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대성당레이먼드 카버문학동네2007.12.10

 

 

 

나는 단편을 유독 기피합니다. 어딘지 좀 가벼운듯 호도(糊塗)하여 그 짧은 이야기들이 늘 못마땅했습니다. '고작 원고지 몇 장으로 무슨 얘길 쓰겠단거야!' 라는 범박(泛博)한 어깃장이었지요. 그런데 작년 그리고 올해 우연히도 단편집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그 이야기들이 나의 오만을 보란듯 너그러이 포용합니다.

 

레이먼드, 그는 일상속에 비일비재하게 존재하는 -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했던 - 삶의 목소리로 진실에 닿습니다.

 

12편의 이야기는 다소 지루할 법하게, 혹은 의아하도록 - 과연 이것이 소설의 소재가 될까 싶은데 너무나 태연히 - 봄날 반짝이는 강물처럼 느긋하게 흐릅니다. 직장동료 부부와의 저녁 식사, 실직 후 쇼파 위 생활에 침잠한 남편과 칸막이 객실에서 기차를 잘못 타게 된 남자, 비타민을 팔고 있는 여자 등 나의 곁 누군가 경험했을 듯한 일상의 에피소드가 소재가 되는데 그 장면은 선명하고 가깝게 마주하다 방심의 찰나의 순간 간유리 너머로 바라보는 듯 께느르한 기분입니다. 몽롱함, 그 안에 조심스럽게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이야기들이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빌려 테이블 끝 아슬하게 얻어진 유리잔처럼 긴장의 끈을 바투 조여옵니다. 신산한 삶,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함께 빵을 먹고, 통화를 하며 마주 얹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상의 행위로서 회복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은 텍스트 하나하나를 소화시키려는 듯 한템포 더 느리게 읽어내렸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아이를 잃은 슬픔의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안의 부부와 주문한 케이크를 찾아 가지 않는 무책임한 손님에게 화가 난 제과점 주인, 그들 관계의 시작점은 그렇게 어긋나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밤을 지새워 빵을 만들어 팔아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제과점 주인의 삶을 향한 노여움, 아들의 8번째 생일날 사고로 아이를 잃게 된 부부의 절망은 막 구워낸 롤빵으로 위로됩니다. p. 142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어쩌면 고작 롤빵, 그러나 삶의 허기를 달랬던 롤빵. 명치 끝이 아릿합니다.

 

 『대성당』에서는 아내의 맹인 친구의 방문이 탐탁치 않은 남편이 등장합니다. 잠든 아내의 탐스러운 허벅지가 고스란히 드러났는데도 그는 아내의 옷을 제대로 만져주지 않습니다. 어짜피 맹인은 볼 수 없으니까. 맹인을 향한 경시(). 그 시간 우연히 TV에 대성당의 모습이 방영되고 노인은 대성당의 모습을 함께 그려주기를 바랍니다. 노인의 손을 얹고 대성당의 모습을 그려가면서 그의 위약한 경계심은 봄날의 눈처럼 녹아내립니다. p. 352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에 딱 붙어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p. 353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노인의 어두운 눈은 비록 타인의 손을 통해 대성당을 바라보지만 남자는 그 어둠을 통해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닿게됩니다.

 

그저 빵을 먹고 그림을 그리는 특별하지 않은 행위가 고된 삶의 비감함을 어루만지는 일, 그것이 레이먼드 카버의 힘일까요? 

 

그리고 깊은 우연,

사고(思考)의 발화점, 그 곳에는 언제나 '김연수'가 있었습니다.

