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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뇌과학자 - 절망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대니얼 깁스 외 지음, 정지인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8월
평점 :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서사는 대부분 병이 진행되면서 겪게 되는 상실과 고통의 감정적 영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반복할 생각이 없다. 누구의 삶에서든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과정을 바꿀 기회인, 생물학적으로 유일무이하고 대체할 수 없는 시기의 잠재력을 명확히 알리는 것이 나의 목표다. (p.22, 들어가며)
신경과 의사인 대니얼 깁스 박사는 2015년 치매를 진단받았다. 후각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알아차린 것이 2006년, 그의 나이 54세. 이듬해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였지만 후각은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나빠졌다. 바쁜 삶을 영위하느라 시간은 흘렀고,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은 건 64세.
현재 알츠하이머병에서 제일 먼저 영향받는 곳이 뇌의 후각 중추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손상되는 후각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다음 손상되는 해마로 인해 최근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면서 치매를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인지능력 상실 전에 치매를 발견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과학자로서 기여하겠다는 열망을 갖고, 임상에도 열심히 참여한다. 유산소 운동, 지중해 식단, 정신을 자극하는 활동, 사회적 참여, 양질의 수면 등 그는 병의 진행속도를 늦추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다. 점차 책을 읽을 수도 없고, 회의에 참여해도 진행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고, 퇴행이 진행되는 것을 몸소 체감하며 기록한다.
‘내 뇌에 새겨진 문신’이란 뭘까? 글자 그대로 문신이기도 하고 비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내 뇌에 있는 헤모시데린은 문신에 쓰는 잉크 염료와 매우 유사하다. 내 뇌에는 정말로 문신이 새겨져 있는 셈이다. (중략) 이는 내가 알츠하이머병과 벌인 전투의 흔적이며 이후 내게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p.157)
원제는 A Tatoo on My Brain
자신의 뇌 MRI를 보고 뇌하수체 종양을 발견,
치매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던 저자.
제목부터 그 담담함이 느껴진다.
사실 기억을 앗아가는 것이 죽음보다 더 무섭다.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게 되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삶을 향한 낙관의 기록을 통해,
새로운 삶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 나가면서.
일상의 기쁨을 여느 때처럼 마주하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주변인에게 갖는 부채의식보다,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생활습관으로 극복하려는 그의 의지는
마지막까지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한 여정으로 보였다.
초연한 삶의 태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병이기에,
읽는 내내 저자를 응원하면서 읽었다.
기억과 추억은 우리 존재를 형성할 뿐 아니라, 개인으로도 관계 속에서도 우리를 가장 심오한 방식으로 정의한다. 이것이 바로 알츠하이머병을 더 일찍 진단하고 치료함으로써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말할 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 (p.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