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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메타픽션만큼 작가에게 편리한 장치가 있을까? 독자에게 자신이 의도한 길대로 가게끔 안내하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과 그동안의 내용에 대한 해명내지는 변명을 위해 자유롭게 끼어들 수 있으니 말이다. 처음 메타픽션 작품을 접한 건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다. 해피엔딩과 비극적엔딩을 보여주며 작가는 어렵게 책에 마침표를 찍었었다. 공교롭게도 <프랑스 중위의 여자>도 인간의 이기심과 빅토리아시대의 고루하고 진부한 허울의식을 비판하며 프랑즈 중위의 여자를 감싸주었었다. 그 책에서도 사람들은 보고싶은 것만 봤고 모든 걸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프랑스 작가' J.M. 에르'도 제 눈에 안경이라는 시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꼬집고 있다. 그는 다양한 구성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하며 독자에게 일종의 놀이를 제안한다. 독자는 여기에 체, 예스!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독자의 게임참여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저 평소처럼 주어진 텍스트를 읽어가며 내용을 상상하고 자유롭게 판단하고 자유롭게 해석하고 자유롭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길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처럼 보이던 이 게임도 결국에는 하나의 길로 통하게 된다. 왜냐면 독자인 당신도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편견을 갖고 있었고 바로 그런 편견이 후에 가서 멋지게 당신이 이해했던 내용을 뒤집고 뒤통수를 빡시게 때려줄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개를 돌봐줘>는 파리 9구 둘르 블레트가 5번지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의 세입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모든 건 확실하지 않다. 이들이 단지 맥거핀에 불과한 작가가 의도한 장치였는지 누가 알겠는가. 누가 주인공이었는지는 아주 나중에 소설의 결말에 가서야 밝혀지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은 이웃들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사람들이다. 그중에 막스 코른느루와 으젠 플리슈는 같은 날 이사 와서 맞은 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있는 관음증의 피해자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신이시여! 이들을 굽어살피소서.) 소설에서 가장 많은 재미와 유머를 선사하는 사람들이지만 당사자들은 얼마나 피곤하고 짜증 게이지 만땅이었을까. 하지만 자신의 이기심을 탓하시길. 서로의 일기를 통해 이들의 생중계되는 감정을 읽어볼 수 있었던 건 이 소설을 통해 맛볼 수 있는 독자의 많은 즐거운 경험중에 하나다. 이 둘은 모른다. 서로에게 얼마나 비슷한 구석이 많은지. 그리고 바로 상대의 그러한 점에 염증을 느낀다는 게 왜 아이러니로 느껴지는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게 여기에 딱 들어맞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라두 부인의 편지! 그녀는 자신만은 세련되고 예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그녀의 행동은 모순투성이다. 이웃들의 사생활을 어머니에게 편지로 전부 까발리고 자신의 이기적인 시각을 아무런 갈등없이 써내려가는 관음증 캐릭터의 결정판이었다. (신이시여! 이 여인 또한 잊지말고 굽어 살피시길~)
현대인들은 타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중무장하며 살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이웃들에 가하는 편견과 경계는 소름끼칠 정도다. 무관심과 모른 척이 마치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명약인 것 마냥 살아간다. 성냥갑처럼 똑같은 모양의 건물들에 살고 있는 우리들, 그리고 새로 이사온 이웃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기보다는 일단은 재고 파악하려하고 나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으로 보이면 알 수 없는 실망감도 느끼고, 우리는 타인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나에 대한 유별난 관심을 보이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경계의 고삐를 바짝 조이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개를 돌봐줘>는 뭔가 달랐다. 아파트 세입자들은 일단 새로 이사온 이웃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감하게 PR한다. 자신에 대해 어떤 판단이 내려지는지 그들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단지 "나 여기 있어요! 나는 이런 일을 하면서 밥을 먹고 살아요! 경계하지 마세요! 우리 친구처럼 지내요! 우리는 외롭고 또 평범한(?) 사람들이잖아요."
의문의 살인사건과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수수께끼같은 등장인물들, 그리고 소설 초반부터 등장해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제3의 목소리 (대체 당신 누구야!! 작가야? 집주인이야?- 정답은 소설의 결말에 가서야 알 수 있다. 그 목소리의 정체를!)까지 뭐하나 전형적인 것이 없이 독창적이고 신선하다. 거기에다 유머를 가장한 훌륭한 메시지까지 담겨있다. '유즈얼 서스펙트'에 버금가는 반전과 읽는 독자의 고정관념까지 비틀어놓는 분하지만 엄지손가락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