 

저자의 텍스트의 곧음이 역자를 만나 간결함을 더했습니다. 무심한 듯 툭툭 던져내는 이야기가 친절하지 않더라도 이제 괘념치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으로 <대성당>을 만날 수 있는데 과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을 덧댄 <대성당>은 어떠할지 이런 순간이면 언어에 대한 갈증이 더욱 깊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내게 더할나위 없는 즐거움이지만 그 즐거움이 흔들어 놓은 나의 일상이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허우적거림이 깊어질 뿐입니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의 독서 - 서른, 조금은 서툰 당신을 위한 33가지 독서처방전
박자숙 지음 / 라이온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서른의 독서

박자숙│라이온북스│2011.10.05│p.252 

 

 

 

책을 고르는 일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보태어집니다. 표지의 디자인이 시선을 끌거나, 종이의 재질이 마음에 들기도하고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나도 읽고 대중의 이야기에 한마디 거들고 싶기도 하고 - 그러나 마음뿐이고 베스트셀러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 이 책처럼 제목이 나의 꼬랑지를 움켜쥐고 흔들기도 합니다. '서른'에 한번, '독서'에 한번 더 나는 주저합니다. 흔들리는 마음만큼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 마음을 당신은 이해하시는지.

 

흔들리고 주저했던 마음이 겸연쩍을만큼 <서른의 독서>는 생각보다 가볍게 읽힙니다. 의심도 없이 나는 이 책을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계발서입니다. 커다란 풍선에 불어 신나게 갖고 놀다가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지낸 며칠 후 문득 '아, 풍선!' 이 떠올라 찾아보니 방 구석에 쪼글쪼글 바람이 빠진 풍선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어딘가 좀 허탈합니다. 아마 나는 조금 더 보드라운 위안을 바랐나봅니다. 저자는 25년의 직장생활을 바탕으로 독서멘트로 활동하며 얻은 노하우로 서른쯔음의 제 빛깔을 찾아 익어가는 청춘들에게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맞닥드리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서 조금 더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마다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형식인데 그 책들은 읽어봤거나 들어봄직한 책들이라서 반갑기도 좀 시시하기도 합니다. 눈 앞의 상황이 먹먹해서 어떤 걸음도 차마 내딛지 못하는 이들에게, 책을 읽어보고는 싶은데 매일매일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책들안에서 어떤 책을 먼저 집어야할지 망설이는 이들에게 필요한 도서추천 요점정리 노트랄까.

 

하지만 시험 전 요점정리 노트만으로 백점을 얻기란 불가능하지요. - 물론 요령이 좋아 친구노트 빌려다가 벼락치기 공부로 좋은 점수를 얻은 여우같은 친구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괜히 얄미워!  - 한숨만 가득한 순간, 주옥같은 삶의 진리를 전해 줄 한 권의 책이 필요하다면 이 책으로 자신이 원하는 독서의 가닥을 잡고 시작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시간과 시행착오라는 양념이 잘 버무려져야 맛있는 독서가 되겠지요.

 

 

 

 

 

p. 203

인생이란 '놓칠 뻔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 마음닿는곳에밑줄.

 

p. 56

우리는 많은 일을 동시에 훌륭하게 해낸 사람들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 빌 게이츠가 그렇고 미국의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이 그렇다. 빌 게이츠는 머리감는 일이 제일 싫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한 번에 한 가지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한 번에 몇 가지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사람들은 동시에 많은 일을 잘 해내기 때문에 많은 성취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p. 147

세상에는 온도계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수은 대신 그들의 자존심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자신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은 백 퍼센트 자신의 몫이어야 한다.

 

p. 191

아이슈타인의 말처럼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은 그 문제들이 발생한 때 갖고 있던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문학동네│2007.09.28│p.392

 

 

 

