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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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위화 ㅣ 푸른숲

 

[허삼관매혈기]의 작가 위화가 8년 만에 발표한 원청왜 위화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인지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책장이 거침없이 넘어갈 만큼 막힘없이 읽히며문장마다 호탕함과 대범함이 느껴진다집필에만 23년이 걸렸다는 이 작품은 청나라로 대변되는 구시대가 저물고 중화민국이 시작되는 1900년대 초반 대격변기를 그리고 있다작품이 방대함 만큼 다양한 주제로 읽힐 수 있는 요소가 많다미지의 도시 '원청을 찾아 헤맨 린샹푸의 삶을 통해 격변했던 중국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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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샹푸는 어느 날 홀연히 왔다가두 번이나 홀연히 사라진 샤오메이를 찾아 그들의 딸을 포대기에 안고 그녀가 말한 '원청'을 찾아 길을 나선다하지만 원청은 찾을 수 없었고그녀의 말씨와 비슷하다고 느껴진 시진에서 그는 그녀를 기다리기로 한다그녀를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시진의 린샹푸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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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가 무너지며 기근과 사회의 혼란을 틈타 생겨난 토비들이 시진의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간다어미 없이 아비의 손에 키워진 린샹푸의 딸 린바이자는 린샹푸의 동업자인 천융량의 아내 리메이렌에게는 딸 같은 존재였다그런 그녀를 지키기위해 리메이렌은 인질로 잡힌 린바이자를 대신해 자신의 큰 아들 천야오우에게 대신 인질이 되라고 말한다.

 

전쟁과 사회의 혼란 속에서는 도덕보다 생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지며 인간들은 잔인해진다인간들의 잔인함은 상처를 남기며 상처는 약한 존재들에게 더 치명적이 된다이를 잘 알기에 리메이렌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 인질로 보내지만 그 마음 또한 지옥이었을 것이다.

 

도둑질은 토비들만 행하지 않았다북양군도 시진의 사람들에게는 토비만큼 악랄하고폭력적이었다당연한 듯 시진 사람들의 음식을 축내고기녀들을 무지막지하게 탐하며아편에 취해 휘청거린다악랄한 얼굴로 횡포를 부리든웃는 얼굴로 횡포를 부리든 토비와 군은 시진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폭력자들이었다.

 

시진에 남겨진 사람들은 토비가 휩쓸고 간 후 그들의 고문 방식을 잘 견디는 사람을 가려내는 대회를 연다어처구니가 없다게다가 잔인한 이 대회에 통탄하는 일부 사람들의 항의에 마을의 유지는 '불안한 민심'을 가라앉힐 수 있다며 대회를 정식으로 인정한다경악스럽다폭력 속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발현되는 광기가 가히 공포스럽다인질로 잡혀간 사람들도남아서 그들을 기다린 사람들도그들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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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그곳 '원청'은 겸손함과 과묵함을 가진 선한 남자 린샹푸에게는 행복을 실현시켜 줄 미지의 공간이었다하지만 원청은 린샹푸를 속이기 위해 아창이 거짓으로 만들어 낸 곳이다.

 

'원청을 찾아 헤매는 린샹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의지를 가지고 찾다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사랑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함포기하지 않는 열정의 모습 말이다하지만 린샹푸는 영원히 그곳에 닿지 못한다. '원청'은 존재하지 않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만들어 낸 공간임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 그곳을 그리워하는 샤오메이를 통해 애달픈 슬픔을 느낀다린샹푸의 사랑을 알기에버리고 온 딸을 사랑하기에 존재하지 않는 도시 '원청'이 그리웠던 것이다그곳이 존재한다면 린샹푸가 자신을 되찾고자신은 린샹푸를 따라 딸과 함께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자신을 기다리는 아창 때문에 린샹푸의 금괴를 들고 떠난 샤오메이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본다그녀의 끊지 못한 미련이 결국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게 아닐까아창은 그녀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다처음부터 그는 즉흥적이었다언제나 즉흥적이었다어려움에 직면할 때 맞서 해결하려하기 보단 도망갔던 아창은 비겁하다그의 비겁함은 샤오메이에게 여러 번 상처를 남긴다상하이 홍등가에서 몸을 팔아서라도 아창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는 샤오메이는 반복되는 상처에도 끝까지 아창을 버리지 못한다미련 때문일 수도 있고 연민 때문일 수도 있다하지만 그녀는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려는 의지보다는 그녀를 이용해 쉽게 살아가려 했던 아창을 그 순간 버렸어야 했다아프지만 결단의 시간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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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는 샤오메이의 죽음을 말하며 개인적인 아픔은 슬프나사회의 혼란 때문에 겪게 되었을 도탄과 파탄에 빠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안도한다격변의 시기 중국 안의 많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상처 받았으나상처 또한 받아들이고 나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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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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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

