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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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소양리 북스 키친' 같은 곳이 있다면, 이틀 정도 휴가내고 혼자 가고 싶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가끔 오후 반차를 내고 미술관에 가는 등 짧은 여유를 즐기는 편인데, 이런 북스테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편소설이지만 '소양리 북스 키친'에 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편씩 소개되며 큰 줄기를 이룬다. <안녕, 나의 20대>는 대학교 절친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각각 흩어져 지내다, 소양리에 모여서 이야기하는 4인방의 이야기다. 

_ 사총사의 세계는 점점 경계선이 많아졌다. 그리고 함께 모이는 시간도 점점 줄었다. 20대 초반에는 일상을 함께 하는 게 당연했지만, 20대 후반이 되자 각자의 행성을 개척해서 우주 정거장을 통해서만 교신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p.72)

나 또한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 때 친구들과 연락이 거의 드물다. 하는 일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르고, 결혼 시기가 달랐고, 한참 키우는 아이들의 나이가 다르다. 그러다보면 결국 누군가의 장례식장에서 만난다. 그러면 또다시 우리는 대학교 이야기를 한다. 만나면 현재보다는 과거 이야기가 더 생생해진다. 그때 마셨던 술병을 세고, 우리가 갔었던 MT, 연애사 등등 놀릴 거리가 많아서 이야기의 끝이 없어진다. 20대를 추억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적 경로와 최단 경로>에서는 예비 판사인 최소희가 갑상선암을 발견하고 한달 북스테이를 하러 소양리에 찾아온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삶, 좋아하는 것들을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_ "그러니까 말이에요. 하아, 정작 내비게이션은 최단 거리라고 해서 섣불리 최적 경로라고 판단하지 않는데......." (중략) 소희의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처럼 '최적 경로'라는 단어가 밀려들었다.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 경주도 아니고 마라톤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아닐까. 삶이란 결국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찾아내서 자신에게 최적인 길을 설정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p.123)

사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경로대로 길을 가다가 막히면 그 때부터 초조함을 느낀다. 그 외의 경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혹은 멈춘 시간에 대한 공백을 우리 사회는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다니다 온 유진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우도, 작곡가 꿈을 꾸던 형준도 소양리 북스 키친에 안주하려고 온 것은 아니다. 다들 자신의 삶에서 힘든 시기를 지나 그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해주고, 자신도 위로를 받으며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찾아나가는 중이다. 

성장을 하던 과거 사회에서는 평범한 누구나 사회의 일원이 되는게 쉬웠다. 그러나 성장이 더딘 현대 사회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신의 꿈을 이루는게 어렵다. 몇년씩 취업을 준비해도 내가 원하는 직장인이 되는 것이 쉽지 않고, 원대한 꿈이 아님에도, 하루도 허투루 살고 있지 않음에도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공간이 필요한게 아닌가싶다. 우리 모두 잊고 있었던 사랑의 흔적을 찾아내면, 다시 기억한다면 힘을 내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았던 이들이 결국은 그러한 기억을 찾고 한발 한발 내딪는 모습이 내게는 힐링이었다. 정말로 어딘가에 이런 곳이 존재할 것 같다. 꼭 북스테이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나만의 공간이.    


*쌤앤파커스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북스 키친은 말 그대로 책들의 부엌이에요. 음식처럼 마음의 허전한 구석을 채워주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지었어요. 지난날의 저처럼 번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마음을 돌아보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맛있는 이야기가 솔솔 퍼져 나가서 사람들이 마음의 허기를 느끼고 마음을 채워주는 이야기를 만나게 됐으면 했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 P227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은 흔적에 기대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몰라." (중략) 누군가의 비난을 견뎌낼 수 있는 용기가, 이어지는 실패와 거절의 하루를 꾹 참고 지나 보낼 수 잇는 인내가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흔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사랑은 완전하니까.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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