번번히 절망에 무릎을 꿇을 때 적잖은 위화감을 풍기도록 덤덤하게 그래서 도도하게 나를 빤히 마주하는 시선을 만납니다. 김연수, 우연이 반복되며 필연이 된건지 나는 이번에도 깨끗하게 승복하는 수 밖에는 별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살만 류수디의 <한밤의 아이들>로 첫번째 좌절로 나는 슬럼프에 빠졌고 - 살만 류수디의 <한밤의 아이들>의 김연수의 극찬으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흘을 씨름하다 결국 책을 덮었고 - 김연수 작가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마른 활자를 기어코 꾸역꾸역 삼켰습니다. 사실 가장 큰 원인은 내 안에 있습니다. 질적인 독서로의 막연한 두려움, 그렇게 맥락없이 즐거움에 유린된 얕고 가벼운 독서, 그것이 나를 작고 초라하게 합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1991년 여름, 이른바 ' 5월투쟁'이 끝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나'의 시선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는 큰 가지 하나에서 수 없이 뻗어 나온 가지처럼 끝을 모르고 번식하며 생명력을 키웁니다. 나무가지 하나쯤은 부려져도 아무냥도 없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듯 내게는 버겁도록 커다란 이야기입니다.  1991년의 나는 고작 아홉살, 평화롭던 시골마을에서 세상에 내가 전부였던 시절을 누렸으니 내가 그 시대를 그저 한 줌의 고민도 없이 햇빛 반짝이던 행복의 시간이 기억하니 그들의 혼란과 우울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일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끝까지 이 소설을 덮지 못했던 것은 터무니 없이 맹랑한 김연수에 대한 '의리'이고 나의 무지에 대한 '속죄'입니다. 나는 여전히 내 문제에 아등바등 살아가는데 지금의 나보다 푸르렀던 그 청춘들의 시간은 고스란히 91년, 그 시간에 멈추어 있음에의 부끄러움, 그것이 차마 책장을 덮을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가열찼던 그들의 항쟁은 모든 가치가 화폐로 환원되는 지금의 우리에겐 여전히 이해의 선 밖에서 다가올 줄 모릅니다. 그러나 단지 그 시간, 그 장소에 내가 없었음으로 인하여 내가 누린 평화가 과연 정당한 나의 몫이었는지, 내 삶이 언제까지나 나라는 작은 우물 안에서 허우적거림을 멈추지 못함이 정말 괜찮은 것일지 답을 얻기 어려운 무거운 질문들을 내게 끊임없이 던져 놓습니다.

 

이러한 나의 아둔함을 잠시 덮어둔다며 김연수 작가의 이야기는 어찌하였든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라는 제목으로부터의 안도감, 물론 숲을 제대로 보지 못함에 부끄럽지만 하나하나의 가지는 그 푸름이 깊고 열매가 풍성합니다. 또한 이 외로움이 나에게만 특별히 가중되지 않았음을 위로하며 극으로 치닫던 나를 향한 연민을 누그러트립니다. 아하, 표지 또한 어찌나 매력적인지!

 

 

 

p. 150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 마음닿는곳에밑줄.

 

p.  70

가장 육체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사랑은 그런 온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약간 더 따뜻한 상태. 하지만 한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몸에서 전해지는 그 정도의 온기면 충분했다.

 

p. 91

손을 꼭 잡고 걷는 우리는 늘 뜨거웠으므로, 우리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제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다 느낄 수 있었다.

 

p. 254

"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세상이 바로 너만의 세상이야. 그게 설사 두려움이라고 하더라도 네 것이라면 온전히 다 받아들이란 말이야. 더이상 다른 사람을 흉내내면서 살아가지 말고."

 

p. 377

그뒤로 오랫동안 내게는 아무런 감정도 다녀가지 않았다.

 

p.384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 길을 걷다 - 펜 끝 타고 떠난 해피로드 산티아고
김수연 지음 / 큰나무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마음 [길을] 걷다

김수연│큰나무│2012.02.13│p.392

 

 

 

'산티아고'라는 단어에 마음이 먼저 알고 반가워 저만치 앞서갑니다.

