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는 내내

'병자호란' 이라는 상황적으로 헤어나오기 힘든 절망감을 느낌과 동시에,

오늘 날 우리 사회 모습이 투영되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멋대로 판단한 것이지만,

김훈 작가는 '병자호란' 이라는 역사를 통해  

오늘 날 사회상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병자호란과 같은 치욕을

다시는 겪으면 안되기에.

 

 

 

p.95

청의 무력은 대륙을 비워 놓고 반도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요동을 내주기는 했으나 북경 언저리로 밀려난 명이 청의 빈 자리를 압박하면, 청은 남한산성을 포기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청이 돌아가면 조정은 청의 퇴로를 따라서 싸우지 않고 도성으로 복귀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환도가 이루어진다면 성 안에서 투항이나 화친을 발설하던 자들은 사직의 이름으로 휘두르는 임금의 칼에 죽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성 안이 스스로 기진하여 문을 열고 나가는 날, 끝까지 싸우기를 발설했던 자들은 용골대의 칼 아래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었다.

병자호란의 상황적 아이러니.

나라면 주화론을 주장했을까, 아니면 척화론을 주장했을까.

 

p.330

칸이 군사를 조선에 놓고 곧 돌아가리라는 말을 서문 대장이 묘당에 올렸다.

칸이 돌아가고 나면 말길은 아주 끊기고 성 밖은 용골대의 세상이 될 것이므로, 칸이 돌아가기 전에 성 밖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야 한다고 최명길은 말했다. 살려는 뜻은 나에게 있고 적에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칸이 돌아가거나 돌아가지 않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김상헌은 말했다. 칸이 온 것과 칸이 돌아가는 것은 똑같이 두려운 일이라고 김류는 말했다.

마당에 들뜬 흙을 바라 보면서 임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욕해야 할 사람은 주화론을 주장한 최명길인가?

내 대답은 절대로 NO 이다.

여기서 욕을 먹어 마땅한 인물은 영의정 '김류' 이다.

그는 주화론과 척화론, 그 어디에도 서지 않는 '중용' 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당상 중에서도 가장 높다는 영의정인 그는  

어느 한 방향에도 치우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함 으로써,

목숨을 유지하면서도 역적이라고 비난을 받지 않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하다.

최명길은 항복을 하자고 하였지만, 이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보다는  

(물론 이런 마음도 약간은 있었을 것이다.)

300여년간 이어온 사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병자호란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수적으로 비교할 수 조차 없었으며, 지방에서 올라온 병사들은 모두 도중에 궤멸당하고 말았다.

이럴 때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최명길의 주화론은 절대로 best가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worst는 아닌 것이다.

 

이런 역사가 오늘 날도 되풀이 되고 있다.

비판을 면하기 위한 어줍짢은 '중용' 이 난무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비판을 받는 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부적인 비판이 없다면 발전도 없다.

 

 

 

 

cf) 이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척화파 김상헌

http://100.naver.com/100.nhn?docid=31148

주화파 최명길

http://100.naver.com/100.nhn?docid=147811

김류

http://100.naver.com/100.nhn?docid=318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저께 김연수 님의 작품을 읽기로 결심한 이후로,

어제 아람누리 도서관에서 이 책을 꺼내들었고 5시간에 걸쳐서 읽었으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오늘 3시간에 걸쳐 한 번 더 읽게 되었다.

 

솔직히 책을,

그것도 소설책을 연달아 2번 읽은 것은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에 어떠한 매력이 있었길래 나는 그러했을까.

 

워낙 복잡한 구성인 탓에 내용을 좀더 잘 이해하려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책을 읽고난 후의 그 감정을 한 번 더 느끼고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 감정이 무어라 정의를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어느정도 방향을 잡자면 올바른 역사를 알고 싶어졌고 그런 역사를 세우는 데에 일조하고 싶어졌다.

