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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평점 :

『원청』
위화 ㅣ 푸른숲
[허삼관매혈기]의 작가 위화가 8년 만에 발표한 『원청』은, 왜 위화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인지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책장이 거침없이 넘어갈 만큼 막힘없이 읽히며, 문장마다 호탕함과 대범함이 느껴진다. 집필에만 23년이 걸렸다는 이 작품은 청나라로 대변되는 구시대가 저물고 중화민국이 시작되는 1900년대 초반 대격변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이 방대함 만큼 다양한 주제로 읽힐 수 있는 요소가 많다. 미지의 도시 '원청' 을 찾아 헤맨 린샹푸의 삶을 통해 격변했던 중국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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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샹푸는 어느 날 홀연히 왔다가, 두 번이나 홀연히 사라진 샤오메이를 찾아 그들의 딸을 포대기에 안고 그녀가 말한 '원청'을 찾아 길을 나선다. 하지만 원청은 찾을 수 없었고, 그녀의 말씨와 비슷하다고 느껴진 시진에서 그는 그녀를 기다리기로 한다. 그녀를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시진의 린샹푸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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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가 무너지며 기근과 사회의 혼란을 틈타 생겨난 토비들이 시진의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간다. 어미 없이 아비의 손에 키워진 린샹푸의 딸 린바이자는 린샹푸의 동업자인 천융량의 아내 리메이렌에게는 딸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를 지키기위해 리메이렌은 인질로 잡힌 린바이자를 대신해 자신의 큰 아들 천야오우에게 대신 인질이 되라고 말한다.
전쟁과 사회의 혼란 속에서는 도덕보다 생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지며 인간들은 잔인해진다. 인간들의 잔인함은 상처를 남기며 , 상처는 약한 존재들에게 더 치명적이 된다. 이를 잘 알기에 리메이렌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 인질로 보내지만 그 마음 또한 지옥이었을 것이다.
도둑질은 토비들만 행하지 않았다. 북양군도 시진의 사람들에게는 토비만큼 악랄하고, 폭력적이었다. 당연한 듯 시진 사람들의 음식을 축내고, 기녀들을 무지막지하게 탐하며, 아편에 취해 휘청거린다. 악랄한 얼굴로 횡포를 부리든, 웃는 얼굴로 횡포를 부리든 토비와 군은 시진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폭력자들이었다.
시진에 남겨진 사람들은 토비가 휩쓸고 간 후 그들의 고문 방식을 잘 견디는 사람을 가려내는 대회를 연다. 어처구니가 없다. 게다가 잔인한 이 대회에 통탄하는 일부 사람들의 항의에 마을의 유지는 '불안한 민심'을 가라앉힐 수 있다며 대회를 정식으로 인정한다. 경악스럽다. 폭력 속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발현되는 광기가 가히 공포스럽다. 인질로 잡혀간 사람들도, 남아서 그들을 기다린 사람들도, 그들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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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그곳 '원청'은 겸손함과 과묵함을 가진 선한 남자 린샹푸에게는 행복을 실현시켜 줄 미지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원청은 린샹푸를 속이기 위해 아창이 거짓으로 만들어 낸 곳이다.
'원청' 을 찾아 헤매는 린샹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의지를 가지고 찾다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사랑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함, 포기하지 않는 열정의 모습 말이다. 하지만 린샹푸는 영원히 그곳에 닿지 못한다. '원청'은 존재하지 않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만들어 낸 공간임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 그곳을 그리워하는 샤오메이를 통해 애달픈 슬픔을 느낀다. 린샹푸의 사랑을 알기에, 버리고 온 딸을 사랑하기에 존재하지 않는 도시 '원청'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곳이 존재한다면 린샹푸가 자신을 되찾고, 자신은 린샹푸를 따라 딸과 함께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자신을 기다리는 아창 때문에 린샹푸의 금괴를 들고 떠난 샤오메이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녀의 끊지 못한 미련이 결국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게 아닐까. 아창은 그녀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다. 처음부터 그는 즉흥적이었다. 언제나 즉흥적이었다. 어려움에 직면할 때 맞서 해결하려하기 보단 도망갔던 아창은 비겁하다. 그의 비겁함은 샤오메이에게 여러 번 상처를 남긴다. 상하이 홍등가에서 몸을 팔아서라도 아창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는 샤오메이는 반복되는 상처에도 끝까지 아창을 버리지 못한다. 미련 때문일 수도 있고 연민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려는 의지보다는 그녀를 이용해 쉽게 살아가려 했던 아창을 그 순간 버렸어야 했다. 아프지만 결단의 시간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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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는 샤오메이의 죽음을 말하며 개인적인 아픔은 슬프나, 사회의 혼란 때문에 겪게 되었을 도탄과 파탄에 빠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안도한다. 격변의 시기 중국 안의 많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상처 받았으나, 상처 또한 받아들이고 나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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