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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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

에리크 뷔야르열린책들

 

에리크 뷔야르 장편소설 714』 은 호불호가 확실한 작품이 될 것이다이 작품은 목적이 다분하며목적을 알고 접근해야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책이 된다콩쿠르상 수상 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역사 속 억압받고착취 당했던 인물들을 조명하는 작가이다그의 여정은 프랑스 혁명 속 기록되거나 기록되지 못하고 잊혀져 버린 민중의 이름을 나열한 714』 로 정점을 이룬다세상을 바꾼 혁명은 지식인과 혁명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는 우리의 시선을 여지 없이 일깨워준다세상을 바꾼 혁명의 주인공은 사회의 변화를 가장 바랬던 대중이며 시민이었다.

 

 

1789년 714일 시민들은 바스티유를 점령하였다바스티유는 전제정치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곳으로 1783년 철학자 랑케가 과도한 유지비용을 폭로하며 폐쇄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던 곳이다이후 1789년 이곳에는 7명의 죄수밖에 없었다당시 프랑스는 대기근을 겪고 있었다다들 굶어 죽어 갔던 것이다기근은 시민들을 폭도로 만들었다시민들에게는 7명의 죄수를 수용하기 위해 바스티유에 소비되는 세금이 불합리하게 여겨졌을 것은 당연하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진흙과 판자로 지은 집에서 불도 없이 얼어 빠진 짚 의자에 싸구려 빵을 씹으며 살았다이런 삶 자체도 참을 수 없는데 또 급여가 깎일 것이라 한다그들은 울화통이 터질 수 밖에 없었다. (p.14)그들의 삶과는 너무도 다른 방탕하고 화려한 부자와 귀족들의 삶을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기록되거나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만큼 집요하게 나열한다단어와 문장만으로도 불공평하고 불합리함이 느껴진다문장만으로도 느껴지는 공정하지 못함을 직접 대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던 그 시대의 대중이 품었을 분노가 이해된다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신들의 노동이 극소수의 귀족과 왕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에 쓰이는 것도 화가 날 일인데 쓸데없는 전쟁과 사치로 위기에 빠진 국가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노동을 또다시 착취하겠다하니 분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삼부회'를 결성하여 국민의회를 만들어놓고서는 평민대표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으려 한 국왕과 귀족들의 행태는 뻔뻔하다이쯤되면 봉건제도의 폐지는 자업자득이다스스로의 무덤을 왕족이나 귀족들은 시끄럽고 요란하게 파고 있었던 것이다국왕이 국민의회를 무력으로 해산하려 하자 시민들은 바스티유로 돌진한다.

 

그 곳에는 12세 남자아이훗날 혁명의 마지막 바리케이드를 세운 흑인배운 것은 없으나 무리를 이끌 줄 아는 사람을 포함하여 수많은 군중이 브뤼헐의 그림 속 등장하는 사람들의 무리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으리라작가 에리크는 그들의 자잘하고 다양한 직업은 물론 서로 다른 이름들을 모두 호명하고 있다에리크의 호명으로 시민들은 혁명을 이끈 군중의 무리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모두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난다작가는 까짓것 이름 별거 아니지만 이름을 부름으로 인해 그들이 그날 태양을 보고일하고먹고 마시고 파리를 행진했던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었음을(p.94) 독자에게 되새겨준다.

 

작가는 '수백 명의 남자가 남긴 흔적은 미비하나 전해지는 반면여자의 경우는 몇몇의 이름만 남아 있으며그마저도 푸대접을 받아 성은 사라지고 주소생일출생지는 흔적조차 없다' (p.99)고 지적한다그녀들의 기록이 남아있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녀들의 참여가 무시되면 안됨을 작가가 되새겨 주어 다행이다.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이끈 수많은 군중은 프랑스 역사 속에서 언제나 이름없는 단역이었을 것이다그들의 분노는 일상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이었으나 삐뚤어지고 잘못된 관습과 제도를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그들은 아주 조금만 배부르고아주 조금만 공평했어도 작은 한숨으로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매일처럼 열심히 살아갔을 것이다결국 그들이 분노했다는 것은 사회가 미친듯이 부패하고 잘못되었었다는 것이다.

 

'바스티유를 습격한 폭도들은 도개교 문의 조금만 구멍에서 쪽지 하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p.169)그들은 그 편지가 그들을 착취한 상대들의 사과 편지이길지난 날을 반성하며 앞으로 함께 나누자는 편지이길 바랬다하지만 군중은 절벽 저쪽에 있는 그 편지를 볼 수가 없었다과연 그 편지는 사과의 편지였을까사과의 편지였길 군중들이 바랬을 것이라는 묘사가 마음 아프다.

 

바스티유 습격 이후 군중에게 남은 것은 훗날 아무도 들춰보지 않을 종이 속 기록 뿐이었다하지만 작가는 그들이 그 시간 그곳에서 바스티유를 파괴하고 허물며 신나는 괘감을 느꼈으리라 표현하며 일상의 고민들을 그들이 한순간 잊을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역사상 전례없이 가장 요란하고 가장 행복하며 또한 혼란스러운 밤이었을 것이다.(p.203)

 

 

 

714』 은 1989714일 하루 동안 바스티유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다루었다이야기를 이끄는 주요 인물이나 사건이 없어 다소 생소하고집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문장들이다하지만 작가가 이름 석자로만 남겨진 바스티유 사건의 군중들 모두를 호명하며 자유를 향했던 그들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기 위한 과정임을 이해하니 작품의 가치가 달라졌다지금 우리에게도 작가가 행한 구체적인 조명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한 [열린책들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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