 

이 소설은 나에게는 생소했던 역사 개념인 분신정국인 발발한 1991년 즈음을 주 시대 배경으로 하여, 그로 부터 30여년 전 이야기도 전개된다. (단순히 제목만 보고 연애소설인가? 오해했던 내가 순간 부끄럽기도 했지만, 뭐 연애이야기도 많이 나오니 피박은 면한 심정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0년도 되지 않았던 역사인데, 나는 몰랐었다. 그 때 어머니와 손 잡고 교회를 가다가 종로3가 지하철 역에서 최루탄을 맡고 눈물을 비오듯 쏟았던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20년 전에 최루탄이 날렸으며 분신을 하고 강제폭력이 난무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무서우릴만치 망각의 동물이니깐.

 

지금이라도 늦지않았다.

일단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커서 뭘해도 올바른 사람이 될 것 같다.

문득, 며칠 전 보았던 무릎팍도사 안철수 씨 편이 생각난다.

우리는 뛰어난 사람이 되기전에 일단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한다.

 

 

 

 

p.표지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내 인생에 있어, 과연 그 빛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언제쯤 평생에 걸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p.42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감각이 바뀌면서 현실이 무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마련인데, 이를 두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 이라고 불렀다. 모든 성인(聖人)들은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해 그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 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현실이 오직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다. 하지만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 경험한 그 다음 순간, 모든 성인들은 감각적 현실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지 깨닫게 된다. 현실이 감각적으로만 성립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모든게 덧없을 뿐이라는 허무주의에 빠져야 할 텐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더욱더 그 감각적인 생생함을 즐기게 되니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 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최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여러번 읽어보았지만, 아직도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 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 잘 모르겠다;

 

p.64

문제는 그게 연인이든 가족이든 이웃이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인류를 유일한 존재로 만들고, 또 그러므로 이 우주는 유한할 수밖에 없다.

 

p.67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까닭은 그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이었다.

 

p;70

가장 육체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사랑은 그런 온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약간 더 따뜻한 상태. 하지만 한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몸에서 전해지는 그 정도의 온기면 충분했다.

평소보다 약간 더 따뜻한 상태,

그런 온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p.88 투르게네프의 작품 '첫사랑'

"나는 언제나 불안한 마음으로 뭔가를 기다렸고 모든 것에 경이로움을 느꼈으며 무엇인가에 끊입없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을이 질 때면 나는 제비떼처럼 날아다니는 환상에 빠져 주위를 빙빙 돌면서 장난을 쳤다. 뿐만 아니라 나는 많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고 우울한 심정에 빠지기도 했다."

 

p.227

음악은 본질적으로 역설이지. 침묵을 이겨내기 위해 태어나지만, 결국 또다른 침묵으로 끝날 뿐이니까. 삶이 그런 것처럼.

 

p.292

"이건 브레인워싱, 즉 세뇌(洗腦)를 은유하는 표현이지. 누군가를 브레인워싱할 때는 제일 먼저 그 대상을 고립된 상황에 몰아넣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을 털어놓게 만들어야 하는 거야. 잠을 안 재우면서, 사람을 바꿔가면서 심문하고, 수십 번에 걸쳐서 진술서를 쓰게 하고, 다시 그 진술의 내용에 대해서 더 깊이 따져묻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결국에는 비밀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지는, 말 그대로 벌거벗은 상태가 되지. 그때부터 세뇌작업이 시작되는 거야."

세뇌의 한자어를 보는 순간, 몸에 있는 가느다란 솜털들이 쭈뼛 서는 느낌은 무엇일까. '뇌를 씻는다.' 정말 무서운 단어다.

 

p.298 옥중의 네루가 어린 딸 인디라에게 쓴 글

'역사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더 매력적인 것은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

 

p.322

히로뽕은 필로폰(philopon), 즉 '일을 사랑한다'는 희랍어에서 유래한 상표명을 붙이고 대일본제약이 1940년부터 시판한 각성제로,

카미카제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히로뽕.