에리크 뷔야르열린책들

 

에리크 뷔야르 장편소설 714』 은 호불호가 확실한 작품이 될 것이다이 작품은 목적이 다분하며목적을 알고 접근해야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책이 된다콩쿠르상 수상 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역사 속 억압받고착취 당했던 인물들을 조명하는 작가이다그의 여정은 프랑스 혁명 속 기록되거나 기록되지 못하고 잊혀져 버린 민중의 이름을 나열한 714』 로 정점을 이룬다세상을 바꾼 혁명은 지식인과 혁명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는 우리의 시선을 여지 없이 일깨워준다세상을 바꾼 혁명의 주인공은 사회의 변화를 가장 바랬던 대중이며 시민이었다.

 

 

1789년 714일 시민들은 바스티유를 점령하였다바스티유는 전제정치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곳으로 1783년 철학자 랑케가 과도한 유지비용을 폭로하며 폐쇄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던 곳이다이후 1789년 이곳에는 7명의 죄수밖에 없었다당시 프랑스는 대기근을 겪고 있었다다들 굶어 죽어 갔던 것이다기근은 시민들을 폭도로 만들었다시민들에게는 7명의 죄수를 수용하기 위해 바스티유에 소비되는 세금이 불합리하게 여겨졌을 것은 당연하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진흙과 판자로 지은 집에서 불도 없이 얼어 빠진 짚 의자에 싸구려 빵을 씹으며 살았다이런 삶 자체도 참을 수 없는데 또 급여가 깎일 것이라 한다그들은 울화통이 터질 수 밖에 없었다. (p.14)그들의 삶과는 너무도 다른 방탕하고 화려한 부자와 귀족들의 삶을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기록되거나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만큼 집요하게 나열한다단어와 문장만으로도 불공평하고 불합리함이 느껴진다문장만으로도 느껴지는 공정하지 못함을 직접 대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던 그 시대의 대중이 품었을 분노가 이해된다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신들의 노동이 극소수의 귀족과 왕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에 쓰이는 것도 화가 날 일인데 쓸데없는 전쟁과 사치로 위기에 빠진 국가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노동을 또다시 착취하겠다하니 분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삼부회'를 결성하여 국민의회를 만들어놓고서는 평민대표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으려 한 국왕과 귀족들의 행태는 뻔뻔하다이쯤되면 봉건제도의 폐지는 자업자득이다스스로의 무덤을 왕족이나 귀족들은 시끄럽고 요란하게 파고 있었던 것이다국왕이 국민의회를 무력으로 해산하려 하자 시민들은 바스티유로 돌진한다.

 

그 곳에는 12세 남자아이훗날 혁명의 마지막 바리케이드를 세운 흑인배운 것은 없으나 무리를 이끌 줄 아는 사람을 포함하여 수많은 군중이 브뤼헐의 그림 속 등장하는 사람들의 무리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으리라작가 에리크는 그들의 자잘하고 다양한 직업은 물론 서로 다른 이름들을 모두 호명하고 있다에리크의 호명으로 시민들은 혁명을 이끈 군중의 무리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모두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난다작가는 까짓것 이름 별거 아니지만 이름을 부름으로 인해 그들이 그날 태양을 보고일하고먹고 마시고 파리를 행진했던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었음을(p.94) 독자에게 되새겨준다.

