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함대 1
카이지 카와구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해군에 복무하는 사람입니다. 우연히 본 잠수함 그림에 이 책을 선택하였습니다. 정말 그림이 뛰어납니다. 어떻게 알고 그렸는지 배의 함교, 갑판, 윈드라스, 구명정 등.....세밀한 묘사와 치밀한 구성은 32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지루함을 없애줍니다. 초반 앞부분은 사실 전투장면이 많이 나와서 그냥 흔히 있는 전쟁만화라고 생각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뒷부분의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에 의한 팍스 아메리카나에 반기를 들고 핵을 보유하되 영토를 소유하지 않는 잠수함 부대를 만들어 한 강대국 중심의 독주체제에서 벗어나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가와구치 함장.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그런 주장이 나오기까지의 과정(미국 대통령의 고민하는 모습, 미국과 일본, 러시아, 영국, 중국, 프랑스 등의 정상들이 모여 회담하며 나누는 이야기 들은 저자가 국제정치의 현실을 완전히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군사력=정치라는 공식을 일깨워 주며 32권을 다 읽고 나서는 마치 어떤 어려운 사회과학책을 읽고 난 듯한 뿌듯함(그러나 딱딱하지 않은)을 느끼게 합니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것을 좋아하는 그리고 진지함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려고 조차 하지 않는 요즘 분위기에서 앞으로도 이런 좋은 만화가 계속 나와주기를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스터 키튼 1 - 사막의 카리만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사학과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사실 <마스터 키튼>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공감을 하였습니다. 명문대를 나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간강사로, 보험조사원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 특히 시간강사로 일하다 논문이 선택될 기회가 왔는데 교수사회의 전형적인 비리(논문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 때문에 교수가 될 수 없는 모습에서 저자는 정말 현실을 잘 간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그리 잘생기지도 않았습니다. 슈퍼맨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닙니다. 평소에는 어수룩하고 때로는 바보같고 그러나 정말 그가 매력있는 것은 서민적인 모습 속에 감추어진 지성과 육체적 강인함 그리고 그것을 감추는 겸손함 등은 명문대를 나오면 어떻게든지 어깨에 힘주고 잘난체나 해보려는 주위 현실을 볼 때 정말 부럽습니다. 사건의 해결도 선한 사람 대 악한 사람의 구도로 나누어 지어져 있지 않고 선한 사람이 어떤 악한 환경속에서 어쩔 수 없이 지은 범죄를 다루고 있어서 만화 전반에 휴머니즘이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취직도 잘 안되는 그래서 쓸모도 없는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다이치 키튼 같은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0년대의 격동기에 젊음을 보냈던 저자는 90년대에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서 유럽에 간다. 그리고 미술품을 본다. 유럽을 본다. 그러나 진정 저자가 보고 싶어한 것은 80년대의 격동기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90년대에 들어와 사라져버린, 잊혀져버린 그 정열적인 삶을 찾고 싶어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부담없이 볼 수 있도록 친절한 설명과 자세한 화보를 곁들여 놓았다. 게다가 딱딱한 미술평론만 일삼지 않고 여행하면서 겪은 일이나 느낌 들을 곁들여서 마치 독자가 직접 유럽을 돌며 미술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림에 대한 자세한 직접적 설명(화풍이나 작가의 특징),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배경(서양사학과를 졸업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돋보인다) 그리고 그 유럽의 모습을 통해 본 우리 한국의 모습 그 속에서 지금 우리의 우울한 모습을 찾는 것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책을 읽고 이른바 386세대들은 잔잔한 향수에 젖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여행하면서 겪은 사소한 일들(빨래방에서 본 늘씬한 아가씨의 모습 등)은 작가의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이 책이 딱딱한 미술평론이 되는 것을 막아준다.

분량도 그리 두껍지 않고 미술에 아주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즐겁게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이인자들
데이빗 히넌, 워렌 베니스 지음 | 최경규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사실 우리는 1등이 되는 법을 알고 싶어서 안달이 날 때가 많다. 베스트셀러도 자세히 보면 거의 '어떻게 하면 1등이 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역설적으로 2등이 되기를 가르친다. 참으로 카리스마적인(좋게 말해서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성격 까다롭고 특이하며 독단적인) 이른바 '1인자'들에게 때로는 비위를 맞추면서 때로는 자기주장을 확실히 펴면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는 것 - 어찌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는 웬만한 소설책 못지 않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은 왜일까?

그다지 어렵지도 않고 우리가 알만한 친숙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에 성인에서 어린이까지 한번쯤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1의 성
헬렌 피셔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시몬느 보봐르의 <제2의 성>을 기억하고, 아마 그 책을 뛰어넘는 엄청난 책을 기대하고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읽는 동안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읽고난 후 약간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중심되는 것은 맑시즘과 페미니즘의 관계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정도의 차이를 어느 정도 두느냐에 따라 그 목소리들이 분류가 됩니다. 여성억압의 원인을 자본주의냐 가부장제냐 이것들은 모두 같은 것인가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논쟁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책이 미국에서 나와서 그런 것일까요?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분배, 여성노동자들의 임금 평등실현(그것을 위한 노조운동) 등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고 오직 '여성들이 어떻게 하면 출세를 잘 할 것인가'에만 촛점이 맞추어 진것 같습니다. 물론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고 인류학적인 고찰도 넣어서 상당히 객관성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남여평등에 기여하는 것도 많고요. 하지만....

이글의 중점적인 대상은 바로 '지식인 여성'입니다. '너희 지식인 여성들은 너희 능력에 비해 출세를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여성들의 생물학적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오니 잘 기다려 출세하도록 하여라' 이런 메시지인가요? 왜 여성중에서도 아주 소수의 엘리트 여성에게만 촛점이 맞추어져 있지요?

제가 화가 나는 것은 페미니즘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여성의 힘들고 짜증나는 가사노동이 사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합작품이며 여성은 이런 상황에서 맞벌이를 하든지 전업주부를 하든지 남편과 대자본에 이중으로 얽매이게 된다는 것- 페미니즘 이론서의 거의 정석이 된 이 이론에 긍정 아니 하다 못해 부정도 없이(제 생각엔 미국같이 잘먹고 잘사는 나라에서 쓴 글이라 이런 것은 생각도 못해본 것 같군요) 어떻게 하면 출세를 잘할까를 기본으로 쓴 글 같아서 페미니즘서라기 보다는 차라리 '여성의 처세술서'라고 부르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가장 놀라게 했던 부분은 여성억압의 대표적인 여성매매춘에 관해서도 약간의 부정을 포함한, 긍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성 매매춘도 여성 자신이 자신있으니까, 성욕을 표현할 자유가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죠. 아니 여성문제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그것이 물질만능주의와 여성의 상품화, 여성의 지휘하락과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수 있을 텐데! 여성의 성욕을 무시하자는 게 아닙니다. 한마디로 진지한 고민없이 자기와 자기 출신계급에 영합하는 글을 쓴 것 같습니다.

저자는 너무 여성문제를 미국 그중에서도 소수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글을 썼기에 이 책은 그들에게 읽히는 '처세술서'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시몬느 보봐르의 <제2의성>같은 '고전'은 절대로 절대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