그러고도 그들은 카미카제를 신풍이란다...

그리고 놀라웠던 것은, 히로뽕의 어원. 

 

p.346

광주항쟁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광주항쟁은 남한에 있는 모든 젊은이들을 우연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이 죽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미팅을 하고 섹스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지극히 단순했다. 1980년 5월 광주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내 머릿 속은 너무나도 복잡해졌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하고도 6년뒤에 태어난 나도 이런데, 80년대에 20대였던 사람들은 느낌이 어떨까...

 

p.352

별들의 집단 내에서 각 별들은 중심 주위를 돌게 되는데, 이런 운동을 일으키는 주된 힘은 집단 전체의 중력이다. 그러나 별들은 가까이 지나는 다른 별들로부터 계속 인력을 받는다. 이때 두 천체가 서로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을 충돌이라고 하고, 진행경로를 바꾸면서 서로 비켜가는 경우를 조우라고 한다. 조우가 일어날 때는 섭동을 통해 서로간에 에너지의 주고받음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진행경로의 속도가 변하게 된다. 그게 바로 섭동이다. 천왕성의 경로가 불규칙한 까닭은 그 근처에 있는 다른 행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p.378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히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데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책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 제2악장'을 듣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한단다. 신기하게도 들어보니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에 나왔던 곡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들어봐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성경에서 나온 사마리아인들을 비유한 제목 때문이랄까,

아니면 장하준 교수에 대한 관심 때문일까.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이라고 낙인찍히기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

(국방부님들 완전 멋지세요 ^^  

더군다나 최근에는 불온서적 결정에 대해 헌소한 법무관들을 파면시켰다면서요 ^^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결정내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

 

뭐 여차여차한 이유로 어제오늘 양일간에 걸쳐 읽게 되었는데,

기존의 경제학적 통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다.

 

간단히 책의 목적을 보자면,

나쁜사마리아인들(개도국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내세우는 선진국)을

변화시켜 개도국의 경제상황이 개선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무차별 경쟁보다 개도국의 능력부터 상승시키자는 이야기!

(방법으로는 보호 무역주의, 지적재산권 특허권 기간 줄이기,

외국인 투자 규제, 선진기술 이전 등)

 

그런데 과연 나쁜사마리아인들이 태도를 바꿀 수 있을까,

그들은 오직 이윤추구를 위해 달릴 뿐인데.

그래도 나와같이 이 책을 읽고 시야를 넓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p.35

그들은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며

'나쁜 사마리아인' 처럼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다.

-> 이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 에서 따온 이야기이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지만,  

성경에서는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한 한 남자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는 사건이 인용된다.

아무래도 장교수님은 이 책의 제목을 정말로 잘 지으신듯!

일단 서양사람들은 기독교와 관련있다면 관심을 가지길 마련.

+ 나쁜 사마리아인의 대부분은 서양사람일듯?!

 

 

p.58

그러나 부자 나라들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영향력을 발휘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부자 나라들의 의도이다. 예컨대 선진국들은 특정한 정책의 채택을 대외 원조의 조건으로 삼는다거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채택과 같은) '착한 행동'에 대한 대가로 특혜적인 무역 협정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가난한 나라들이 특정한 정책을 채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1997년 우리나라가 IMF와 협정을 맺었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다 알고보면 협정 조항들은 미국과 일본 등의 선진국이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채택을 유도해 왔던 정책의 복사판들이었다;

 

p.94

자유 무역의 옹호국인 영국과 미국 두 나라의 경우 세계를 지배하는 산업 강국이 되기 전까지는 자유 무역 경제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부자 나라들 가운데서도 가장 심하게 보호 무역을 실시했던 나라였다.

충격을 받았던 구절, 이 사실을 지금까지 몰랐었다.

