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
달라스 윌라드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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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달라스 윌라드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였다. 그 때 느낀 감동은 책 읽기를 통한 치유를 주었다. 삶의 어려움속에 예수님의 8복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나에게 전해준 그 글은 정말 내 인생의 화이팅이었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성경에보면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하는데, 이런 의심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들을 귀가 없어서 못 드는 것인지, 들을 마음이 없어서 못듣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음성이 없는 것인지. 이 책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지적으로 알려준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때 증명해 보이라고 한다. 이적, 표적을 보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신다.
"그렇게 거절하신 이유는, 아무리 놀라운 기적을 행해도 보는 이들의 개념과 사고 방식이 잘못되어 있어 결국 부질없는 일이 되리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기적이 하나님의 존재를 더 확연하게 나타낼 수는 있어도 믿음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장 자주 되풀이하신 말씀 중 하나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였다. 이 말은 물리적인 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자 하는 마음이다. 즉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들을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순종하며 변화될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반응없이 일방적인 말만 한다면 관계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대화하는 과정을 주께 인도해주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을 목자라고 한다. 하지만 목자들 가운데 성경의 명령과 어긋나게 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외관상은 그럴 사 하지만 '내 교회', '내 사역'만을 추구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되는 줄 착각하고, 종파주의, 교회 외형(건물크기, 헌금액수, 교인 수) 등 만을 강조한다. 중심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요즘 한국교회도 이러한 경향으로 남의 교회 신도 빼가기처럼 교인의 수평적인 이동만을 보이면서 부흥되었다고 자랑하곤 한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인데 그곳에 상업기독교로 교인을 소비자로 바라보고, 교회크기를 기업의 크기처럼 생각하는 세태를 보면 안타까움이 생긴다. 그리고 그 위에 절대적으로 권력을 행하는 재벌총수처럼 군림하는 목사들도 중심을 벗어났다. 교회의 주인을 생각하고, 그들의 목적은 군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선한 관계로 양들을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단들도 잘 못된 하나님과의 대화를 가르친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수 많은 이단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1인 혹은 소수에 의해서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전제로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은 그 단체 상부의 말씀에만 동조하고, 지도자의 명령이라면 상식조차 버리는 행위를 해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수에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오는 것이다. 우리가 훈련이 안되어 있고, 듣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못듣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이렇게 구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날마다 잠깐 동안 하나님 앞에 앉아 묵상하며 가만히 있으라.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의 진리를 깨닫게 해 달라고 성령께 구하라. 이 비밀의 영광의 풍성한 것이 무엇인지를 기쁜 마음으로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율법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언제나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복을 받는 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미신적인 태도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세상적인 인과응보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인과응보로 간다면 인간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 말씀에 감사함과 그리고 순종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 성경을 읽을 때 진리가 무엇인지 찾을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이 무오하고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을 전제로하고, 이젠 순종함으로서 읽을려고 한다. 감사함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이 책은 내게 성경 이라는 것, 신학이라는 것을 지적으로 풀어준 책이었다. 감동보다는 만족이 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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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기독교
윌리엄 월버포스 지음, 제임스 휴스턴 엮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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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전 윌버포스의 평전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윌리엄 윌버포스'를 읽고 느꼈던 엄청난 감동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책은 얇고 글씨도 크고 간단명료하지만 그 내용은 심금을 울렸다.
 
 윌리엄 윌버포스 그는 영국에서 노예제도 폐지에 공헌한 사람이다. 당시 그의 사명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사회 개혁과 노예제도 폐지였다. 그는 정말 잘나가는 정치인이다. 당시 기득권층이고, 개인적으로도 사교적이고 주위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기독교로 회심하고(여기서 회심이란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는 사람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기독교를 자랑하는 것이다) 사명을 찾고, 성경을 묵상하고 공부하고, 같은 뜻을 가진 자들을 모으고 함께 하고, 핍박(테러)에도 굴하지 않고 노예제도 폐지를 봤다.

 그런 그가 쓴 진정한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다. 이 내용은 신학자가 쓴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고, 깊이가 없어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심연을 울리는 소리는 진실함과 진리이다. 그가 진실로서 말했고, 그 말한 것이 진리이기에 우리에게 더욱 감동을 준 것이다.