 

나만의 베스트셀러 중에 순진의 <순진한 걸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눈물콧물 찍어가며 마음을 흠씬 두들겨 맞았던 책, 그때부터 산티아고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그 길을 걸으리라 하고.  p.5 여행은 우연한 발걸음이다. 열 번의 짐작보다 한 번 떠나보는 것이다. 삶이 그러한 것처럼…. 프롤로그의 그녀의 말처럼 '언젠가는'이었던 몽연한 내 계획의 안개가 산티아고를 다시 만나는동안 차츰 가시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2년 전 <순진한 걸음>을 읽을적보다 - 아주 사소하게는 그녀들의 텍스트의 차이 그리고 커다랗게 다른 그녀들의 시간 때문도 있겠지만. 자신을 거북이 여행자라고 했던 수연님이 40여일을 걸었던 길을 순진은 90일에 걸쳐 걸었습니다. 암과 같은 고통으로 그녀의 삶을 잠식했던 발목통증 때문에 순진은 자신을 달팽이 여행자라 했지요. - 나 많이 자란 듯한 기분입니다. 제법 덤덤하게 그녀의 걸음을 쫓아갑니다. 어쩌면 그녀들의 마음이 내게 스며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웃고, 잘 웃던 마음의 빗장을 순식간에 스르르 열며 다가오던 순진과는 달리 저자는 적당한 거리감을 끝까지 유지한 채 그녀의 마음 바닥까지 온전히 보여주지는 않으니까요.

 

그녀들이 걸은 길은 순례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까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es)' 즉, 800km의 '프랑스 길'입니다. '걷다'라는 지극히 일상 반복적인 행위를 위하여 저마다의 목적으로 길 위에 오른 사람들, 나는 왜 그 길에 서고 싶은 것인지 그녀의 걸음을 뒤따르며 나는 나를 찬찬히 걸어봅니다.

 

 

p. 55

흐트러짐 없이 나이 듦이 쉬운 일이 아니다. 건강한 사고의 폭으로 삶을 걷는 평온하고 넉넉한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무언가 그럴싸한 이유를 대고자 끊임없이 내 안의 답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순간 그녀를 만났습니다. 길 위의 인연 안젤라는 왜 카미노를 걷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별다른 이유없이 떠나온 여정이라고 말하고는 순례자를 위한 대답을 만들어 놓아야겠다며 웃습니다. 그래, 굳이 근사한 답이 없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구나 합니다. 오로지 내 걸음에 집중하는 시간,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 분주했던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욕심내지 않아도 좋을 시간으로 말입니다.

 

'믿다 : 어떤 사실이나 말을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다고 여기다'의 뜻을 가진 동사를 나는 어느순간 잃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모든 순간을 의심하고 불안해 것은 아니지만 '믿다'라는 동사의 완벽한 상태를 100으로 보았을 때 나는 70 혹은 80의 언저리 어디쯤을 헤매입니다. 믿음이 산산이 조각 나서 그 조각의 날카로움에 베어 그 조악한 통증의 고됨을 맛보았다면 또 다른 누군가와 어쩌면 나 자신과도 순도 100의 완벽한 상태의 믿음을 유지하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 216

가진 것이 없다면 이제 진정으로 소유해야 할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p. 226

대화란 상대방에게 귀 기울임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지는 일, 그것이 우리 삶 곳곳에 숨겨진 보석처럼 빛이 납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아문다고 하지요. 그것은 '대체'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인듯 합니다. 혼자 걷지만 혼자가 아닌 길고 거친 길 위에서 짧게는 하루를 스치고 혹은 마음을 기대며 여정을 나누면서.

 

900km에 달하는 긴 여정의 하루하루 이야기를 무심하고 덤덤한 듯 적어내립니다. 내 일기장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질테니까 정말 진솔한 (혹은 부끄러운) 이야기는 쓸 수 없었던 어린시절 방학숙제처럼 그녀의 진짜 이야기가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발의 물집이 수도 없이 잡히고 아물어지며 그녀의 이갸기 또한 아물어감을 만집니다. p.165 예상치 못한 소나기에 당혹스러운 날이었다. 우왕좌앙했지만 지나온 시간은 현재를 살게 한 진통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마음이 웃 자란 어린 나는 슬픔은 눈물로밖에 표현할 수 없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생겼습니다. 어른이 되면 슬플 때마다 울 수 없다는 사실도 함께.

 

 꼭 산티아고는 아니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p.275 "쉬운 답을 찾고, 오래 고민하지 마. 버스를 타고 싶으면 버스를 타고, 걷고 싶을 때 걸어.“ 내가 나를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의 걸음에 보폭을 맞추면 그 뿐입니다.