 

p.113

독자들은 보호주의적인 수입 대체 산업화 시기의 '성적이 형편없던 옛날'에 개발도상국들의 성장률이 현재의 자유 무역 하에서 이룬 성장률의 평균 두 배에 이르렀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자유 무역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p.121

표면적으로 보면 WTO는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 놓고 회원국들 누구나 똑같은 규칙에 의거해 경기를 벌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느 누가 이것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WTO 전체 회원국이 전체 협정에 서명을 해야 한다는 '일괄 타결' 원칙이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GATT 제도 하에서 각국은 어느 협정에 서명할지 선택할 수 있었고, 따라서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이 원하지 않는 협정, 예컨대 보조금의 사용을 제한하는 협정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괄 타결 방식에서는 전체 회원국이 똑같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 전체 회원국이 관세를 줄여야 하고, 수입 쿼터제와 (극빈국에게만 허용되는) 수출 보조금, 그리고 대부분의 국내 보조금을 폐기해야 한다.

 

p.131

따라서 진심으로 개발도상국들이 무역을 통해 발전하도록 도우려 한다면, 부자 나라들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에 그랬던 것처럼 비대칭적인 보호주의를 용인하고 자국에 대한 보호의 수준을 개발도상국들보다 훨씬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세계 무역 체제는 개발도상국들이 유치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 - 보호관세, 보조금, 외국인 투자 규제 등 - 을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발전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p.242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권유하는 '건전한' 금융 정책 또한 개발도상국의 거시경제 운용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는 앞서 언급한 BIS 비율, 즉 BIS의 자본 적정 비율이다.

BIS 자기자본비율

-> BIS(국제결제은행)가 정한 은행 위험자사대비 자기자본 비율

    BIS 비율이 최소 8%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근래에 신문에 자주 나오던데 이제서야 알게 됨 -_- 게으른 녀석.

 

P.296

이렇듯 경제 발전에 확실하게 좋거나 확실하게 나쁜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 속에 들어 잇는 '원료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우세할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우세할 수 있다. 시대적인 상황이나 지리적인 위치에 차이가 있다면, 설령 두 사회가 (회교나 유교, 혹은 기독교라는) 똑같은 원료를 가지고 있더라도 전혀 이질적인 행동 양식을 드러낼 수 있다.

 

P.299

(아프리카와 남미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떠올리는) '오늘을 위해 사는 것' 혹은 '태평하게 사는 것' 역시 경제적인 조건이 빚어 내는 결과이다. 천천히 변화하는 경제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필요성이 그다지 많지 않다.사람들은 새로운 기회나 예기치 않은 충격을 예상할 때에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난한 경제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신용, 보험, 계약 따위의) 장치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장교수는 경제 발전이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도 스페인 사람들이 피에스타를 즐기는 것을 보면 문화(민족성)가 경제적 조건보다 우세한 경우이다. 이들은 분명 당장 일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피에스타 자체를 즐기는 것이니깐. 하지만 요즘은 경제력 악화로 피에스타를 줄이거나 없애자는 의견이 있다고도 한다.

 

p.320

능력을 기르는 데 투자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당연히 희생이 따른다. 하지만 그 희생이 무서워 투자를 안 할 수는 없다.

난 지금 이 시기가 미래를 위한 희생의 시기라 생각해.

하고 싶은 것 여럿 참고있거든ㅠ

 

p.321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를 개선하라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이 원칙 때문에 미국인들은 19세기에 자유 무역을 실시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얼마 전까지도 핀란드 사람들은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한국 정부는 1960년대에 세계은행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철소를 건설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스위스 사람들은 19세기 말이 되기 전까지는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 사람들은 외국인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중략)

앞에서 노키아의 전자 부문이 수익을 내기까지는 17년이 걸렸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그저 전주에 불과하다. 도요타는 30년 넘게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실시한 뒤에야 비록 하급차지만 국제 자동차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이 모직물 제조 부문에서 저지대국을 따라잡기까지는 헨리7세시대부터 시작해서 거의 100년이 걸렸다. 미국이 관세를 폐지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질 만큼 경제를 발전시키기까지는 130년이 걸렸다. 만일 이렇듯 시간을 길게 보는 시야를 갖지 못했더라면 아직까지도 일본에서는 견직물이, 영국에서는 모직물이, 미국에서는 면직물이 주력 수출 품목이었을 것이다.

