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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법을 어길 때 - 과학, 인간과 동식물의 공존을 모색하다
메리 로치 지음, 이한음 엮음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평점 :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 없이, 그리고 인도적인 행동인지를 거의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침입하는 야생 동물, 또는 누군가가 들여온 야생 동물을 죽였다. 우리는 실험실에서 쥐와 생쥐를 윤리적으로 다루고 인도적으로 <안락사>하는 상세한 절차를 마련해 쓰고 있지만, 우리 집과 뜰을 침입하는 설치류나 미국너구리를 처리하는 공식 표준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p.357)
이 책은 약 2년 동안 야생 동물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탐사하며 쓴 기록이다.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평생 마주하지 못할 법한 일들, 이를테면 집 앞에 내놓은 쓰레기를 곰이 뒤져 먹는다거나, 술 냄새를 맡은 코끼리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1. 누가 문제일까
배고픈 곰에게 쓰레기통은 훌륭한 먹잇감이다. 쓰레기통 빗장을 잠그지 않거나,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내놓으면 곰은 손쉽게 먹이를 얻게 된다. 그러다 집 안으로까지 침입해 약탈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쓰레기통 관리를 소홀히 한 사람이 문제일까, 집 안으로 들어온 곰이 문제일까.
2. 겨울잠을 덜 잔다면
기온이 섭씨 1도 오를 때마다 곰이 겨울잠을 자는 기간이 일주일씩 줄어든다고 한다. 2050년에는 지금보다 흑곰이 15~40일 덜 자게 될 거라고. 그만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날이 늘어나고, 그 결과 인간 거주지에 침입하는 횟수도 증가한다. 정말 누구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3. 먹이가 많아지면
곰은 먹이가 풍부하면 겨울잠을 더 짧게 잔다. 특히 도시 인근에 사는 곰은 자연에서 먹이를 구하는 곰보다 겨울잠을 한 달이나 덜 잔다고 한다. 풍족한 먹이는 번식률까지 끌어올린다. 도시의 곰이 사람 곁에서 살아남는, 아이러니한 공존의 방식인 셈이다.
코끼리, 원숭이, 표범, 쥐 등 다양한 야생 동물이 인간의 공간과 겹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라고는 가끔 뉴스에 나오는 ‘마을로 내려온 멧돼지에 놀란 주민들’과 그걸 포획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정도였다.
술을 좋아하는 코끼리는 쉽게 공격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술 취한 코끼리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 곰이 집 안에 들어와 냉장고 속 음식만 싹 먹고 조용히 사라졌다는 이야기…. 이런 사례를 읽다 보면, ‘결국 배고픈 야생 동물은 그저 배가 고플 뿐인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인도인들은 코끼리, 원숭이, 멧돼지 등을 신성한 동물로 여긴다. 그래서 아무리 원숭이가 날뛰어도 유해 동물로 선포하지 못한다. 반면 그런 인식이 없는 많은 나라에서는 인간을 위협하는 야생 동물을 죽이거나 살처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누가 먼저 문제를 일으켰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조금 더 신중하게, 그리고 현명한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을 풀 수는 없을까. 저자가 이렇게 집요하게 취재하고 사례를 모아 알리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오래된 질문이지만, 이 책은 그 질문을 오늘의 현실 속 사례로 끌어와 다시 곱씹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을 쓰면서 <유해 척추동물>이라는 용어를 종종 마주쳤다. 나는 그 용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물을 사람의 사업이라는 맥락에서 맡은 역할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용어가 딱 들어맞는 듯 보이는 포유동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나다. (p.361,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