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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역사 ㅣ 뫼비우스 서재
케이트 앳킨슨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경찰을 그만두고 지금은 사설탐정으로 일하는 잭슨 브로디에게 사건을 의뢰한 사람들이 있다. 34년 전 막내여동생 올리비아를 잃어버린 자매 아멜리아와 줄리아, 10년전 사무실에 침입한 괴한에게 딸 로라를 잃은 아버지 테오, 25년전 형부를 살해한 언니 미셸과 미셸의 딸 탄야를 찾고 싶어하는 셜리. 그리고 어릴 적에 누나와 형을 잃은 잭슨까지. 세상 누구보다 소중했던 사람들을 타인의 잔인한 손에 어이없게 보내야만 했던 사람들이다.
사고가 있은 후 이들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살아간다. 이런 끔찍한 일을 겪은 후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인생의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갈 수 없었다. 마치 이들이 치러야 할 삶의 댓가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숨쉬면서도 조금은 다르게 숨쉬어야 했고, 먼저 간 혈육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인생의 낙을 포기했다. 남은 자신들이 지고 살아야 할 삶의 고통으로 받아들였다. 속죄하는 심정으로.
죄의 댓가를 이들이 치러야 하는 건 아니다. 가해자는 따로 있다. 그런데도 기쁨과 슬픔을 더이상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아쉬움을 남아 있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건 왜일까. 함께 있을 때 즐거웠고 행복했기 때문에, 홀로 있을 망자가 혹시 외로워하지는 않을까, 함께 했던 자신을 그리워하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간 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잭슨에게 의뢰한 세 건의 사건은 미해결 사건이다. 실종된 올리비아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로라를 살해한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미셸의 딸 탄야도 아직 찾지 못했다. 이미 죽었을지 모르는, 이미 죽은 이를 위해, 그리고 남아있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야만 이들은 지금보다는 조금 나은 기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슬픔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것이다.
잭슨 자신의 결혼 생활은 실패로 끝났지만 어린 딸 말리에게 이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다. 잭슨이 읖조렸던 것처럼 어쩌면 세상은 죽어야만 안전한 곳이 되어버렸을지 모른다. 굉장히 우울하고 안타까운 얘기지만 세상의 딸들에게 이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차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뉴스를 보시라. 하루가 멀다하고 흉악범죄가 발생한다. 어린 아이들에게 성욕을 느끼는 페도필리아가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사회에 쌓인 분노를 힘 없는 여성에 대한 무차별 살인으로 해소하려는 싸이코패스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과거형으로만 말할 수 있는 얘기였으면 좋겠다.
남은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한 건, 나는 소중한 사람을 잃었어도 세상은 별일 없었다는 듯이 멀쩡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겪은 아픔은 내 안으로 다시 삼켜야 한다. 먼저 간 이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은 또 다시 마음을 아리게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가야만 한다. 죽은 이를 위해서라도. 그래도 삶은 이어가야 하니까. 그게 얼마나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건지는 그들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아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만은 아니길, 소중한 걸 진심으로 잃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굉장히 마음 아픈 현실이다. 이 소설은 그래서 -사라진 딸들에게 보내는 진혼곡-같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