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만난 말들 - 프랑스어가 깨우는 생의 순간과 떨림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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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각각의 공동체가 경험과 성찰을 통해 빚어낸 열매다. (p.4, 프롤로그)


이 책은 프랑스어에 담긴 철학, 문화,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 인문학적 소양에 대해 알 기회를 준다. 우리와는 사고가 다른 프랑스인들의 언어를 통해 나 자신, 또는 우리 사회를 되돌아 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한동일님의 <라틴어 수업>이 떠올랐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단어들

1. Doucement (두스망: 부드럽게)

_ "절대 달리지 마. 늦으면 그냥 늦는 거야. 늦었다고 달리다가 사고가 나는 법이거든. 더 중요한 건 너의 안전이야." (p.20)


등굣길에 뛰다가 넘어진 12살 아이에게 그들이 건넨 말이다.  천천히나, 조심조심이 아닌 부드럽게 라는 뜻의 '두스망'이라는 프랑스단어가 이렇게 쓰인다고?! 그들의 여유로움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단어다.

난 늘 뛰어다니는데, 언제부터 빨리빨리가 내 몸에 체화되었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만원 전철에 낑겨 탔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분명 어렸을 때부터다. 나 역시 집을 나설 때마다, 우리 아이들에게
'빨리빨리'라는 단어를 읊어댔는데, 반성해야겠다. 그러나, 여전히 '두스망'까지는 안될 듯 싶다. 

2. Envie (앙비: 욕망)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친구가. 영화에 대한 '앙비'가 없어서 못 가겠다고 했다는 일화. 신기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직설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건가. 보통 우리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둘러대거나, 딱히 둘러댈 핑계가 없으면 그냥 싫어도 상대에게 맞춰주지 않았던가. 

_ 타인과 견주어 불행하거나 행복해지는 개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비추어 삶을 반추하는 개인을 프랑스 사회는 탄생시킨 것이다. (p.55)


이 책을 읽다보면, 집단보다는 나 자신의 개인의 평정,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적인 프랑스식 문화를 접하게 된다. 우리가 K-방역을 자랑스러워하며 코로나 백신 N차 접종을 하고 있을 당시 프랑스는 백신접종 의무화 반대 시위를 하며 자유를 외쳤다. 나로서는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안전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의 프랑스식 문화를 접하며 '다름'을 인지했다. 

3. Belle-mere (벨메르: 새어머니, 시어머니 등)
프랑스는 '아름다운 어머니'라는 뜻은 벨메르가 시어머니, 장모, 아버지의 여자친구 등 두루두루 가르킨다고 한다. Belle-soeur(벨쇠르) 역시 직역하면 '아름다운 자매'이지만, 남편의 여자 형제, 오빠 혹은 남동생의 아내, 아내의 자매, 새엄마가 데리고 온 자매 등 친자매가 아닌 자매를 두루 일컫는다고. 

우리나라는 호칭이 많다. 고모, 이모, 숙모, 동서, 당숙 등. 나조차 이 호칭들을 잘 쓰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만나면, 나이부터 시작해서 호칭정리를 한다. 그런데 프랑스는 퉁치는 단어로 인해 호칭 정리가 불명확한 느낌이다. 그런데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더 좋아보인다. 

그래도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1인 가구가 더 많아지면서 예전의 호칭이 어느 순간 사라지지 않을까.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니까 말이다.

_ 이토록 관계를 규정하는 성긴 호칭은 서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도록 사람들을 길들인다. 지나친 관심도, 애정도, 간섭도 사양하게 만드는 오지랖 방지의 기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p.160) 


4. 그 외에도, 
문화적 예외, 정교분리원칙, 불이 꺼지다, 과두정치, 연대 등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하다. 이렇게나 다른 나라였구나, 프랑스는. 넘어가는 책 페이지가 아쉽다. 



다른 나라의 문화나 가치관을 알아간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한국에 살고 있는 내가 바라본 한국과, 프랑스에서 바라본 한국은 그 차이가 꽤 있다. 그 다름이라는 것을 인지할 때, 세계관이 더 넓어지는 느낌이랄까.  


작가님이 2편을 써주신다면 좋겠다.
 

우리가 일상처럼 넘기는 일상이 사실은 특별한 현상일 수도 있고, 
우리가 특별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별거 아닌 일상일 수도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불이 꺼졌다‘는 의미, 즉 사망했다는 표현이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평생 타오르다 마침내 꺼지는 불로 바라보는 낭만적인 프랑스식 표현은 시작과 불가역적 종착역이 있는 ‘직선적 셰계관‘을 투영한다. 이는 잘만 하면 종착점에 이르러 천국의 문에 도달 할 수 있는 옵션을 포함한 기독교적 세계관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에서 사망을 뜻하는 ‘돌아가셨다‘라는 표현은 사후 세계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 무엇이든 순환적 세계관에 대한 집단 무의식을 드러낸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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