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거짓말
기무라 유이치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상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촉망받는 시나리오 작가가 갈대같은 마음을 누리지 못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훌쩍 떠난다. 억눌려 있던 일에서 좀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러다가 작은 소도시에서 바텐더로 안착한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뒤로 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들과 알게 된다. 상처받은 영혼인 남자는 밝고 성격 좋고 얼굴도 반반한 이웃집 라멘가게 딸과 알게 되고 둘은 러브러브하는 사이가 된다.

뻔한 내용인데 설렘은 살아있다. 가볍게 보면 가볍고 뻔한 것을 고깝게 보면 얼마든지 낮잡아 평할 수 있는 내용이다. 아주 원론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소설에는 발단,전개,절정,위기,결말 이라는 구성단계가 있다. 이 책의 내용은 그런 구성을 나누는데 하등의 어려움이 없는 아주 전형적이고 형식이 뚜렷한 연애소설이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 나오키는 1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드라마 작가라고 한다.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갈등을 한다. 나는 여기서 낯익은 장면이 오버랩 된다.

집안의 압력과 분위기에 이끌려 마지못해 아버지 회사에 출근하는 재벌집 아들내미가 있다.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걔네들말이다. 그런류의 남자가 정체를 숨기고 허름하고 궁색한 술집에 바텐더로 자리 잡는다. 거기서 그의 눈 앞에 나타난 이웃 라멘가게 딸내미. 밝고 씩씩하고 꾸밈이 없지만 일단 한번 꾸며주시면 미인소리는 듣는 여자다. 여기서 뭐 또 오버랩 되는 거 없나? 그렇다. 순정만화나 저런 재벌집 아들내미들이 드라마에서 알게 되고 바로 이 여자야!라고 느낄 그런 여자다. 어디선가 이런 대사가 들린다. "널 만나고 모든 게 달라졌어." "날 이렇게 당황하게 만든 건 네가 처음이야." "너만이 날 평범하게 봐주는구나." 그리고 이렇게 연인들이 달콤한 사랑을 속삭일 때쯤 갈등 요소들이 득시글거리기 시작한다. 끝내주는 외모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 등장해서 촌스러운 저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내 남자에게서 떨어져." "주제를 알아야지." "OO씨는 그냥 너를 갖고 노는 거야. 그냥 잠깐 즐기는 거라고."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의 오해. 그리고 이제는 이 여자분이 방황해주실 차례다. 남자는 여기서 여자가 오해하고 마음에 상처받았음을 몰라야 한다. 왜? 뒤늦게 깨닫고 아파해야 하는 장면이 있어야 하거든. 여자를 찾아다니는 남자. 그리고 극적으로 화해하고 끈끈한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두 남녀. "이제 아무데도 못가~" "다시는 너를 떠나지 않을거야."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두 남녀. 잠깐 검은색 화면이 짧게 이어지더니 에필로그 화면이 나온다. 사랑의 결실을 맺는 연인들의 행복한 미소, 그들 뒤에는 이제 밝은 미래만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며 극은 끝이 난다. 이어서 엔딩 자막이 올라간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렇게 뻔한 사랑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두손을 들고 "No!"라고 외친다. 이젠 됐다는 분위기다. 딴 얘기 뭐 없냐는 분위기다. 수채화같은 사랑 얘기. 해피엔딩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한 악역같은 조연들은 이젠 사절이란다. 이렇게 개성없는 시나리오는 그만 쓰란다. 그런데 여기 그런 이야기가 문을 두드린다. 난 좀 다를 것 같은데 하면서. 그래? 한번 읽어볼까? 뭐야~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아니야 이번엔 다를 거야. 좀더 지켜보자고. 결국, 역시나, 어쩐지, 그럼 그렇지였군. 설레이고 감동적이긴 한데 개성은 없어. 솔직히, 영화 시놉시스처럼 간단하게 줄일 수 있는 이야기잖아. 그래도 연인들이 해피엔딩이라니, 머리 복잡하고 가끔 연애소설이 읽고 싶을 때 추천해 줄만은 한 것 같다.

흔하디 흔한 순정연애소설의 공식을 배신하지 못하는 아주 모범적인 소설이다. 여타 많은 그런 소설들 중에 이번 소설은 '시나리오 작가와 귀여운 라면집 아가씨 버전'이라는 부제를 달아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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