 

작가는 '수백 명의 남자가 남긴 흔적은 미비하나 전해지는 반면여자의 경우는 몇몇의 이름만 남아 있으며그마저도 푸대접을 받아 성은 사라지고 주소생일출생지는 흔적조차 없다' (p.99)고 지적한다그녀들의 기록이 남아있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녀들의 참여가 무시되면 안됨을 작가가 되새겨 주어 다행이다.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이끈 수많은 군중은 프랑스 역사 속에서 언제나 이름없는 단역이었을 것이다그들의 분노는 일상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이었으나 삐뚤어지고 잘못된 관습과 제도를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그들은 아주 조금만 배부르고아주 조금만 공평했어도 작은 한숨으로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매일처럼 열심히 살아갔을 것이다결국 그들이 분노했다는 것은 사회가 미친듯이 부패하고 잘못되었었다는 것이다.

 

'바스티유를 습격한 폭도들은 도개교 문의 조금만 구멍에서 쪽지 하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p.169)그들은 그 편지가 그들을 착취한 상대들의 사과 편지이길지난 날을 반성하며 앞으로 함께 나누자는 편지이길 바랬다하지만 군중은 절벽 저쪽에 있는 그 편지를 볼 수가 없었다과연 그 편지는 사과의 편지였을까사과의 편지였길 군중들이 바랬을 것이라는 묘사가 마음 아프다.

 

바스티유 습격 이후 군중에게 남은 것은 훗날 아무도 들춰보지 않을 종이 속 기록 뿐이었다하지만 작가는 그들이 그 시간 그곳에서 바스티유를 파괴하고 허물며 신나는 괘감을 느꼈으리라 표현하며 일상의 고민들을 그들이 한순간 잊을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역사상 전례없이 가장 요란하고 가장 행복하며 또한 혼란스러운 밤이었을 것이다.(p.203)

 

 

 

714』 은 1989714일 하루 동안 바스티유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다루었다이야기를 이끄는 주요 인물이나 사건이 없어 다소 생소하고집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문장들이다하지만 작가가 이름 석자로만 남겨진 바스티유 사건의 군중들 모두를 호명하며 자유를 향했던 그들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기 위한 과정임을 이해하니 작품의 가치가 달라졌다지금 우리에게도 작가가 행한 구체적인 조명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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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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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ㅣ 문예출판사

 

'동서고금이라는 사자성어는 동양과 서양옛날과 지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저 먼 곳 유럽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창작된 작품 게르버를 읽으며 '동서고금'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여기 이곳이나 저 바다 건너 먼 곳이나, 21세기인 지금이나 100전인 오래 전이나 학교와 학생의 대립억압과 자유에 대한 열망권위주의와 경쟁의 숨막힘은 변함이 없었다.

 

사색적이고 총명하며비열하고 권위주위적인 것에 조롱을 보낼 만큼 대범한 소년 게르버는 8학년 졸업 학기를 앞에 두고 변화한다그의 변화는 권력자 쿠퍼 교수의 노골적인 모욕과 교수의 계략으로 졸업에서 낙제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졸업을 위한 게르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절대 강자 쿠퍼 교수의 음모는 계속되고적자생존의 경쟁은 부추겨지며부당하고 이기적인 행동은 기회가 되는 교실을 보며 게르버는 자멸한다.

 

교실의 절대 강자임을 당연시 여기며학생을 먹잇감 혹은 자신의 절대적인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수학 교수 게르버밥맛이며 끔찍하다그는 정확한 판단력으로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깨닫고자신의 힘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발휘되는 것을 인지하여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학교 안에서 누리는 찌질이였다.

 

문제는 학교 안 모두가 그의 찌질함과 그의 비겁함과 그의 불공정함을 알면서도 아무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다그들이 잘못됨을 알면서도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는 불편한 번거로움을 감수하기 보다는 잠깐 자세를 바꾸어 이 세상을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로 참아내고상황에서 벗어나길 기다리고벗어난 후에는 망각의 장치를 발휘하여 잊어버리게 된다이런 우리 모두의 안일함이 사회의 오랜 모순과 불합리함을 굳건하고 단단하게 만듬을 이상한 선생 쿠퍼를 통해 깨닫는다.