 

p.323

능력의 향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능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정확히 어디에 투자를 해야할까? 내가 내놓는 대답은 공업,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제조업이라는 것이다.  

(중략)

역사는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근본적으로 나누어 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부자 나라들의 우수한 제조업 능력이라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보여 주고 있다. 제조업은 일반적으로 농업이나 서비스업에 비해 생산성이 높고, 더 중요하게는 생산성이 훨씬 빠른 속도로 향상되는 경향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911 사건을 통해서야 알게 된 나라 아프가니스탄은 우리나라처럼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그러한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책 한 권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 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진심으로 그들을 돕고 싶다.

더불어 책 한 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할레드 호세이니,  

그처럼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이 미래의 소망이기도 하다.

 

 

 

 

p.198 운전사가 라일라와 타리크에게 한 말

"젊은 친구들, 저게 우리나라의 역사라네. 끝없이 반복되는 침략의 역사지. 마케도니아인들, 사산 왕조의 사람들, 아랍인들, 몽골인들, 이제는 소련인들이지. 하지만 우리는 저기에 있는 벽과 같다네. 부서지고, 쳐다봐야 아름다울 것도 없건만, 아직도 저렇게 서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와 같이 아프가니스탄은 침략의 역사였다.

하지만 두 나라는 여전히 그 곳을 지키고 있다.

웬지 모르게 느껴진 동질감...

 

p.259 카불에 관한 시, 사이브에타브리지 17c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아름다운 도시였던 카불, 그것을 단 두 줄의 시로 표현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 얼마나 황홀했을까.

 

p.339

아지자는 마리암의 팔에 안기자마자,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고 마리암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마리암은 반은 당혹스럽고 반은 고마운 미소를 입술에 머금고 어색하게 아이를 흔들었다. 지금까지 누군가가 이처럼 자신을 필요로 해준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그렇게 순진하게, 그렇게 에누리 없이 사랑을 표시한 적이 없었다.

마리암은 울음이 나오려 했다.

"너는 어째서 나처럼 늙고 못생긴 할망구를 좋아하느냐? 응? 나는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라는 게 보이지 않느냐? 테하티란 말이다. 내가 너한테 줄 게 뭐가 있다고 이러느냐?"

마리암은 아지자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하지만 아지자는 좋아서 얼굴을 더 깊이 파묻었다. 아이가 그렇게 하자 마리암은 황홀해졌다. 눈물이 솟았다. 마음에 날개가 달렸다. 잘못되고 실패한 관계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그녀가 이 작은 아이에게서 처음으로 진정한 관계를 찾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솔직히 이 대목에서 눈물이 났다. 

카불에서 하라미(사생아)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

마리암 그녀는 진실로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부모님, 친구들이 주는 사랑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감사해야겠다.  

그리고 에누리 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연애소설이고,

수많은 청년들을 가슴 아프게하여 자살까지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명성이다.

(후반부에 베르테르가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사실은 모두 알리라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노라면,

괴테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에 투영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도 절실하게 표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장문장을 차근차근 읽으며 마음속으로 감상하면, 

마치 첫사랑의 감정이 되살아나듯 아련해지곤 한다.

(그래서 밑에 몇가지 문장을 인용했다는ㅋ)

그리고 괴테가 23세에 집필하기 시작했다는데, 지금 나와 비교해보면...

참... 그렇다... 하하하....

(확실히 예전 시대와 지금 시대를 비교해보면, 

예전 시대의 젊은이들이 훨씬 조숙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p.14

아아, 이렇게 벅차고, 이다지도 뜨겁게 마음속에

달아오르는 감정을 재현할 수 없을까?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대의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인 것처럼,

종이를 그대 영혼의 거울로 삼을 수 없을까?

