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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허지웅이라는 사람이 가끔 티비에 나와서 알고는 있었다. 그리고 혈액암이라는 병을 앓고, 이 책을 접하고나서는 그 때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 곳곳에 자신이 이전에 적극적으로 글을 쓰며 의견을 말했던 것들에 대해 이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도 말한다. 아프기 전과 후에 글로 써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달라졌다고. 아마도 최근에 출간한 <최소한의 이웃>은 현재 그가 말하고 싶은 주제일거다. 궁금해졌다.
친한 친구, 지인 중에는 암을 앓았던 사람들이 꽤 있다. 심지어 회사에서 가끔 점심을 함께 하는 분이 몇 달 전 10년만에 재발한 유방암을 나에게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태도가 덤덤하다는거지, 실상은 생각지도 못한 재발에 너무 놀랬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너무도 차분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해서 하마터면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누구든 아플 때에는 이리저리 방황하고 해메다가, 결국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되돌아오면 타인에게는 무덤덤하게 이야기한다. 친한 친구 중에도 내게 그러한 소식을 처음 전했을 때, 서로가 놀라면서도 그 방황을 함께 공유하지는 못했다. 이따금 환우회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소식을 전했고, 이후 회사에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연락을 주고 받았다.
사실은 무덤덤하지 않고,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에 주기적인 검진을 받으면서 마음을 졸일 때가 있지만, 그러한 사실은 뒤로 한다. 이 또한 타인을 위한 배려인가 싶기도 하고. 나 또한 무엇을 해줄 수 없어 안타까워하다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그런 면에서 허지웅님은 굉장히 솔직하게 글을 쓰는 분 같다. 이전에 그가 왜 이렇게 핏대 높이며 자신의 의견을 과감하게 말했는지 이해가 된다고 해야할까. 오히려 아프고 나서 자신이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데 나는 왜 아쉬운건지 모르겠다.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하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허지웅표 에세이는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감이 왔다. 나는 처음 그의 책을 접했지만, 또 들어보고 싶다. 그의 생각을.
시간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실명으로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그냥 쓰지 않는다. 내용만큼이나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전처럼 드러내놓고 싫어하지 않는다. 나는 웃는다. 비굴하게 웃을 때도 있고 상냥하게 웃을 때도 있다. 나는 이제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쓴다. - P216
불행한 일을 겪으면 사람의 머릿속은 그렇게 된다. 그리고 불행의 인과관계를 따져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보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 P54
요컨대 불행의 인과관계를 선명하게 규명해보겠다는 집착에는 아무런 요점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건 그저 또 다른 고통에 불과하다. 아니 어쩌면 삶의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그러한 집착은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인과관계를 창조한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고 반추해서 기어이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낸다. 내가 가해자일 가능성은 철저하게 제거한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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