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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권하다 - 삶을 사랑하는 기술
줄스 에반스 지음, 서영조 옮김 / 더퀘스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소크라테스 기조연설부터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신비론자와 회의론자, 정치학과 행복의 철학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징은 고대 철학자들이 주장한 이론만을 담은 게 아니라 여러 사례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멀게만 느껴지는 고대 철학이 현대인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보이는 대목이다.
저자인 줄스 에반스가 소개하는 사례를 읽고 있으면, 삶의 불합리함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내 주변인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스토아 학파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소개된 애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마음이 얼룩지는 느낌이었다. 애나는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마약을 했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이며 애나에게 성폭력을 일삼았다. 포르노 스튜디오에서 다른 서너 명의 남자와 애나를 성폭행했고, 그 당시 애나는 만 세 살이었다. 성장한 애나는 당시 어렸음에도 그 순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이 앞으로 애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노예 출신인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회복 탄력성'의 철학을 강조했다. 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짓게 했다. 즉, "어떤 것들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어떤 것들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에픽테토스 <편람>)는 것이다. 애나의 경우, 어릴 적 경험은 파도와 같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속했으므로 '회복 탄력성'의 철학을 본받은 '인지행동치료'로 과거에서 오는 자괴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상처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은 '통제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아 그 후의 삶을 밝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다음 장에 소개된 에피쿠로스 학파는 "중요한 것은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또한 즐거움은 "존재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가르쳤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은 지구상에 단 몇십 년을 머물렀다 사라지고 마는 존재이니,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해야 하는 일 같은 건 없다"라고 말했으니, 언뜻 보면 그저 쾌락주의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저자는 "에피쿠로스가 쾌락주의자였다면 매우 소박하고 합리적인 쾌락주의자였을 것"이라고 에피쿠로스학파의 대중적 이미지에 반기를 든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저작에서 쾌락이라는 단어에 대한 보편적인 편견과 무지를 꼬집고, 진정한 쾌락이란 "신체에 고통이 없고, 영혼에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말하며, 즐거운 삶이란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무엇을 선택하는 회피하든 그 근거를 찾고, 영혼을 잠식하는 잘못된 믿음을 없애는 데서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신비론자와 회의론자, 정치학과 행복의 철학, 소크라테스의 이야기가 함께 실려있다. 내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 철학은 '스토아 학파'의 철학이었는데, 그들의 칼같은 자신에 대한 엄격함, 즉 '수치화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아직 젊어서인지, 아니면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의 틈바구니에 아등바등하는 작은 한 사람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에피쿠로스의 '즐거움의 철학'은 '과거와 미래에 천착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자!' 정도로만 내게 활용하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다.
항상 똑같은 말을 표지와 제목만 바꿔 출판하고 있다고 생각한 자기 계발서에 대한 나의 거부감을 철학적 이론과 사례를 통해서 해소시켜준 책이다. 이 책이 '삶을 사랑하는 기술'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고, 행동하는 철학을 독자들에게 권하기 때문에 어떤 측면으로는 '자기 계발'을 위한 철학서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기 계발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란, 단순히 자유로운 인간은 어떤 규칙으로 옭아맨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다. 나 또한 인간은 수시로 자신을 검열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쓰레기 같은 아이디어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비판한 론다 번의 '시크릿'과 같은 책이 예이다. 이와 같은 책은 허무맹랑한 이론은 접어두더라도, 우리의 삶의 가치가 단지 부와 명성이 전부인 것처럼 만든다는 점이다. 이런 책은 독자들에게 건강하고 깊은 사유를 하고,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대신 황금만능주의적 사고를 주입시킬 뿐이다.
아직 철학적 지식이 덜 여문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덜 나오고, 더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었고, 부족한 부분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만약 불만족스럽게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있다면,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고대 철학자의 사상을 모티프 삼아 경쟁중독, 승자독식, 격분증후군과 같은 현대의 고질적인 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한 발자국 다가섰으니 그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볼 때 마음이 심란한 상태였는데, 덕분에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