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는 내내

'병자호란' 이라는 상황적으로 헤어나오기 힘든 절망감을 느낌과 동시에,

오늘 날 우리 사회 모습이 투영되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멋대로 판단한 것이지만,

김훈 작가는 '병자호란' 이라는 역사를 통해  

오늘 날 사회상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병자호란과 같은 치욕을

다시는 겪으면 안되기에.

 

 

 

p.95

청의 무력은 대륙을 비워 놓고 반도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요동을 내주기는 했으나 북경 언저리로 밀려난 명이 청의 빈 자리를 압박하면, 청은 남한산성을 포기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청이 돌아가면 조정은 청의 퇴로를 따라서 싸우지 않고 도성으로 복귀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환도가 이루어진다면 성 안에서 투항이나 화친을 발설하던 자들은 사직의 이름으로 휘두르는 임금의 칼에 죽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성 안이 스스로 기진하여 문을 열고 나가는 날, 끝까지 싸우기를 발설했던 자들은 용골대의 칼 아래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었다.

병자호란의 상황적 아이러니.

나라면 주화론을 주장했을까, 아니면 척화론을 주장했을까.

 

p.330

칸이 군사를 조선에 놓고 곧 돌아가리라는 말을 서문 대장이 묘당에 올렸다.

칸이 돌아가고 나면 말길은 아주 끊기고 성 밖은 용골대의 세상이 될 것이므로, 칸이 돌아가기 전에 성 밖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야 한다고 최명길은 말했다. 살려는 뜻은 나에게 있고 적에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칸이 돌아가거나 돌아가지 않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김상헌은 말했다. 칸이 온 것과 칸이 돌아가는 것은 똑같이 두려운 일이라고 김류는 말했다.

마당에 들뜬 흙을 바라 보면서 임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욕해야 할 사람은 주화론을 주장한 최명길인가?

내 대답은 절대로 NO 이다.

여기서 욕을 먹어 마땅한 인물은 영의정 '김류' 이다.

그는 주화론과 척화론, 그 어디에도 서지 않는 '중용' 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당상 중에서도 가장 높다는 영의정인 그는  

어느 한 방향에도 치우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함 으로써,

목숨을 유지하면서도 역적이라고 비난을 받지 않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하다.

최명길은 항복을 하자고 하였지만, 이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보다는  

(물론 이런 마음도 약간은 있었을 것이다.)

300여년간 이어온 사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병자호란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수적으로 비교할 수 조차 없었으며, 지방에서 올라온 병사들은 모두 도중에 궤멸당하고 말았다.

이럴 때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최명길의 주화론은 절대로 best가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worst는 아닌 것이다.

 

이런 역사가 오늘 날도 되풀이 되고 있다.

비판을 면하기 위한 어줍짢은 '중용' 이 난무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비판을 받는 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부적인 비판이 없다면 발전도 없다.

 

 

 

 

cf) 이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척화파 김상헌

http://100.naver.com/100.nhn?docid=31148

주화파 최명길

http://100.naver.com/100.nhn?docid=147811

김류

http://100.naver.com/100.nhn?docid=3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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