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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평점 :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본것은 겉표지다. 조금은 파괴적이며 모순적인 겉표지 그림. 뒷면에는 호주에서 쓴 어느 독자의 서평. 좋다는 것은 알겠지만 기가 막히다. 세기의 보석이다.. 이런 말은 독자의 입장에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말들이다.
역사에서 본 경제와 경제에서 바라본 역사를 쓰겠다는 저자. 책을 들고 딱 반으로 나누면 앞쪽은 자본주의 역사.. 경제사를 배우는 시간이다. 자칫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쉽게 풀이한 그의 글솜씨는 탁월한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도 많고 배운 지식도 많지만 네덜란드의 엔프워프란 도시이야기 나올때 팍 머리속으로 왔다. 소시적 대항해시대란 오락에서 좋은 배가 나오던 도시였는데. 그 도시가 왜 번창했는지 알게 됐다. 자유. 시장의 자유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재미있게 하던 시대. 대항해 시대. 역사책에서 말하던 상업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시대적 배경없이 그냥 재미로 했는데. 거기에 숨겨진 강대국들의 약탈과 돈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을 알게되었다. 내가 오락에서 원주민들 유족을 좋아라 가져가고 물품도 가져가고 오직 돈과 명성을 위해서 오락을 했던 내가 새삼 한심해 보였다. 이걸 만든 일본의 코에이사는 무슨 생각으로 오락을 만들었을까? 보이스비 엠비셔서.. 야망을 가지라고. 아님 돈 벌려고 .. 뭐 둘다겠지만. 제대로 된 역사의식 없이 그것을 오락으로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너무나 위험한 일 같다. 혹 지금 내가 봐서 즐겁지 그 때 내가 아프리카에 사는 원주민이었다면. 끔찍한 일이다. 자라나는 새싹, 어린이들, 청소년들에게 이런 오락을 권하는 일본 게임회사 물러가라. 만들려면 차라리 재미없게 만들던지, 왜 그렇게 재미있게 만든거냐?
리오 휴버먼은 기독교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중세가 교회가 중심세력이었기도 하고, 막스베버의 적작에서처럼 청교도 정신을 가진 자본가들이 지금의 자본주의를 이끌었으니 , 그 자본주의를 비판하다보니 기독교 또한 비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역사의 악이 기독교가 된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칼뱅과 루터도 완벽하진 않지만 그들이 민중들을 지지 하지 않고 자본가(부르주아지)들을 지지 했다고 해서 그것이 지금의 민중시각과 다르다고 해서 과도한 비판을 받을 만한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각에 의하면 중세의 농노들이 불행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의 우리의 시각으로 봐서 그렇지 과연 불행하고 고통받았을까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적혼란과 외로움을 포함한 물질적인 혜택보다(물론 저자는 이것도 쉽게 동의하지 않겠지만 민중들은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들이 누린 정신적인 만족감이 클 수가 있다. 그들은 그 시대와 장소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잘 살고 행복했을 것이다. 중세를 마치 암흑기로 보는 그의 역사관은 동의할 수 없다. 시대를 떠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다른 장소에서도 가난한 국가나 국민들이 불쌍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또한 서구의 물질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오직 물질만이 모든 것을 평가하지 않는다. 행복지수라는 다소 주관적인 지수를 비교해보더라도 선진국이 개발도상국보다 높게 나오지 않고 오히려 개발도상국이 더 삶의 대한 만족도가 높게 나온다. 행복의 가정을 물질말고 다른 것 까지 포함시키기엔 이 책이 너무 좁은 것일까 아님 그의 삶이 좀 적은 것일까?
책을 반 읽었다. 이제서야 그가 말하고 싶은 자본주의가 나온다. 맑스의 사상이다. 맑스와 앵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나온다. 사유재산 폐지. 민중이여 단결하라~ 전편까지 차분한 이성으로 글을 썼다면 이제부터 그의 가슴과 함께 글을 썼을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에 수 많은 악당들이 등장한다. 인클로우저 운동을 통해서 농민들의 처참하게 만든 지주들, 그리고 삶도 없이 오직 상품생산을 위해 중세 농노보다 더 심하게 부려먹은 자본가들, 그리고 좀더 많은 시장확보와 원료 확보를 위해 힘없는 나라들을 유린했던 국가들. 그들은 오직 이윤이라는 것만을 바라 본 악당들이었다. 먹고 쓸 것도 아닌 오직 이윤, 이윤이 또 다른 이윤을 낳기 위해 자본축적이 되고 투자를 하고 다시 이윤을 거둬드리는 상황이다. 왜 다 쓰고 죽지도 못할 돈을 벌려고 해서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 해답은 간단하다. 모든 경제학교과서 맨 첫부분에 나온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그런 욕심때문에 생기는 이윤추구욕을 비판하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하지만 보다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하는 것도 우리의 큰 욕구이다. 그래서 맑스나 앵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쓰고, 수많은 혁명가들과 사상가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산 것이다. 얼마전 공산당 선언을 읽었는데 그 책은 위험한 빨간 책이 아니라 그 시대의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멋진 이상을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물론 지금 우리가 본 공산주의는 실패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것이 대안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공산주의가 있기에 오히려 지금의 자본주의가 발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당신의 어려운 상황을 타파하려고 했던 것 처럼 맑스도 그렇게 당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려고 노력하고 타파할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을 것이다. 맑스의 사상이라고 무저건 등한시하고, 무조건 금기시 하는 것은 잘 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이상향을 꿈꾼다고 무비판적으로 그의 사상만을 동경하는 것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맑스가 이 시대 있어도 옛날과 같은 사상을 주장할지는 알수 없다. 이 책 또한 주류경제학속에서 잘못된 것을 고쳐보고 사람들에게 그 내면을 알리고자 하는 소중한 책이다. 풍요로운 시대속에서 또 정신적인 궁핍으로 살고 있다. 풍요때문에 일어나는 공황. 슈마어가 쓴 작은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맑스는 아니지만 또다른 주류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좀더 나은 삶을 꿈꾸는 모습을 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어떤 경제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최소한 100년후의 경제학자들이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 할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좀더 사람을 생각하고 보다 나은 삶을 모두가 함께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