진심이 담긴 글을 쓰는 것을 한 번이라도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할 내용이다. 그래서 이러한 주옥같은 문학작품을

읽을때마다 내 자신이 초라해짐을 느낀다.


 

p.64

아아, 무의식중에 내 손가락이 로테의 손가락에 닿거나,

발이 탁자 밑에서 서로 부딪치기라도 할 때 내 혈관이란

혈관이 얼마나 마구 뛰고 치솟는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불에라도 덴 것처럼 손과 발을 움츠린다.

하지만 곧 다시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서 살며시 몸을 편다.

내 감각 전체가 현기증에 걸린 듯 어지러워진다.

짝사랑의 감정을 정말로 실감나게 표현했다!

 

p.66

"오늘 나는 그녀를 만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밝은 마음으로 찬란한 태양을 쳐다보면서

그렇게 외친다.

"오늘 나는 그녀를 만난다!"

그렇게 외치면, 내게는 하루 종일 더 바랄 것이 없어진다.

모든 것이 이 한 가지 희망과 기대 속에 말려 들어가고 만다.

공감하오.

 

p.138

용무 대문에 시골에 체류하고 잇는 남편에게 로테는 간단한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편지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랑하고 또 진심으로 좋아하는 그대여, 될 수 있는대로

 한시라도 빨리 돌아와 주세요. 오직 그대가 돌아오시는 것만을

 학수고대하겠어요.> 그때 한 친구가 찾아와서 알베르트는

사정이 생겨서 좀 늦게 돌아올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래서 발송되지 못한 편지가 저녁때 내 손에 들어왔다.

나는 그 편지를 읽어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무엇 때문에

웃느냐고 물어보았다.

"상상력이란 정말 신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고 나는 소리쳤다.

"나는 일순간 이 편지를 나에게 쓰신 거라 멋대로 상상했지요"

그녀는 갑자기 이야기를 뚝 그쳤다. 내 대답이 그녀의 마음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나도 입을 다물고 침묵하였다.

저기요, 베르테르씨.

그건 상상력이 아니라 착각입니다,ㅋㅋㅋㅋ


 

p.145

나는 벌써 몇백 번이나 자칫 그녀의 목에 매달릴 뻔했다!

이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이 눈앞에서 얼신거리고 있는데,

손을 뻗칠 수가 없을 때 어떤 심정이 되는지 신만이 알 것이다.

손을 내밀고 붙잡는 것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어린애들은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손을 내밀고

붙잡으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p.151

그녀 자신과 나를 파멸시키는 독약을 스스로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깨닫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을 파멸로 이끄는 술잔을 그녀가 내밀 때 감지덕지

그것을 들이켜는 것이다.

<중략>

어제 내가 떠나려고 나왔을 때,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 그녀가 나보고 <사랑한다>는 말을 붙여서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 말이 나의 골수에 사무쳤다.

나는 혼자서 그 말을 백 번도 더 되풀이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며 횡설수설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 라는 말이 잠결에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러고는 혼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위트까지 겸비한 괴테여,

 

p.182

이처럼 깊은 생각에 잠기는 동안, 그녀는 또렷하게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베르테르를 자기 곁에 머무르게 하고 싶은 것이

자기 마음속의 은근한 소원임을 지금 처음으로 깊이 느꼈던

것입니다. 동시에 그녀는 그를 자기 곁에 붙잡아두는 일이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고 또 허용될 수도 없음을 스스로에게 타일렀습니다.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늘 쾌활하고 거리낌없었던

그녀가 이제는 행복에 대한 희망을 잃고 우수와 비애에 짓눌려서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듯이, 로테, 그녀도 드디어 베르테르를...!!

하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정숙한 처녀였다는 것이다.

베르테르의 마음을 받아주기에는 이미 한 남자(알베르트)의

여인이었고 지키고 돌볼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