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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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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우 소설가의 소설집 <신중한 사람>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제목이야말로 그다운 제목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간 작품이나 팟캐스트 인터뷰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내가 으레 짐작하고 있는 이승우 작가의 이미지가 '신중한 사람'이라는 단어에 꼭같이 매치됐기 때문이다. 그가 팟캐스트에 나왔을 때 자기가 경험한 자신의 일조차도 멀리서 바라봐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세심함과 겸손함을 보면서 그를 작가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좋아하게 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집에 담긴 인물들의 성격은 '신중'이라는 단어로 정의내리기엔 조금 어설프다. 그들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고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는 신중함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결정을 미루고 자신의 의견을 발설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행위여서 점점더 상황을 악화되게 만든다.

 

      <신중한 사람>의 주인공이 '신중함'이 한 사람을 어떤 지경으로 내모는지 가장 극단적이고 확실하게 그려내는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늘 억지와 불합리와 막무가내를 거북해했다. (……) 못 견뎌 하면서도 견뎌낸 것은 견뎌내지 않을 때 닥쳐올 또 다른, 어쩌면 더 클 수도 있는 억지와 불합리와 막무가내에 대한 예감 때문이었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꺼리는 사람이, 꺼리면서도 부자연스러운 것을 내치지 못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공식이 그래서 성립한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꺼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더 잘 받아들이는데,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거부하는 자신의 태도가 혹시 만들어낼지도 모를 더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끔찍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공들여 만든 주택을 낯선 타인에게 빼앗기는 부조리한 상황과 맞딱뜨리게 된다. 그는 당장 어떤 조취를 취할 수 있었지만 사건의 원인제공자인 장팔식을 찾으면 그때부터 자신의 권리를 찾아도 늦지 않겠다고 판단, 하루에 만 원이라는 숙박비를 내고 다락방에서 투숙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때부터 주택을 원상복구시키는 일에 전념하여 고된 노동을 시작한다. 결국 그 행위는 어지럼증을 유발시키고, 그 어지럼증이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왔던 심각한 수준의 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끔 세상에 기우뚱했지만 그럴 때면 몸을 반대 방향으로 약간 기울여서 중심을 잡았다."

 

     단순히 상황이 악화될까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참고 또 참으며, 상황을 지켜보다가 상황을 더 악화되게 만드는, 그러한 신중함을 가진 주인공의 상황을 작가는 나타내고 싶었을까? 내가 보기엔 그것은 다양한 개개인의 특성일 뿐, 문제는 외부에 있다. 외부는 세계이다. 이 세계는 예측불가하고 불가항력적이다.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행위로 대비함으로써 불안을 상쇄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노력일 뿐 운명의 여신이 자신을 어느 곳으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외국에 나가있을 때, 자신이 공들여 꾸민 주택이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 처참한 꼴이 될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 그는 그저 가만히 있었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가 없는 곳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그는 돌아왔고,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환경이 되었다.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부터 개개인의 성향대로, 판단대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겠지만, 이 상황 자체가 부조리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세상의 거대한 수레바퀴, 삶의 부조리 한가운데에 서 있는 '신중함'이라는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가여워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바람이 어떤 식으로 무너지고 와해되는지 지켜보고 있으면 그 아이러니에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전반적인 특성도 그러하다. 그들은 거대 서사를 가진 인물은 아니지만, 우리 삶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선이 간다. 그들의 과도한 신경증적이고 편집증적인 태도를 염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특성을 단연 돋보이게 하는 것은 내면심리 서술에 탁월한 이승우 소설가의 문체 덕분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 이승우 작가의 문장을 두고 '문장들의 이어달리기'라는 표현을 썼다. 문장들이 끊임없이 이어달리기를 하고, 그것이 동어반복을 가장한 복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동어 반복이라고 헷갈릴 수 있지만, 이 행위는 동어 반복을 하면서 내면 심리로 더욱 깊숙히 가닿게 만드는 이승우 소설가 특유의 문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섬세한 묘사와 대상을 향한 성실한 설명만이 깊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러한 방법으로 문장의 깊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놀라운 일이며 축복할 만한 창작자의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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