 

작품 속 게르버의 친구 바인베르크가 한 말을 우리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자신의 일만 아니면 상관할 것 없다는 비인간적인 친구들에게 그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우리 중 한 사람에게 일어난다면그건 더는 개인의 일이 아니야라고 말한다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부당함이라 생각하며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시험과 평가라는 압박은 청춘들을 병들게 한다친구는 우정을 나누는 대상이 아니라 이겨야 하는 적으로 만들고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비굴한 사과를 함으로써 폭력을 정당하게 만들어 버린다그럼에도 자신들을 병들게 하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내야 하니 어찌 그들이 미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답답한 노릇이다청춘들의 답답함이 사리지기 위해선 학교가 신나고 공정한 경쟁함께 하는 성장이 가능한 곳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더 이상 '학교때문에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게르버'들이 생기지 않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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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김사과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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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현역 작가 23인의 소설 생각 ㅣ 작가정신

 

 

김사과김엄지김이설박민정박솔뫼백민석손보미오한기임현전성태정소현정용준정지돈조경란전희란최수철최정나최진영하성란한유주한은형한정현함정임...23인의 현역 작가들이 '소설쓰기'와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그들의 치열한 쓰기는 소설에 대한 사랑고백이다.

 

 

소설을 '가짜 이야기라며 펌하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그들에게 여기 이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생각을 전하고 싶다간극 사이의 무수한 서사를 통해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소설이 가진 힘이라고 작가들은 말한다그 힘을 믿기에 그들은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김이설 작가의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은 쓰기'를 위해 홀로서는 여성의 이야기로 기억된다멋진 문장들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그래서인지 23인의 작가 중 김이설 작가의 소설쓰기에 대한 문장들이 더 와닿았다.

 

 

김이설 작가는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는 작가이다그녀에게 있어 쓰기는 우선 시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야 나아갈 수 있는 작업이다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이 자는 시간 혹은 저희들 끼리 엄마없이 잘 놀아줄 때를 놓치지 않고 끄적였다고 한다다분히 분절적인 쓰기였다고 작가는 회상한다그래서 근래 아이들이 자란 후 생기게 된 쓰기에 할애할 수 있는 일정한 시간에 그녀는 감사함을 느낀다그녀는 이제 황금같은 여섯 시간을 매일매일 쓰기에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그러자 마감을 어기는 일 없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며마감없는 글쓰기도 가능해졌다고 한다창작이 가능한 시간이 생기게 된 것을 서술하는 그녀의 문장들에는 행복감이 묻어있다김이설 작가의 문장들을 좋아하는 독자로써 앞으로도 그녀에게 충분한 쓰기의 시간이 주어지길 바래본다.


 

2022년 1029일 믿을 수 없는 일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믿을 수 없는 일로 인해 우리의 청춘들이 삶을 마감했다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합동분향소에는 사진도 이름도 없이 하얀 꽃만 가득했다누구를 애도하고 누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자리인 것일까왜 그들은 평생 불린 이름도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없이 위로받아야 했던 것일까 생각해 본다.

 

 

그들의 하나하나에게는 그들만의 다양한 서사가 존재했을 것이다그것이 존재했기에 개별의 모습으로 추모받아야 함을 이 자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그들에게 소설읽기를 권하고 싶다소설 작품 속 인물 하나하나에 부여되는 서사를 통해 모든 이들의 삶은 서로 다르며 다르기에 특별해진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정소현 작가는 너무도 일찍 한글을 깨쳤기에 경험하지 않아도들추어보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영특한 아이였다고 한다영특함은 그녀를 둔감하고 관조적인 아이로 자라게 하기도 했다구조를 파악하고원인과 결과를 유추해낼 수 있었기에 오만함도 장착하고 있던 그녀는 자유로운 글쓰기보다는 요약 정리가서술형보다는 단답형이상상화 보다는 사생화가 좋았다그런 그녀를 변하게 한 것은 1994년 폭염 속 소설 읽기였다고 한다.

