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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0대들의 빗나간 욕정때문에 소중한 딸을 잃은 아버지 나가미네는 캠코더에 녹화된 테이프를 통해 딸이 녀석들에게 끔찍하게 윤간당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충격에 빠진 나가미네는 딸의 복수를 시작한다. 법은 자신의 편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손으로 녀석들을 처절하게 응징해야만 한이 풀릴 것 같아서 도망친 녀석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3년 전 우리나라에서 떠들썩했던 미성년자 집단성폭행 사건이 밀양에서 있었다. 여중생은 또래 남학생들에게 집단으로 강간당했고 사건이 알려진 후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여기자의 가슴을 주무르고도 술김에 그랬다고 오리발 내민 모의원이 당당히 선거에서 당선돼 금뱃지를 다시 달게된 실로 이해 안되는 구석이 많은 나라가 아닌가. 혹시 저 사건에 가해학생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기억나는지. 당시 재판을 담당한 판사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피의자들이 집단적으로 성행위를 한 사안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으나 피의자들이 모두 고교생으로 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되고 교화 가능성이 적지 않다. 피해자들이 정신적 피해에서 벗어나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집단 성폭행(특수강간)부분은 형사처벌보다는 소년부 송치가 합당하다."
여학생을 강간한 학생들을 소년교도소로 보내지 않았다. 저 판결문에 신경쓰이는 내용이 한두개가 아니지만 가장 어이없는 부분은 피해자들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이 부분이 특히 그렇다. 어떻게 알았을까. 피해자들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났는지.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건 피해자들이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피해학생들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났다는 증표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소년부에 갔다는 얘기는 가해학생들이 죄질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은 판결문에도 나타나있다. 가해자를 배려한 판결문이라는 것을 교화가능성과 학생이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말하고 있을 뿐이다.
<방황하는 칼날>의 나가미네는 애지중지 키워온 외동딸을 녀석들의 빗나간 성의식과 비뚤어진 욕정의 분풀이에 희생당했다. 그리고 이 책은 나가미네의 입장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죄질과는 상관없이 그저 관대하기만한 소년법이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인간이라면 저질러서는 안될 끔찍한 범죄마저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소년법을 통해 그들을 보호해 주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 아이러니한 법에 대한 분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피해소녀의 아버지 나가미네인 것이다.
경찰은 복수를 하기 위해 가해학생을 쫓는 나가미네를 잡으려 한다. 하지만 수사를 맡은 경찰도 나가미네의 딸이 가해학생에게 윤간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딜레마에 빠진다. 나가미네를 잡는 게 옳은 것인지, 왜 자신들이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가해학생을 살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공권력이 무능하다고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의문을 소년법에 눈을 한번 돌려 찾아보기를 작가는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눈에는 어떤 모순이 보이지 않는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독자는 자연스럽게 바로 이 소년법의 모순 앞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나날이 그 수법이 교활해지고 잔혹해지는 미성년자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법은 아직까지는 이렇게 빛의 속도로 달라지고 있는 미성년자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가 빠지는 딜레마가 바로 그것이다. 피부로 느끼는 범죄와 그 결과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데 나중에 가해자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이 너무 관대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소년법이 이런 부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관대한 판결로 인해 누군가는 찢어지게 마음아픈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바로 피해자가족이다. 형사사건의 특성상 재판에 회부된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그 가족은 들러리가 된다. 증인 역할밖에 할 수 없다. 사건에 직접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년법을 이런 시각에 맞추어 개정할 수만은 없는 게 이런 논리대로라면 지금의 10대 남학생들을 잠재적 성폭행범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또한번 도덕적인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얼마 전 개봉하고 대박난 영화 '추격자'와 '세븐데이즈'의 공통점에 대해서 얘기해보려 한다. 어쨌든 둘다 결론은 피해자가 가했던 사적복수에 무게를 실었고 관객들은 그런 모습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쨌든 영화는 개인이 인간같지도 않은 가해자에게 분노와 응징을 담아 직접적인 힘을 행사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마 대다수의 관객들은 영화의 내용 자체에 더 높은 점수를 준 게 아닌가 싶다. 여기에는 공권력과 법원의 판결로는 이들에게 느꼈던 분노가 제대로 해소되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전제된 게 아니었을까.
경직되고 수동적은 법의 판결보다는 신속하고 직접적인 사적복수를 담은 영화에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는 건 그래서 참 재밌는 결과다. 아무튼 책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가 이야기에 녹여낸 설득력은 이번에는 정말 예사롭지 않았다. 그동안 읽어왔던 다른 작품보다 목소리에 힘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다. 그래서 때로는 인물들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작가의 목소리인지 궁금해지는 부분도 더러 있었다. 그만큼 손에 힘을 많이 주고 글을 써내려간 게 아닐까. 덕분에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새로운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