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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의 심리학 - 무력감을 털어내고 나답게 사는 심리 처방전
브릿 프랭크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2월
평점 :
_ 마약을 마지막으로 했던 날이 기억난다. 당시 나는 몇 달 동안 계속 나한테 정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었다. 내가 직접 마약을 산 것 아니니까 괜찮다고 변명했다. 그렇게 계속 현실을 부정하기란 생각보다 쉬웠다. 이때까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늘 중독성 강한 마약을 썼는 데 마약은 친목을 위한 도구이지 내가 중독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지저분한 욕실에 혼자 있었다. 유리관 속 메스암페타민 조각과 함께 나의 남아있던 자아 파편이 타들어 갔다. 하얀 연기가 긴 관을 통해 빙빙 돌자 나한테 문제가 있나 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그림자를 마주한 건 바로 그 때였다. (p.104)
저자 브릿 프랭크는 임상 심리학자이자 심리 치료사. 그녀는 20대에 마약, 관계 중독, 자기 부정 사이를 오가며 극심한 무기력에 시달렸다고 한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우울증, 경계성 인격 장애, 섭식 장애를 모두 극복했다고 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생각났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다양한 감정의 역할이 있음을 알려주는 감동적인 영화였다. 기쁨만 가득한 기억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슬픔을 꾹 참고 살 수도 없는 일이다. 무기력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무기력한 것에 부정적인 감정을 이입하면 오히려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이를 신호로 받아들이고, 쉼이 필요하거나 충전해야할 시기라는 것을 인지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_ 브레네 브라운은 우리의 불완전함 깊숙한 곳이 선물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대담하게 맞서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유대는 오로지 우리가 불완전한 자아를 세상에 드러낼 때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의 소속감은 자기 수용 수준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 (p.48)
브레네 브라운의 <마음 가면>을 읽고난 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에서 또 만날 줄이야! 브라운 박사는 <마음 가면>에서 취약성, 수치심 등에 맞서 '마음 가면'을 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이야기했다.
이 책에서는 무기력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나, 내키지 않으면 근본 원인까지 찾을 필요는 없다고. 무기력은 치료할 문제가 아닌,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로 받아들이면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_ 정신건강 증상은 미충족 욕구에 대한 창의적인 징후다. 우리는 게으르거나, 미치거나, 동기부여가 안 된 게 아니다. 무기력에서 벗어난답시고 절벽에서 뛰어내릴 필요가 없다. 작은 발걸음을 내디디고,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핀 다음, 또다시 한걸음을 내디디라. 그 과정에서 자축하는 일도 잊지 말라. (p.314)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처럼 어른이 되어도 다양한 감정 표현을 모두 수용하지 못할 때도 있고,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몸은 신호를 주기 마련이다. 그 때마다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기력은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누군가에게 들으면 힘이 날 것 같은 말이다. 나 역시 누군가 무기력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줘야겠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화살을 당신 자신에게 돌리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