 

 

소설을 읽음으로 인해 작가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다양하고모든이의 삶에는 그들 개인의 소중한 희로애락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모래사장 속 한알 모래도 함께 모래 사장을 채우고 있지만 개별의 작은 자신만의 시간은 존재한다모두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모습도 소중하다. 1994년에 자신이 아는 게 다인 줄 알았던 소통 불능의 여학생이 소설을 통해 타인을 이해했듯이 우리도 소설을 통해 타인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를 통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소설쓰기에 대해 알 수 있었다그들 모두 힘겹지만 자신의 작업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들의 노동이 인정받지 못하고치열하더라도 그들의 문장이 엮어내는 다양한 폭의 파장으로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길 소설을 사랑하는 한 명의 독자로써 바래본다언제나 그들을 응원하고최진영 작가의 고백처럼 나도 언제나 소설을 좋아할 것이며소설을 좋아하는 나를 좋아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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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인입니다 - 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대하여
노라 크루크 지음, 권진아 옮김 / 엘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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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인입니다

노라 크루크 ㅣ 엘리

 

 

미국에는 '오바마 추천 도서'가 있고한국에는 '문재인 추천 도서가 있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종종 자신이 읽은 책을 언급한다그가 언급하는 도서들은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읽기를 가능하게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이 작품 [나는 독일인입니다]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도서여서 읽게 되었다.

 

 

[나는 독일인입니다]의 저자 노라 크루크는 전후 독일 2세대이다전 세대가 진행했던 전쟁에 대해 지금 독일의 젊은 세대가 가지는 생각과 시선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그들은 계속해서 독일이 진실을 위해 나아가고전쟁에 대해 세상을 향해 고개 숙이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전쟁의 상처를 가진 민족의 후세대인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공감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글자로만 이루어진 서사가 아니라 사진과 편지실제 서류들로 이루어진 서사라 더욱 실제감이 느껴진다저자 본인의 가족을 통해 전쟁에 어떤식으로든 기여하고 참여했던 가족들에 대한 남겨진 사람들이 가지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가 자신의 선대를 마주하는 모습은 다양한다죄의식의 모습으로부정하고 싶은 회피의 모습으로핑계를 찾는 합리화의 모습으로 그녀는 자신의 할아버지이모삼촌을 대한다그 모습 모두에 공감이 간다.

 

저자는 그림동화를 인용하며 '인과응보'에 대해 전달하고 있다그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합리화 될 수 없으며그 어떤 경우에도 차별과 폭력은 용서할 수 없는 행동임을 말하며 자신들이 '자기 연민'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지 말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제는 대면하여 물을 수 없는 전쟁 참여자들에게 그들이 전쟁에 참여한 이유와 전쟁에 참여했을 때 자랑스러웠는지 묻고 있다그러면서 그때의 선택이 실수였다 하더라도 자신의 실수와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올바른 죄의식이라고 말하고 있다또한 남겨진 후세대들이 자신들과는 무관했던 선택들이지만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음을 토로한다수치심과 대답을 들을 수 없는 많은 질문들은 그녀에게 역사를 올바르게 알아야 함을 깨우치고 오랜 세월 떠나있던 조국 독일을 다시 찾게 한다.

 

과거의 상처에 대해 지난 일인데 들추어서 여러 사람을 아프게 할 필요가 없다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하지만 저자는 그럴수록 들추어 잘잘못을 제대로 따지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고 올바르게 나아가는 행동임을 작품 속 모든 페이지에서 말하고 있다.

 

지우려고 해도 어딘가에 기록으로기억으로 남아있는 과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생각하게 해주는 읽기였다그녀가 겪었던 제2차 세계 대전은 물론 한국 전쟁과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폭력과 미해결 사건이 우리에게도 존재한다저자가 제시한 대로 직면하여 올바르게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또한 벌어진 곳을 잘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없애지 못하는 틈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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