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둔은 그린게이트 광장의 아버지 가게 위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자그마한 잡화점에서는 못, 핀, 압정, 클립, 용수철, 병뚜껑, 문손잡이, 전선, 유리병 조각, 큰 나뭇조각 등, 요모조모 쓸모가 있을 법한 자질구레한 물품들을 팔았다.

 둔은 늘 가게에 먼저 들러 아버지를 보고 갔는데, 오늘은 그냥 집으로 올라갔다. 대화를 나눌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둔은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 담긴-대부분 구두 굽인 듯했다-양동이 두 개를 소파 위에서 치워 버리고는 쿠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발전기를 한 번 보고 파악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니, 그는 그동안 너무 어리석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평생토록 발전기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둔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둔은 늘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자부해 왔다. 둔은 전기의 원리를 터득해서 엠버를 구해 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둔은 하큰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를 수없이 상상했다. 엠버 시를 구해 낸 둔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에 시민 모두가 참석하고, 둔의 아버지는 맨 앞줄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둔이 자라는 동안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넌 착하고 영리한 아이지. 네 녀석은 언젠가 꼭 엄청난 일을 해낼 거야. 네가 그럴 수 있다는 걸 난 알고 있단다.”

 그런데 둔은 지하 배관터널의 더러운 흙탕물 속에 꼼짝없이 갇혀 며칠만 지나면 도로 새고 고장 날 게 뻔한, 배관에 난 구멍 때우는 일 따위를 계속해야 하는 신세였다. 그 일은 심지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보다 더 부질없고 따분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불쑥 화가 치밀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발밑에 놓인 양동이에서 구두 뒷굽을 꺼내 들어 힘껏 내던졌다. 구두 굽이 문가로 날아가는 바로 그 순간에 문이 열렸다. ‘철썩!’하는 소리와 ‘아얏!’ 하는 외마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그때 둔은 문간에 서 있는 아버지의 마르고 피곤에 찌든 얼굴을 보았다.

둔의 분노가 차츰 잦아들었다. “아! 제가 던졌어요, 아버지. 죄송해요.”

둔의 아버지가 옆머리를 문질렀다. 둔의 아버지는 키가 훤칠하고 껍질 벗긴 감자 같은 대머리였으며, 이마가 높고 턱은 길었다. 그의 회색 눈은 상냥스러우면서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

“내 귀를 정확히 맞혔더구나. 뭐였지?” 아버지가 물었다.

“잠깐 화가 나서요. 여기 있는 구두 굽 하나를 집어 던졌어요.” 둔이 대답했다.

“그렇구나.” 아버지는 의자 위에 널려 있는 병뚜껑들을 쓸어 내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출근한 첫날인데,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네.” 둔이 대답했다.

 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 “아버지에게 그 일을 이야기해 주지 않겠니?”

 둔은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둔이 이야기를 끝마치자 아버지는 있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매끈하게 다듬으려는 듯 손을 대머리 위로 가져가 쓰다듬었다.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그렇구나” 하고 말문을 열었다. “반갑지 않은 이야기라고 할 수밖에 없구나. 발전기에 대해서는 특히-그건 정말 나쁜 소식이야. 하지만 배관 수리는 어쨌든 네가 맡은 일인 만큼 다른 길이 없단다. 네가 맡은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게 너의 의무야. 게다가 말이다. 맡은 일을 하면서 네가 무엇을 하는지가 사실…… 더 중요하지, 안 그러냐?” 아버지는 둔을 향해 웃었지만 약간 슬퍼 보였다.

“그렇겠지요.” 둔이 말했다. “하지만 제가 거기서 뭘 할 수 있을까요?”

“글쎄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하지만 너는 뭔가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야. 너는 영리한 아이니까. 중요한 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란다. 모든 것을 세심히 눈여겨보고 사람들이 예사로 보아 넘기는 것에 주목하거라. 그러다 보면 아무도 모르는 사실들을 찾아내게 될 테고 그것들은 분명 쓸모가 있을 거야.” 아버지는 외투를 벗어 벽에 달린 옷걸이에 걸었다. “벌레는 좀 어떠냐?” 아버지가 물었다.

“아직 살펴보지 못했어요.” 이렇게 말하고 둔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곧장 낡은 스카프로 감싼 작은 나무 상자를 들고 나왔다. 둔은 상자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스카프를 걷었다. 둔과 아버지는 허리를 굽혀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흐늘거리는 양배추 이파리 몇 장이 상자 밑바닥에 놓여 있었고, 그 이파리들 가운데 한 장 위에서 3센티미터 정도 되는 벌레가 꼼지락거렸다. 학교를 졸업하기 며칠 전 둔은 저녁 때 먹으려고 양배추 잎을 자르다가 잎 안쪽에서 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창백하고 부드러운  초록빛을 띠고, 몸 전체가 비단처럼 부드러우며, 다리는 작고 통통한 벌레였다.

 벌레들은 언제나 둔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둔은 벌레들을 자세히 관찰한 내용을 공책에 기록했고, “꿈틀거리고 날아다니는 것들”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둔은 공책의 매쪽마다 한가운데를 세로로 나누었고, 그 왼쪽 칸에 바늘 끝처럼 뾰족한 연필로 세밀화들을 그렸다. 식물의 줄기처럼 뻗은 나방 날개의 혈관 무늬, 미세한 털과 갈고리 모양의 작은 발을 가진 거미 다리들, 이마에 더듬이를 달고 반들반들한 갑옷을 입은 딱정벌레 등등. 그리고 오른쪽 칸에는 이러한 생물들에 대해 그가 알아낸 내용들을 적었다. 무엇을 먹는지, 어디서 자는지, 어디에다 알을 낳는지, 그리고 알아낸다면, 얼마나 오래 사는지 등에 관한 관찰기를 기록했다.

하지만 날쌔게 움직이는 나방과 거미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곤충들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아내고 싶다면 훤히 트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놓아둔 채 잽싸게 훔쳐보면서 그들의 생태를 포착해야 한다. 상자 안에 가두면 벌레들은 대개 며칠 동안 미친 듯이 기어 오르내리고 날아다니다가 이내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벌레는 어딘가 달랐다. 둔이 마련해 준 상자 안에서의 생활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 같았다. 여태껏 이 벌레는 단 세 가지 일만 했다. 먹고, 자고(벌레가 눈을 감는지, 아니 눈이 있기는 한지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잠은 자는 것 같았다), 아주 작고 검은 똥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일, 그뿐이었다.

 “벌레를 키운 지 이제 5일이 지났어요.” 둔이 말했다. “제가 처음 잡았을 때보다 두 배나 더 커졌어요. 양배추 잎을 사방 5센티미터 넓이만큼 먹어 치웠고요.”

 “모든 걸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니?”

 둔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지하 배관터널 안에서 일하면서 새롭고 흥미로운 벌레들을 좀 더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어쩌면요.” 둔은 대답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는 다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 난 매일같이 지하 배관터널 안을 빈둥거리고 배회하며 물이 새는 구멍이나 때우고, 벌레들 따위를 잡으러 다니면서, 위급상황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지낼 수는 없어. 그 아래에서 중요한 뭔가를 찾아내야만 해.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반드시 찾아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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