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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사랑학 수업 -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책 서문을 '아직도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다르다 믿는 당신에게'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서문을 통해 알 수 있겠지만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같다.'는 것이다. 많은 진화생물학적 통계들이 과학의 이름을 빌어 '기존 사고 방식과 다름없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은 우리를 안심시킬 따름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적확해 보인다.
결국, 남자도 사람이고, 여자도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데 '치밀한 계획'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연애 지침서를 읽고 그대로 행동해서 남자들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실패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견해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지침서는 집어 던지고, 당신만의 사랑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사랑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과의 관계 중 일부를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이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사랑 자체를 '미화'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때문에 사랑이 그저 타인과의 관계맺기, 삶의 과정의 일부라는 걸 종종(아니, 실은 거의) 잊고 살아간다.
저자는 다양한 예시와 사례, 그리고 자신만의 철학을 덧붙여 우리에게 이런 점을 일깨워 준다.
저자는 이렇게 조언한다.
[연애를 프로젝트화 하지 말라.]
사실 우리 주변에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들을 보면,(물론 한국에 쏟아져 나오는 책 중 많은 책들이 미국 번역서라는 걸 감안한다면, 미국은 한국보다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라 본다.) 삶의 모든 부분을 계획하고 조종하고, 예측 가능한 범위에 두기 위해 애를 쓰는 '기법'을 가르쳐 준다.
그런 책들을 읽고, 그런 게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특히 모범생이라 불리는 하버드생을 비롯, 한국의 평범한 교육과정을 지나 에스컬레이터식으로 대학에 진학한 많은 미혼 남녀들은) 쉬이 컨트롤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앞에 더더욱 조바심을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사랑의 신비를 종중하는 사람은 영속성에 대한 충성 서약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열정적인 감정이 사랑이 아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사랑이라는 걸 주장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연애 지침서를 읽고 쓰는 각종 시나리오들은 실은 무의미한 것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 조금 더 주고 받고, 타인을 조종하며 자기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건 결국 사랑일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년간 짝사랑만 줄기차게 해오며 느낀 결과... 사랑에 빠지면 생각하게 되는 건 오로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집중되는 것 같다.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할지 보다는 '내가 상대방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랑의 본질을 없애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런 식으로 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 아님을, 그저 격정에 그치는 카섹시스에 불과함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우리가 상대방이 가진 다양한 면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비로소 그의 본질을 사랑하게 될때에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것이며, 열정에 빠지고, 사랑을 알아가고 또 헤어지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성숙해질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이 중 '첫눈에 반해' 열정을 불태우는 그 사람의 다른 부분 역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특히 더 깊이 와닿았다.
그리고 우리는 라캉이 말한 '그것'을 가진 사람에 첫눈에 빠진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는 무언가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때문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또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이 '그것'을 지녔기에 무한히 우상화 하는데, 연애 후 연인들이 서로에 대해 분노와 짜증을 느끼게 되는 건 '그것'과 배치되는 또 다른 연인의 특성을 발견하면서 이런 우상적 느낌이 배신당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설명을 들으며 생각해 봤다.
내가 홀로 몇 년간 짝사랑을 했던 사람 둘 다, 진화생물학적으로 여자가 사랑할만한 남자들은 아니었다. 그 남자들은 전혀 다른 외모,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묘한 분위기상의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내게만 느껴졌던 어떤 분위기 말이다.
그게 바로 라캉이 말한 '그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는 '그것'때문에 이들을 그렇게 열렬히 홀로 사랑했던 거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과 배치되는 어떤 특성을 발견하게 되어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들과 내 관계가 어떤 상호성 하에 이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나 역시 일정 부분에서 그들을 우상화 했던 건 사실이었고, 저자의 글을 읽으며 상대방에게서 '그것'과 배치되는 어떤 특성을 발견하게되어도 이를 인정하고 이해할 줄 아는 성숙함을 길러야 겠다는,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손쉬운 해결책이 아니다. 사랑에서는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가장 큰 수확을 얻는다.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지만, 대박을 터트릴 수 도 있다.
오랜기간 내가 짝사랑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상대방의 거절이 두려웠다.
타인이 보는 나를 생각하면서 나는 가장 무난하고 편안한 길을 택했을 뿐, 진심으로 나를 위한 선택을 하진 못했던 것 같다.
특히 저자의 글 중 깊이 공감했던 부분은 저자의 젊은 시절 연애가 실패로 끝났던 경험담에 관한 부분이었다. 저자는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연애에 실패한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대학시절 연애 실패담을 예로 든다.
여러번 장학금을 받았지만, 하버드(학비가 비싼...)를 다니며, 학비를 감당하지 못했던 저자는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 자신의 초라한 집안 배경 때문에 자주 위축감을 느꼈고, 남자친구들과 헤어지면서 '너는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졸업후 독립해 자신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떳떳한 직장을 가지고는 연애가 잘 되지 않아도 그런 이유 때문에 이별하게 되진 않게 되었다.
저자의 상황은 내 상황하고 너무도 비슷했다.
지금까지 지고 있는 학자금 대출, 또 앞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지게될 빚들, 초라한 집안 배경....... 이런 부분들이 내게 큰 짐으로 다가와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심지어 내 마음이 일방통행이 아니었다는게 확인되었던 경우에도 나는 자신감 부족 때문에 관계를 쉽게 파탄내곤 했었다. 이런 자신감 부족은 후에 버림받으면 어떻게하지, 하는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내게 그런 두려움은 상호적으로 함께 나누는 사랑을 피하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진실되고 성숙한 연인은 당신이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도와줄 수 있고, 그런 문제로 당신을 버릴만한 남자라면 삶에서 스쳐지나간 사람으로 생각해도 된다고 이야기 해준다.
결국, 상실 역시 사랑의 한 부분이고 이 모든 것이 삶의 한 과정인데....... 나는 지나치게 몸을 사리느라 아무것도 취하지 못한 것이다.
나와 비슷한 저자의 과거 상황이 그 어떤 예시와 설명보다 더 큰 위안으로 다가왔고.......
덕분에 나는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며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우려되는 위험정도는 기꺼운 마음으로 감사히 감수할 용기를.
저자는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바들을 이렇게 정리한다.
1. 너무 애쓰지 말기.
2. 너무 조심스러워 말기.
3.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분석말기
4. 자신의 강인함을 미안해하지 않기.
5. 자신의 약점을 두려워 말기.
6. 자신을 원하지 않는 남자를 쫓아다니지 말기
7. 문제 없는 남자 그만 찾기
8. 사랑하는 사람을 조종하지 말기.
9. 지나간 잘못을 후회하지 않기.
10. 상실을 순전히 상실로 생각하지 않기.
저자의 요약은 내가 짝사랑을 할 수 없었던 이유와 부합한다..
결국 사랑은 삶의 한 과정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사랑을 삶의 과정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한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