 

 

 

 

p. 151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으로

아닌 척, 모르는 척

하지 말아줘

나는 너의 삶이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똑똑하게 분노하라 Anger Power - 묵은 화가 산뜻한 에너지로 탈바꿈하는 놀라운 반전 생각법
마샤 캐넌 지음, 안진희 옮김 / 대림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똑똑하게 분노하라

먀샤 캐넌│대림│2011.11.30│p.268

 

 

 :: 화병(hwa-byung)

 

신체 증상을 동반하는 우울증으로서, 우울감, 식욕 저하, 불면 등의 우울 증상 외에도, 호흡 곤란이나 심계항진, 몸 전체의 통증 또는 명치에 뭔가 걸려 있는 느낌 등의 신체 증상이 동반되어 나타난다. 환자가 자신의 우울과 분노를 억누르고, 그 억압된 분노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네이버)

 

한국인에게서만 발병된다는 화병, 이제는 그 이름이 고유명사로 등록되어 학명까지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분노의 감정을 무조건 억제했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던 시간들은 몸에 화가 축적되어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을 일으키는 셈이지요. 내가 열살 남짓 되었을 때 입이 너무 자주 헐어 민간요법부터 한약, 양약 모든 방법을 찾아도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도 되지 않아 부모님 속을 끓였습니다. 그 때 부모님을 따라 갔던 한의원에서 "꼬맹이가 왜 심장에 화를 품었누. 심장에 열이 많네요" 하시던 말씀이 장면이 빛도 바라지 않고 선명한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나는 맏이 컴플렉스가 심한 아이였습니다. 나는 늘 칭찬 받는 아이였고, 그 칭찬의 기대치를 향해 어리광 한 번 없이 착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덕분에 나는 화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화'라는 감정은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는 것, 그러나 그 조절에 있어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걷는 까다로운 감정이었습니다.

 

<똑똑하게 분노하라>는 '화'라는 감정에 대한 나의 미흡에 대한 자각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점에 만났습니다. 아무래도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인지 일주일을 꼬박 채워 달팽이 독서를 했습니다. 저자는 끊임없는 '화'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좋은 감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나는 지금 화가 났어.' 라는 현재 진행 상태보다 조금 더 본질적인 나를 화나게 한 원인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돕고자 끊임없이 화라는 감정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을 격양(激揚)시키며 그가 마주했던 실제 사례를 들며 이해하기 쉽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250 페이지가 넘는 적잖은 분량에서 나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같은 이야기에 지쳐 버렸습니다. 그래도 실낱같은 기대로 움켜쥐고 꾸역꾸역 무거운 책장을 넘겼습니다. 물론 책 한권으로 화를 다스리겠다는 생각부터가 오류의 시작이었던 셈일테지요. 이 책을 덮고도 나는 여전히 화내는 것에 서투릅니다.

 

 

p. 263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때때로 이 실수는 큰 재앙을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크든 작든 상관없이 모든 실수는 '하나됨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줄 잠재력이 있다. 모든 실수는 우리가 성장하고 정서적으로 강해지고 내적, 상호적 평온감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p. 266

" 당신이 갖는 감정 중 어떠한 것도 '나쁜' 것은 없다."

 

 

책은 내가 보탠 일주일의 시간이 무색하게끔 마지막 한 장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함을 요약합니다. 마지막 한 장을 읽었다면 시험 10분 전 요점정리를 읽고 고득점을 하는 조금 얄밉기도 한 여우같은 독서가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나는 늘 곰과 같은 모습으로 독서를 하려고 노력하니까...(삐질) 동생님께서 몇 달 전 내밀던 책 코이케 류노스케의 <화내지 않는 연습>을 아직 읽지 않았는데 이 참에 읽어봐야겠습니다. 화를 내라고 말하는 이와 화 내지 않은 연습을 하라는 이 중 나는 누구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