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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의 성
헬렌 피셔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시몬느 보봐르의 <제2의 성>을 기억하고, 아마 그 책을 뛰어넘는 엄청난 책을 기대하고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읽는 동안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읽고난 후 약간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중심되는 것은 맑시즘과 페미니즘의 관계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정도의 차이를 어느 정도 두느냐에 따라 그 목소리들이 분류가 됩니다. 여성억압의 원인을 자본주의냐 가부장제냐 이것들은 모두 같은 것인가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논쟁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책이 미국에서 나와서 그런 것일까요?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분배, 여성노동자들의 임금 평등실현(그것을 위한 노조운동) 등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고 오직 '여성들이 어떻게 하면 출세를 잘 할 것인가'에만 촛점이 맞추어 진것 같습니다. 물론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고 인류학적인 고찰도 넣어서 상당히 객관성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남여평등에 기여하는 것도 많고요. 하지만....
이글의 중점적인 대상은 바로 '지식인 여성'입니다. '너희 지식인 여성들은 너희 능력에 비해 출세를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여성들의 생물학적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오니 잘 기다려 출세하도록 하여라' 이런 메시지인가요? 왜 여성중에서도 아주 소수의 엘리트 여성에게만 촛점이 맞추어져 있지요?
제가 화가 나는 것은 페미니즘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여성의 힘들고 짜증나는 가사노동이 사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합작품이며 여성은 이런 상황에서 맞벌이를 하든지 전업주부를 하든지 남편과 대자본에 이중으로 얽매이게 된다는 것- 페미니즘 이론서의 거의 정석이 된 이 이론에 긍정 아니 하다 못해 부정도 없이(제 생각엔 미국같이 잘먹고 잘사는 나라에서 쓴 글이라 이런 것은 생각도 못해본 것 같군요) 어떻게 하면 출세를 잘할까를 기본으로 쓴 글 같아서 페미니즘서라기 보다는 차라리 '여성의 처세술서'라고 부르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가장 놀라게 했던 부분은 여성억압의 대표적인 여성매매춘에 관해서도 약간의 부정을 포함한, 긍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성 매매춘도 여성 자신이 자신있으니까, 성욕을 표현할 자유가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죠. 아니 여성문제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그것이 물질만능주의와 여성의 상품화, 여성의 지휘하락과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수 있을 텐데! 여성의 성욕을 무시하자는 게 아닙니다. 한마디로 진지한 고민없이 자기와 자기 출신계급에 영합하는 글을 쓴 것 같습니다.
저자는 너무 여성문제를 미국 그중에서도 소수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글을 썼기에 이 책은 그들에게 읽히는 '처세술서'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시몬느 보봐르의 <제2의성>같은 '고전'은 절대로 절대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