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공교롭게도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중동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학살극이 자행되고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에게 무장단체 하마스를 무너뜨리겠다는 명분으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하고 있다. 감상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스라엘의 시온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묵인또는 반대성명만 낼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아랍연맹은 이스라엘의 이번 폭격은 전 아랍을 상대로한 도발이라고 명명했다. 2009년의 떠오르는 해를 평화 속에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무자비한 폭격이 얼른 멎으길, 총성이 울리고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의 잔해 속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냉전이 종식된지 20여년이 다되어 가지만 우리는 지금 감히 평화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 

9.11을 겪은 미국과 부시정권은 성명을 발표하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물론 일방적인 폭격이었고 수많은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들이 희생당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을 몰랐다. 세계를 향한 테러를 자행하는 빈 라덴과 알카에다에 우호적이다는 이유로, 아니 그들과 한패였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폭격을 감행하는 미국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숫자를 세는 게 무색해진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에 우리는 무감각했다. TV는 탈레반의 극악무도한 행적을 보도하며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최우선임을. 그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아프간 민간인에 대한 피해는 애써 외면했다. 마치 그 길만이 아프간인들에게 평화를 안겨줄 것이라는 듯이.

아프간은 그동안 우리나라 못지않은 기구한 현대史를 겪어야만 했다. 소련의 침공으로 공산주의를 경험했으며 수많은 게릴라들의 항전으로 오랫동안 내전을 겪어야만 했다. 가장 최근이 탈레반이었다. 나는 아프간의 기구한 현대사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으며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아프간은 평화를 당연하게 바라왔지만 그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가족들이 죽었고 불과 어제까지 함께 인사를 나누던 이웃들이 폭격에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깔려 죽었다. 거리는 폐허가 되어 버렸고 사람들은 진이 다 빠져 고통스럽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총성과 전쟁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간의 기구한 현대사와 특별'대우'가 아닌 특별'취급'을 받은 아프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여성들에 대한 학대와 차별은 여성들을 고통 속에서 살게 했다. 그녀들은 참아야만 했다. 딸이었고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국가의 법이라는 것이 여성들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법으로부터도 경멸을 당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는 폭정과 폭력 밑에서 그녀들은 서로를 위로했고 감싸주었다. 고통스런 순간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다.

아비없이 태어난 자식에게도, 아니 아들이 아닌 딸이었어도 누구나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녀들의 행복에 대한 결정권은 그 누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째서 그녀들은 스스로의 인생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인가. 딸(자식)이고 어머니(아내)가 아닌가. 왜 그녀들은 두려움에 떨며 일상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을 남의 간섭을 받으며 해야하는 것인지. 아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인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현실이었다니. 아프간 여성들의 역사였다. 눈물의 역사, 가슴에 새겨진 상처와 작은 몸에 수없이 생겨난 딱정이와 흉터가 말해주는 폭력의 역사.

최근까지도 중동에는 명예살인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가문의 명예를 더렵혔다는 이유로 가족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희생된 그녀들은 이슬람의 보수적인 율법을 어겼다. 그녀들은 이슬람교도가 아닌 남자를 사랑했거나 부르카를 착용하기를 거부했거나 남자들보다 너무 열성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려 했다는 이유로 짧은 인생을 남도 아닌 가족에 의해 마감해야 했다. 그들의 율법서 코란에 과연 그렇게 나와 있을까.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거기서 말하는 생명에 여성은 제외란 말인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먹먹함과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절망적인 삶을 참아내야 하는 아프간 여인들의 한스런 인생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것은 아마 현재형의 이야기일 것이다. 꼭 아프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인권 유린에 노출된 여성들을 얘기하고 있다. 전쟁과 가난의 최대 희생자는 여성과 아이들이다.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 다른 이의 평화를 짓밟고 유린하는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지구도 병들어 가고 있지만 인간도 병들어 가고 있다. 정말 빌어먹을 세상이다. 여기서 잠잠하면 저기서 또 비슷한 일이 자행된다. 지난 반세기동안 이 지구상에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겨우 3주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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