 그는 회심 후 먼저 성경을 공부한다. 그리고 신앙의 고전들을 읽는다. 그리고 그는 잘못된 기독교인의 신앙을 비판한다. 그리고 도덕과 신앙의 일치를 강조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탁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기심을 버리고 교만,탐욕,인정받을려는 마음을 버리라고 말한다. 심지어 가족이나 국가, 조직 보다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라고 한다. 그것은 가족이나 다른 것들을 등한시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시 영국의 엄청난 부를 만들어 줬던 노예산업. 그것을 반대한다는 것은 영국의 부를 잃을 수 있어 전 국가적인 반발을 초래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목숨걸고 반대했던 것이다. 그외 정책도 대다수의 뜻과 다르더라도 정당의 뜻과 다르더라도 선한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반대한다. 이런 것을 봤을때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기독인이지만 자기, 가족, 조직, 나라 를 위한 이익을 취하는 것은 기독인의 양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주의 뜻대로 해야할 것이다.

 이 책은 기독인을 대상으로 씌여진 책이다. 하지만 비기독인이 읽어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은 신앙과 삶의 일치를 강조한다. 하지만 삶속에 도덕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단호하게 이야기 한다. 그는 분명 옳다. 그의 행위는 이 세상에서 보답을 받는다. 자기만족, 다른사람들에게서의 인정 등을 통해서 하지만 기독인의 행위는 더 나아가 천국에서 보답을 받는다고 말한다. 기독인들이 약한 것이 칭찬이다. 사람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한다면 선한행위라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칭찬은 주님게 받고, 모두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만약 모두가 성경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교만,이익이 아닌 주의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에서 욕먹는 기독교가 아닌 정말 세상의 빛과 소금의 기독교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뒤에 스터디 부분이 있어서 복습할 수도 있고 여럿이서 함께 볼 수 있게 해놓아서 좋다. 기회가 있다면 주위 사람들과 같이 함께 읽어보고 토론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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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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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많이 본것은 겉표지다. 조금은 파괴적이며 모순적인 겉표지 그림. 뒷면에는 호주에서 쓴 어느 독자의 서평. 좋다는 것은 알겠지만 기가 막히다. 세기의 보석이다.. 이런 말은 독자의 입장에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말들이다.

 역사에서 본 경제와 경제에서 바라본 역사를 쓰겠다는 저자. 책을 들고 딱 반으로 나누면 앞쪽은 자본주의 역사.. 경제사를 배우는 시간이다. 자칫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쉽게 풀이한 그의 글솜씨는 탁월한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도 많고 배운 지식도 많지만 네덜란드의 엔프워프란 도시이야기 나올때 팍 머리속으로 왔다. 소시적 대항해시대란 오락에서 좋은 배가 나오던 도시였는데. 그 도시가 왜 번창했는지 알게 됐다. 자유. 시장의 자유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재미있게 하던 시대. 대항해 시대. 역사책에서 말하던 상업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시대적 배경없이 그냥 재미로 했는데. 거기에 숨겨진 강대국들의 약탈과 돈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을 알게되었다. 내가 오락에서 원주민들 유족을 좋아라 가져가고 물품도 가져가고 오직 돈과 명성을 위해서 오락을 했던 내가 새삼 한심해 보였다. 이걸 만든 일본의 코에이사는 무슨 생각으로 오락을 만들었을까? 보이스비 엠비셔서.. 야망을 가지라고. 아님 돈 벌려고 .. 뭐 둘다겠지만. 제대로 된 역사의식 없이 그것을 오락으로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너무나 위험한 일 같다. 혹 지금 내가 봐서 즐겁지 그 때 내가 아프리카에 사는 원주민이었다면. 끔찍한 일이다. 자라나는 새싹, 어린이들, 청소년들에게 이런 오락을 권하는 일본 게임회사 물러가라. 만들려면 차라리 재미없게 만들던지, 왜 그렇게 재미있게 만든거냐?

