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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 휘청거리는 삶을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법
캐서린 메이 지음, 이유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1월
평점 :
_ 라디오를 듣다가 마주친 종잡을 수 없는 상황.
서서히 엄습하는, 나는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
명칭 혹은 병명. 아스퍼거 증후군.
하지만 나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데? 모두 알고 있듯이.
나는 아니다. 나는 아니다. 다른 누군가의 얘기다. (p.89)
이 책은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임을 알게 된 케서린 메이의 에세이다. 그녀는 라디오를 듣다가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임을 알게 된다. 부인하고 싶지만, 이내 자신의 모든 행동이 그렇게 이해됨을 인지한다. 참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39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_ "어떻게 생각해?" 나는 묻는다. "내 얘기가 맞는 것 같아? 모든 게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가 이거였다고 생각해?"
그는 숨을 내쉰다. "음...... 그런 것 같아......" 그리고 그가 조심스럽게 선택하는 어휘가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그게 당신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가 알고 있었다니, 최악이다. 그는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알기도 전에 그는 알고 있었다. 나는 평생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p.115)
배우자에게 말했을 때, 어쩌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어서 놀라본 적이 있는지. 그녀 역시 아스퍼거 증후군을 남편에게 용기내어 고백하는데, 그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 자신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임을 받아들이는데에 시간이 걸리는 듯 보였다.
_ 나는 걸을 것이다. 걸을 것이고, 상심하지 않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p.191)
그녀는 강박적으로 걷는 것처럼 보였다. 한 달에 몇 킬로미터씩 걸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표에 집착하면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갖고. 처음에는 왜 그렇게 강박적으로 걷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러면서 자신을 이해하고, 주변인들을 생각하고, 그렇게 요동치는 마음을 부여잡는 것 같아 보였다.
_ 그때 그 라디오 인터뷰를 듣지 않았더라도 나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의문이 든다. 그 이름표가 가져올 미묘한 인식의 변화가 걱정된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무리 없이 처리해나가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자폐 성향이 있다는 생각을 계속할까 봐 걱정된다. (p.225)
그녀는 차근차근 받아들인다. 병명을 몰랐을 때나 알고 있을 때나 주변 사람들은 동일하다. 그녀를 새롭게 받아들이거나, 다르게 보지 않는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부인하고, 놀라고, 과거의 나를 돌이켜보면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걷는다는 행위가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을 정제하는데 영향이 이렇게나 있었나 싶었다.
_ 사실 자폐 스팩트럼 장애라는 이름표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해주고, 비로소 내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거울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그게 자랑스럽다. 그것은 내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그 이름표를 단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차이를 상기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때때로 하나의 이름표는 세상에서 온정을 이끌어내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p.358)
이 책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여정을 보여주는 에세이다. 마지막에 병원에서 자폐 진단을 받고 기뻐하는 그녀, 그녀는 말한다 "모든 게 이해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남들에게도 설명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위안이 되니까요."(p.373)
병이 있던 없던,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누구나 바라지 않을까. 그녀의 남편과 아들, 함께 걷는 친구 에마와 베시. 그들이야말로 그녀가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 조력자다. 세상을 혼자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와 어울리면서 자신이 이해받을 때, 온전히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될런지 모르겠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를 읽고, 2023년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그려본다면,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다. 시간에 쫓겨서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면, 부족한 시간 나름 충실히 다 할줄 알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다.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이 필요했다는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아이들에게 이해받는 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잔소리를 줄이고 다정한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