학귀신 이라든지, 그와 비슷하게 수학 그 자체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설의 형식을 빌린 책은 여러번 봤어도 소설을 쓰기 위해 수학을 빌린 경우는 지금까지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작가의 문체는 소설의 내용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학을 녹아 있어 어렵다거나, 지겹다거나,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정부 '나'의 생일 2월 20일과 박사가 아직 젊었던 시절 수학 논문 덕분에 받았던 시계에 적힌 상 번호 228이 우애수라는 것, 박사가 머리가 납작한 가정부 '나'의 아들을 루트라고 부르는 것은 수학이 소설 전개와 이렇게 연관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80분 밖에 지속되지 않는 기억을 수학을 통해 어떻게든 붙잡아 보고자 하는 박사의 노력은 은근한 감동을 주었다. 가정부와 그의 아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밤 10시까지 혼자 있는 루트를 혼자 있지 못하게 한 박사 의 배려와 그런 박사를 믿고 따르는 루트, 기억이 지속되지 않는 박사를 어떻게든 기쁘게 하고 도 우려고 노력하는 미혼모 가정부의 이야기에는 작가의 은근한 휴머니즘이 실려있다. 특별한 병에 걸린 박사, 미혼모인 '나'와 그런 나의 아들인 루트는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기 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따듯한 시선으로 그들을 감싸 안는다. 그리고 그것은 박사가 그들과 처음이 자 마지막 생일 파티를 하기까지 계속 된다. 아픈 박사를 돌보는 가정부, 다친 루트를 업고 뛰는 박사, 서로의 선물을 위해 있는 힘껏 노력한 그 들. 독자는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묘한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박사가 요양원에 간 이후에도 그들은 꾸준한 우정을 나눈다. 기억이라는 건 그런 아름다운 감정의 지속에 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진심이 있었기 때문일거다. 루트는 결국 커서 수학선생이 되었고, 박사는 죽었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러한 결말을 지나치게 애틋하게도, 지나치게 슬프거나 혹은 뚜 렷한 주제 의식을 담아 쓸데없는 기교를 부려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난잡해 지지 않았다. 비록 매우 멋있는 소설이라거나, 엄청난 대작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읽고나서 여운이 남고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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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토끼
앤디 라일리 지음 / 거름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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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형상화한 작가는 굉장히 많다.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비롯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 우리는 죽음에 대해 고찰하고, 죽음을 미화 시키고,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운다. 그러나 그들이 그린 죽음은 현대 사회에서 만연한 자살과는 다른 의미의 죽음인 것이다.
요즘은 타인의 생명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조차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다. 심지어 죽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살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자신을 죽여주길 청부하거나, 쉽게 죽는 방법을 연구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죽고 싶어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어려워진 가정 경제. 직장이나 학교 생활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이나 열등감등이 그들이 삶을 포기하게 부추기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데 있어서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죽는 건 한 순간이고, 그 순간이 지나면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이에 관련해 죽음에 대해 새로운 방면으로 접근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장황한 미사여구나, 길고 긴 묘사를 통해 죽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직 그림. 그림을 통해, 죽음을 이야기 한다.
자살토끼에는 그야말로 죽고 싶어 안달난 토끼들이 자살하는 모양이 그려져 있다. 서로가 죽는 것을 돕기 위해 대포에 밀어 넣어 주기도 하고, 토스트기에 들어가기도 하면서 그들은 계속해서 죽어간다. 자살토끼를 끝까지 보면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토끼들의 죽음에 그 방법을 고안해서 그려낸 작가의 창의성에 탄성이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작가가 진실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고 삶인 것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죽고자 하면,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는 걸을 말함으로써 우리에게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죽음을 미화시키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토끼들의 죽음은 소름끼치거나, 혐오스럽거나, 거부감을 준다기 보다는 웃음을 유발해 진한 해학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해학을 통해 삶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림책처럼 훑어 보면 이 책은 의미 없는 책이다.
그러나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하며 읽으면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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