 리오 휴버먼은 기독교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중세가 교회가 중심세력이었기도 하고, 막스베버의 적작에서처럼 청교도 정신을 가진 자본가들이 지금의 자본주의를 이끌었으니 , 그 자본주의를 비판하다보니 기독교 또한 비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역사의 악이 기독교가 된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칼뱅과 루터도 완벽하진 않지만 그들이 민중들을 지지 하지 않고 자본가(부르주아지)들을 지지 했다고 해서 그것이 지금의 민중시각과 다르다고 해서 과도한 비판을 받을 만한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각에 의하면 중세의 농노들이 불행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의 우리의 시각으로 봐서 그렇지 과연 불행하고 고통받았을까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적혼란과 외로움을 포함한 물질적인 혜택보다(물론 저자는 이것도 쉽게 동의하지 않겠지만 민중들은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들이 누린 정신적인 만족감이 클 수가 있다. 그들은 그 시대와 장소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잘 살고 행복했을 것이다. 중세를 마치 암흑기로 보는 그의 역사관은 동의할 수 없다. 시대를 떠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다른 장소에서도 가난한 국가나 국민들이 불쌍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또한 서구의 물질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오직 물질만이 모든 것을 평가하지 않는다. 행복지수라는 다소 주관적인 지수를 비교해보더라도 선진국이 개발도상국보다 높게 나오지 않고 오히려 개발도상국이 더 삶의 대한 만족도가 높게 나온다. 행복의 가정을 물질말고 다른 것 까지 포함시키기엔 이 책이 너무 좁은 것일까 아님 그의 삶이 좀 적은 것일까?

 책을 반 읽었다. 이제서야 그가 말하고 싶은 자본주의가 나온다. 맑스의 사상이다. 맑스와 앵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나온다. 사유재산 폐지. 민중이여 단결하라~ 전편까지 차분한 이성으로 글을 썼다면 이제부터 그의 가슴과 함께 글을 썼을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에 수 많은 악당들이 등장한다. 인클로우저 운동을 통해서 농민들의 처참하게 만든 지주들, 그리고 삶도 없이 오직 상품생산을 위해 중세 농노보다 더 심하게 부려먹은 자본가들, 그리고 좀더 많은 시장확보와 원료 확보를 위해 힘없는 나라들을 유린했던 국가들. 그들은 오직 이윤이라는 것만을 바라 본 악당들이었다. 먹고 쓸 것도 아닌 오직 이윤, 이윤이 또 다른 이윤을 낳기 위해 자본축적이 되고 투자를 하고 다시 이윤을 거둬드리는 상황이다. 왜 다 쓰고 죽지도 못할 돈을 벌려고 해서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 해답은 간단하다. 모든 경제학교과서 맨 첫부분에 나온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그런 욕심때문에 생기는 이윤추구욕을 비판하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하지만 보다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하는 것도 우리의 큰 욕구이다. 그래서 맑스나 앵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쓰고, 수많은 혁명가들과 사상가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산 것이다. 얼마전 공산당 선언을 읽었는데 그 책은 위험한 빨간 책이 아니라 그 시대의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멋진 이상을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물론 지금 우리가 본 공산주의는 실패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것이 대안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공산주의가 있기에 오히려 지금의 자본주의가 발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당신의 어려운 상황을 타파하려고 했던 것 처럼 맑스도 그렇게 당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려고 노력하고 타파할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을 것이다. 맑스의 사상이라고 무저건 등한시하고, 무조건 금기시 하는 것은 잘 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이상향을 꿈꾼다고 무비판적으로 그의 사상만을 동경하는 것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맑스가 이 시대 있어도 옛날과 같은 사상을 주장할지는 알수 없다. 이 책 또한 주류경제학속에서 잘못된 것을 고쳐보고 사람들에게 그 내면을 알리고자 하는 소중한 책이다. 풍요로운 시대속에서 또 정신적인 궁핍으로 살고 있다. 풍요때문에 일어나는 공황. 슈마어가 쓴 작은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맑스는 아니지만 또다른 주류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좀더 나은 삶을 꿈꾸는 모습을 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어떤 경제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최소한 100년후의 경제학자들이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 할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좀더 사람을 생각하고 보다 나은 삶을 모두가 함께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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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빙점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6-2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9
미우라 아야꼬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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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점을 보고 난 뒤. 그 뒤가 더 궁금했다. 속빙점은 빙점의 속편이다. 하지만 원작보다 나은 속편없다고 하지만, 이 책은 빙점의 주제의 결말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그만 또 내릴 정거장을 2정거장 지나쳐버렸다. 빙점읽을 때도 그랬는데 정말 몰입의 재미를 줬던 책이다.

