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리즈키 린타로는 자신의 이름을 작중 탐정에게 부여했다. 추리소설 작가 "엘러리 퀸"의 열혈 팬임을 자처하는 린타로는 퀸의 방식대로 탐정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서 따오고 탐정의 아버지는 경찰관으로 후에 함께 미궁의 사건을 수사한다. 사실 난 엘러린 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엘러리 퀸에 빗대어서 비교하면 좋겠지만 민망하게도 난 정통 미스터리 쪽은 흥미만 있을 뿐이지 많은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간간히 접하는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보면 그쪽은 미스터리 소설 붐이 제대로 불었는지 이렇게 서구의 유명작가를 오마주격으로 모방해서 작품을 이어나가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일본의 유명한 조각가 가와시마 이사쿠는 필생의 역작을 작업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한다. 탐정인 린타로는 조각가의 친동생의 지인으로 그의 비밀스런 사건 의뢰로 필생의 역작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라이프 캐스팅 (살아있는 사람을 직접 석고로 떠서 조각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던 조각상의 "머리"가 사라진다. 누가 머리를 훔쳐갔는지, 왜 훔쳐 갔는지, 그리고 아직 공개되지 않았던 그 비밀스런 작품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린타로는 눈으로 보지 못했던 사실들을 정황만으로 밝혀내야 한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만 진실이 담고 있는 억만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만큼 대담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그럼에도 진실을 알기 위해 위험한 길로 스스로를 이끈다. 설사 그 뒤에 비참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해도.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진실을 어떻게서든 감추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미스터리 소설에서는 악의 편에 발을 담그고 있고 선량한 미소와 깔끔한 배경으로 위장하지만 그 뒤에는 추악한 이면이 숨어 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이 사실로 밝혀지는 것이고 그 일을 막기 위해 한번 피를 묻혔던 손에 다시 한번 피를 묻힌다. 수작이다. 하지만 재미는 있는 반면 너무 뻔한 패턴 때문에 "수학의 정석"쯤에 비유하자면 "유제문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후에 밝혀질 복선들을 초반에 깔아놓고 용의자의 초점을 엉뚱한 데로 쏠리게 하기 위해 제3의 인물을 중심으로 부각하고 용감했던 죄로 너무 빨리 생을 마감하는 선의의 희생자를 등장시킨다. 탐정 린타로에 대해 짧게 언급하자면 뚜렷한 개성이 드러난다고 하기에는 조금 밋밋한 느낌이 드는 캐릭터였다. 난 미스터리 탐정 캐릭터에 꽤 깊게 열광하는 편인데 성격이 개성있게 드러나는 탐정들에게 좀더 근사한 매력을 느낀다. 린타로는 조금 아쉬운 캐릭터였다. 서운했던 부분은 가장 진실에 가까이 다가갔던 "그 인물"의 비중이 의외로 적어서 "그 인물"이 느꼈던 충격적인 진실은 후에 린타로의 그저 전하는 글로 담겨지는 부분은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다. 결국 사건을 위한 소모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미스터리 소설은 재밌지만 때론 희생되기에는 아까운 캐릭터도 더러 있다. 미스터리 소설이란 역시 인물보다는 사건이 중심이고 사건이 "주인공" 같다. 잘린 머리의 수수께끼를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그 인물의 죽음은 지금도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