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이 그린 라 퐁텐 우화
장 드 라 퐁텐 지음, 최인경 옮김, 마르크 샤갈 그림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처음 샤갈이 라 퐁텐 우화의 삽화를 그렸을 때에는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있어나 보다. 러시아에서 건너 온 화가, 그에게 보내는 잘난 프랑스 미술계의 불편한 시선과 함께 샤갈의 삽화는 다른 화가들의 삽화로 이미 수차례 출판된 라 퐁텐 우화의 여러 버전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 누가 중심인지 제목을 보시라. 바로 그 유명한 샤갈이다. 한마디로 사람의 출세를 한눈에 보여주는 제목이 아닌가. 지금은 샤갈이 그렸기 때문에 특별한 우화집으로 소개되는 것이다. 이런 걸 전세역전이라고 부르는 걸까.

원색적인 색체로 샤갈 그림 특유의 색감을 만나볼 수 있다. 라 퐁텐의 우화에 샤갈의 삽화까지 곁들여 책을 볼 수 있다면 일석이조의 감상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곁들여진 그림은 사실 이야기가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그림을 읽기가 쉽지가 않다.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서 그림을 해석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고정적인 이미지가 그려져서 아무리 샤갈의 그림이라지만 샤갈이 라 퐁텐의 우화를 어떤 식으로 해석했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샤갈의 그림을 보다보면 그는 색깔의 틀을 과감하게 뛰어넘는 것 같다. 우리가 흔히 고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들의 색깔을 샤갈은 자기만의 해석으로 다른 색으로 표현한다. 그의 그림에서 의외의 색깔 표현을 통해 표현된 부분을 찾아보는 건 아주 쉬운 발견에 속할 것이다. 색깔의 경계로 윤곽을 흐릿하게 표현한 그의 그림은 그래서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느낌까지 연출한다. 흐릿흐릿한 잔형으로 남겨진 그림의 진짜 이미지를 추측해보는 것도 그림을 재밌게 감상하는 방법일 것이다.

라 퐁텐은 프랑스의 동화작가이자 우화작가이다. 그는 세계 곳곳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여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했다. 이야기는 친숙하고 낯익은 우화에 짧은 아포리즘적인 메시지를 전해준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인간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다. 욕심을 부리면 벌을 받는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부터 꾀를 부리면 나중에는 그 이상으로 힘든 일을 겪을 것이라는 경고까지 어리석은 인간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부차적인 문제들을 짧은 이야기에 압축해서 보여준다.

짧은 분량으로 이야기도 쉽게 읽히는 만큼 단순히 텍스트를 읽고 그림을 슬쩍 보는 정도에 그친다면 이 책을 아깝게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틀에 갖혀 그림을 이해하는데 어떤 제약이 주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이야기에 곁들여진 삽화로 보고 책을 다시 한번 읽을 때는 이번에는 샤갈의 삽화만을 자유롭게 해석하며 샤갈이 그림에 담은 샤갈만의 해석을 추측해 보는 것도 즐거운 독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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