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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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인간이 되기를 꿈꾼다. 말하는 곰이나 꼬리 아홉 달린 여우들조차 마늘이나 사람 간 같은 괴상한 음식을 먹으며 인간이 되려 한다. 혼백, 귀신, 천사들처럼 실체와 비실체 사이의 어스름한 존재들도 같은 이유로 인간을 꿈꾼다. 그들은 빛과 그림자로만 이뤄진 조용한 세계에서 애타게 생기를 갈구한다. (p.261)

신촌 뤼미에르빌딩 801호부터 810호까지. 서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연작처럼 맞물려 있다.

읽는 내내 실제 신촌의 르메이에르 빌딩이 떠올랐다. 밤에도 꺼지지 않던 불빛, 늘 시끌벅적하던 거리.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신촌을 기억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제 그곳은 예전 같지 않으니까. 그 변화만이 낯설었다.

이 작품이 SF처럼 느껴진 건, 박쥐 인간이나 쥐 인간 같은 기묘한 존재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렬했던 건 자본주의의 그늘 속에서 드러나는 생존본능이었다.

법과 도덕과는 거리가 먼 야생 수컷 무리에서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은 정직함이나 포용력이 아니라 뻔뻔함과 문제 해결력이라는 사실을. (p.213)

〈삶어녀 죽이기〉는 인터넷 여론몰이의 폐해를, 〈돈다발로 때려라〉는 물질만능 사회 속 인간 존엄의 붕괴를 다룬다. 주제가 명확한 만큼 서사적 재미는 조금 덜했다.

오히려 동물이 화자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훨씬 흥미로웠다.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속에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계급과 그 밑단의 모습은 디스토피아적 우울함을 선사한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중에 이런 소설도? 싶을 만큼 새로웠다. 2025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고, 김새섬 대표님이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들었다.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마지막 문장이 특히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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