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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난 단편에는 꽤 약하다. 좀체 이야기가 마음에 닿는 게 별로 없다. 특히 추리소설에서 보여지는 단편들은 더욱 그렇다. 좋아하는 온다 리쿠의 소설에서도 특히 단편에서는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했다. 처음부터 밝히지만 난 <행각승 지장스님의 방랑>에서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정감가는 인물도 없고 유일하게 캐릭터가 형성되어 있는 건 이야기의 호스트이자 주인공인 지장 스님뿐. 하지만 그렇게 단단하게 캐릭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냥 겉멋 조금 부리고 브랜드에 민감한 행각승 정도.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한번도 트릭에 대해 고민해 보거나 작가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추리소설을 전개하는 이야기의 방식과 소재에 조금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다. <행각승 지장스님의 방랑>에서 세헤라자데의 이야기가 나오는 <천일야화>가 떠오른다. 상처받은 왕은 매일 밤마다 세헤라자데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세헤라자데는 다정하지만 조금 엄한 분위기로 천진난만한 그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행각승 지장스님의 방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장소가 "에이프릴"이라는 바(Bar)이고 이야기꾼 세헤라자데가 스님으로 바뀌어 있다는 정도. 천자들은 스님의 이야기 중간중간 나서서 사건의 열쇠를 풀어보기 위해 열을 올린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어째 다들 지장스님보다는 한 수 아래다. 지장스님이 청자들에게 인간적인 매력으로 여겨지는 건 아닌 듯하다. 그저 일상에 지쳐있던 자신들에게 단물같은 이야기로 자신들을 달래주기 바랬던 것 같다. 지장스님은 스스로의 추리적인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범인을 맞추기 위해. 복선을 설명해 주기 위해 이야기의 호스트를 자처하고 청자들은 "독자"들을 대신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추리소설이 갖는 성격을 화끈하게 얘기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재밌으면 그만!" 어쩜 이렇게 쿨할까.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독자가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동의하는 바다. 추리소설 재밌으면 된다. 아니 어쩌면 이야기를 찾아 책을 펼치는 이야기 마니아들에게는 이야기에서 얻고자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재미!아닌가. 하지만 <행각승 지장스님의 방랑>이 재밌었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렇게 머리를 상쾌하게 해준다거나 너무 명쾌해서 무릎을 치게 했던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