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자신의 인생을 놀이에 바쳐버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을 변호할 불쌍한 변호사에게 긴 편지글로 자신을 변론하려 한다. 지독히도 논리적인 먹물이 자신의 범죄(살인)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다.

나폴레옹의 후계자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변호사 뵈를레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처럼 놀이에 오랜 세월 공을 들이고 티도 안나는 내적인 만족에 취하는 소박한 놀이의 우승자가 어디 있을까. 뵈를레가 즐기는 놀이의 방식도 독특하지만 놀이에서의 승자의 모습치고는 상당히 구차하고 지쳐보이기까지 하다.

뵈를레가 스스로 밝힌 놀이의 차별성을 한번 보자. 놀이의 순수성을 참 징하게도 강조하는 그의 놀이는 그 어떤 금전적인 이익을 취해서는 안된다. 그가 쥐약처럼 여기는 도박과 로또는 그래서 놀이가 아닌 것이다. 그의 편집증적 결벽성의 연장선과 놀이의 순수성이 닿아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뵈를레의 삶의 방식은 어떤가. 우선 진보 좀 했다는 현대사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보호를 목적으로 민주주의를 수단으로 실현한다. 하지만 여기 아주 독특한 혼자만의 공동체를 0.0001 나노미터 크기로 간소하게 꾸려가는 뵈를레의 세계에서는 놀이를 목적으로 번듯한 직업과 인간관계는 그저 수단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인간성은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는 이기적이고 쉽게 말해 내꼴린대로 사는 게 솔직한 인간성이라고 주장하는데 인간이 매사를 나만 위하고 나의 이기심을 만족하기 위해 살아갔다면 세상은 원시세계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내 가족과 타인의 불편함을 계기로 고안되고 만들어진 인류 최고의 발명품들이 얼마나 많은데. 뵈를레가 발 딛고 서있는 독일 사회도 현재의 사회구조와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저런 속편한 소리를 짖거리시는 건지.

그가 놀이에 부여한 우아하고 지적인 성격이 가능했던 것도 어찌보면 저런 희생의 반사 이익이 아닐런지.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기적인 면들은 그의 논리와 부정할 수 없는 그의 긴 인생여정 덕분에 오히려 굳건해지고 틈이 없어서 철옹성같은 성벽처럼 느껴진다. 고작 할 수 있는 반론이 독특하네~정도밖에 깜냥이 안되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대단히 약한 사람이다. 그의 이런 굳건한 삶의 원칙과 방식은 조금의 돌발상황에는 맥을 못추는 풍전등화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는 그가 쌓은 굳건한 테두리 안에서나 자유롭게 통할 뿐 그 밖에서는 그저 마이너쯤으로 치부되는 궤변일 뿐이다.

그의 놀이에서 그를 이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그를 미치게 만들면 되는데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뵈를레에게는 아주 간단할 수 있다. 그가 놀이에 걸고 있는 순수성을 더럽게 훼손하는 것이고 게임방식을 철저하게 어겨주면 의외로 게임은 쉽게 끝날지도 모른다. 책에서도 그는 아주 사소한 어긋남에 나약한 내면의 목소리를 드러냈고 때로는 도망치기도 했다. 아하. 이렇게 재밌는 사람이 있나. 그가 예의로 대하면 이쪽에서는 모욕으로 맞서면 된다.

하지만 뵈를레는 의외로 강적일 수 있다. 그의 놀이터를 엉망으로 더럽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가 보여주는 상대에 대한 독심술이 '궁예'이상이고 패자에게 가하는 벌칙이 상당히 고약하고 상식이하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건 자신은 놀이에서 애초부터 잃을 것이 없었다는 저 22세기형 무소유의 논리를 그 누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 그저 오늘은 감사했다고 기도나 올리자. 이런 인간이 내 주위에 아직 감지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내가 뵈를레의 놀잇감으로 당첨됐다는 얘기가 어딘가에서 들려온다면 우선 나는 다음번 우주인선발대회에서 그 어떤 부정행위를 해서라도 선발돼서 이 지구를 기어코 떠난 다음, 빵상아주머니의 도움을 얻어 우주인과 접선한 후 다시는 이 지구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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