 처음 이 책을 들으니 빙점에서 이어지는 인물들과 스토리가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은 너무하는 것 같은 인물 설정, 조금은 억지스러운 인물 설정이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하지만 누구하나 불필요한 인물이 없을 만큼 인물들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했다.

 계속되는 사랑과 갈등. 하지만 그 사랑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때로는 추하고, 손가락질 당하고, 애절하고, 부끄럽워 숨기고 싶은 사랑이다. 왜 아름다움을 보고 사랑을 하지만 그것에서는 아름다움이 나오지 못할까 한번 생각해게 했다.

너무나 그 갈등이 계속 된다. 어디하나 맘 놓고 읽을 부분이 없긴 하지만 내가 정말 기대했던 이 책의 주제에 대한 해결책이 책을 2/3정도 읽고 나서야 준코라는 인물을 통해서 겨우 시작되는 것 같다. 이 책은 우명한 기독교 작가로 알려진 미우라 아야코라는 사람보고 읽은 책이라서 그 작가의 알려진 주제를 보고 싶었다. 너무나 상투적일것 같다. 그렇게 쉽게 문제가 해결되면, 하지만 오히려 끝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 나에게 더 많은 설레임과 간절함을 주었던 것 같다. 거의 마지막읽을때는 그냥 내가 요코가 되는 기분이었다.

 빙점과 속빙점 여기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요코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첫째로 아름다움을 가졌기때문이고, 둘째로 마음도 이쁘다는 것이고, 셋째로 주인공으로 문제해결의 열쇠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신의 죄를 항상 느끼고(물론 자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살 수 있을 까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마음이 그녀에게 있었던 원죄를 벗고 기쁨으로 가게 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죄가 있지만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 특히 그런 그가 작은 정의감을 가질 때. 그는 남을 비판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 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야구치라는 사람이 나온다. 나는 그의 편지글을 보면서 일본의 뜻있는 지식인 들의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가 진정한 사나이이고 인간이었다면, 그때 총살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죄없는 사람들을 감싸주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이 손은 그 임부를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요코의 생각에서 뜻잇는 지식인에서 나아가 진리를 추구하려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돌을 들어 칠 자격은 오직 예수 한분에게만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예수는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지 않았다. 예수는 다만 따뜻하게 용서했을 뿐이었다. 그것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째서..."

 어째서인지는 이책에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가페적인 희생적인 내 자신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그런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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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2 - 아리랑 김산에서 월남 김상사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2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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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사를 보면 맥박이 올라갑니다. 내 양심이 점점 뛰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좀더 솔직해지고, 진실을 추구하려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 진리를 위해서 발버둥 치려는 저자의 노력이 보입니다.
 많은 부분 자세히는 아니지만 알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최신의 이론을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지하철에서 이 책이 뭐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있고, 친구랑 이 책이야기 내용하며 열변을 토할때도 있었던 책입니다.

 왜 우리나라의 화교가 별로 없고, 영향력도 미비한지 그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풀리는 것 같네요. 외국인(유색인종)에 대해 차별적인 우리네 인식과 그 전에 일어난 참혹한 폭동으로 인해서...
 누구에게 박정희는 우리 민족의 영웅이지만, 누구에게는 철천지 원수일까? 그 진실은 무엇일까?
 이러한 문제의 해답을 구체적으로 내게 주었다.

 6.25때 생겨난 국민방위군. 그리고 그 안에서 굵거나 병들어 죽은 5만명. 이 사실은 몰랐던 사실이다. 왜 그들은 싸우지도 않고 죽었어야 했던 것이고, 누가 그들을 죽였던 건인지 가슴아픈 우리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군대 문제는 너무나 젊은 남자에게는 큰 문제이다. 인생의 장애물이기도 하고, 군대가서 사람된다는 인간개조의 용광로 이기도 하다. 그러나 군이라는 것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면 괴로움이 찾아 온다. 국가안보보다 집권층의 기득권을 위한 군대,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인권유린...
 
 이 책은 현직 군복무중인 사병들은 보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다. 그들에게 이 책의 진실은 많은 고통을 안겨 줄 것 같다. 때론 진실이 고통을 주기도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조차 버거운 우리 군바리들... 이 책을 보고 나도 아픔을 느낀다.
 
 더 나은 우리 사회는 열린 사회였으면 좋겠고, 집권층의 야욕으로 희생되는 사람이 없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기에는 앞으로의 진통이 심하게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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