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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평점 :
『게르버』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ㅣ 문예출판사
'동서고금' 이라는 사자성어는 동양과 서양, 옛날과 지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저 먼 곳 유럽,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창작된 작품 『게르버』를 읽으며 '동서고금'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여기 이곳이나 저 바다 건너 먼 곳이나, 21세기인 지금이나 100전인 오래 전이나 학교와 학생의 대립, 억압과 자유에 대한 열망, 권위주의와 경쟁의 숨막힘은 변함이 없었다.
사색적이고 총명하며, 비열하고 권위주위적인 것에 조롱을 보낼 만큼 대범한 소년 게르버는 8학년 졸업 학기를 앞에 두고 변화한다. 그의 변화는 권력자 쿠퍼 교수의 노골적인 모욕과 교수의 계략으로 졸업에서 낙제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업을 위한 게르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절대 강자 쿠퍼 교수의 음모는 계속되고, 적자생존의 경쟁은 부추겨지며, 부당하고 이기적인 행동은 기회가 되는 교실을 보며 게르버는 자멸한다.
교실의 절대 강자임을 당연시 여기며, 학생을 먹잇감 혹은 자신의 절대적인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수학 교수 게르버. 밥맛이며 끔찍하다. 그는 정확한 판단력으로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깨닫고, 자신의 힘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발휘되는 것을 인지하여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학교 안에서 누리는 찌질이였다.
문제는 학교 안 모두가 그의 찌질함과 그의 비겁함과 그의 불공정함을 알면서도 아무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잘못됨을 알면서도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는 불편한 번거로움을 감수하기 보다는 잠깐 자세를 바꾸어 이 세상을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로 참아내고, 상황에서 벗어나길 기다리고, 벗어난 후에는 망각의 장치를 발휘하여 잊어버리게 된다. 이런 우리 모두의 안일함이 사회의 오랜 모순과 불합리함을 굳건하고 단단하게 만듬을 이상한 선생 쿠퍼를 통해 깨닫는다.
작품 속 게르버의 친구 바인베르크가 한 말을 우리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일만 아니면 상관할 것 없다는 비인간적인 친구들에게 그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우리 중 한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그건 더는 개인의 일이 아니야" 라고 말한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부당함이라 생각하며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시험과 평가라는 압박은 청춘들을 병들게 한다. 친구는 우정을 나누는 대상이 아니라 이겨야 하는 적으로 만들고,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비굴한 사과를 함으로써 폭력을 정당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자신들을 병들게 하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내야 하니 어찌 그들이 미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한 노릇이다. 청춘들의 답답함이 사리지기 위해선 학교가 신나고 공정한 경쟁, 함께 하는 성장이 가능한 곳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학교' 때문에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게르버'들이 생기지 않길 바래본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 투데이’를 통한 ‘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