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번 터널로 가기 위해서는 엠버 시 곳곳에 물을 실어 나르는, 녹이 슬고 단단한 배관을 따라 늘어선 터널 길을 복잡하게 거쳐 가야 했다. 터널 바닥에는 군데군데 물이 고인 웅덩이가 있었고, 벽면을 타고 갈색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주터널과 똑같이 천장에 붙은 전선줄에 달랑달랑 매달린 전구들에서 어둠침침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둔은 지하로 얼마나 깊이 내려왔을까 따져보는 데 골몰했다. 강에서 주터널 천장까지는 적어도 10미터가량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위로 높이가 6미터 정도 되는 저장창고가 한 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둔은 지금 엠버 시에서 지하로 15미터 이상 내려온 장소에 서 있으며, 몇 톤의 흙과 바위와 건물 들이 그 위에 놓여 있는 셈이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둔은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힘이 들어가며 바짝 긴장이 되었다. 둔은 금방이라도 흙더미가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 재빨리 머리 위를 힐끗 쳐다보았다.

 “자, 이곳이야.” 알린이 말했다. 그녀는 벽에서 정면으로 곧장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배관 구멍 옆에 서 있었다. “먼저 밸브를 돌려서 잠그고 배관을 분리한 다음, 새로운 연결관으로 교체하고 다시 이어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해.”

 두 사람은 렌치와 망치, 그리고 와셔(볼트나 너트로 물건을 죌 때 너트 밑에 끼우는 둥글고 얇은 쇠붙이-옮긴이)와 끈적거리는 검은 액체를 가지고 물에 흠뻑 젖어 가며 일을 했다. 오전 내내 이 일에 매달려야 했던 둔은 엠버 시가 의심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형편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곧 끊어질 듯한 전기 공급과 얼마 안 되어 바닥을 드러낼 것 같은 보급품의 부족뿐만 아니라, 상하수도 설비마저 무너지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힘없이 부서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단 한 사람이라도 대비책을 세우고 있기는 한 걸까?

점심 휴식시간이 되자, 알린은 연장 허리띠에 딸린 주머니에서 점심 도시락을 꺼내 들고 몇 개의 터널 너머에 떨어져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넌 여길 지키도록 해.” 그녀는 자리를 뜨며 일러 두었다. “이 주변을 무턱대고 돌아다니다간 분명 길을 잃게 될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둔은 알린이 사라지자마자 곧바로 자리를 떴다. 건네받은 지도를 이용해 주터널로 돌아오는 길을 확인한 다음 둔은 동쪽 끝 지점까지 서둘러 갔다. 둔은 발전기를 볼 수 있는 특별허가를 받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둔은 혼자 힘으로 발전기실까지 길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했고, 결국 그렇게 해냈다. 둔은 발전기실 앞에 가만히 서서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뚱뚱한 여자가 점심이 든 봉투를 들고 문을 밀어젖히며 밖으로 나오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는 둔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문이 도로 닫히기 전에 둔은 안으로 살짝 미끄러져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끔찍한 소음에 둔은 휘청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소리는 귀청이 찢어질 것처럼 날카롭고, 으르렁 거리고, 끼익끼익 째졌고, 털거덕대는 쉰소리 가운데 칙칙칙, 굵고 낮은 소리가 함께 들렸다. 둔은 손으로 두 귀를 틀어막고 앞으로 걸어갔다. 둔 앞에 2층 건물 정도 높이의 거대한 검은 기계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기계가 어찌나 심하게 흔들거리고 몸부림을 치는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귀마개로 귀를 막은 사람들 몇몇이 기계 주변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일하고 있었지만 둔이 들어오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둔이 그들 중 한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자, 그는 뛸 듯이 놀라며 돌아다보았다. 거무스름한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파인,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발전기에 관해서 배우고 싶습니다!” 둔은 이렇게 소리 질렀으나,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이런 엄청난 소음 속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둔을 잠깐 노려보더니, 성가시다는 듯 손으로 내쫓는 시늉을 하고는 돌아서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둔은 그대로 서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기계 옆에는 바퀴가 달린 사다리가 여러 개 놓여 있었고, 높은 곳에 달린 부속에 접근하려는 일꾼들은 그 사다리를 타고 아래위로 오르내렸다. 발전기실 바닥에는 온통 기름으로 범벅이 된 것 같은 깡통이며 도구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벽에 기대어 놓은 큰 통들 안에는 갖가지 종류의 볼트와 나사, 전동장치, 지레와 장대, 그리고 튜브 등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새까만 더께를 뒤집어쓰고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일꾼들은 연장통들과 발전기 사이를 바쁘게 돌아다니거나,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서서 발전기가 덜덜덜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몇 분 뒤, 둔은 그곳을 빠져 나왔다. 둔은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둔이 여태껏 연구해 온 모든 것들은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는 일이었고, 그러한 원리 탐구는 둔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였다. 둔은 낡은 시계를 작은 부속 하나하나까지 낱낱이 분리한 다음 그것을 정확히 원래대로 짜 맞출 수 있었다. 부엌에 있는 수도꼭지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도 완전히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 변기를 여러 차례 수리한 경험도 있었다. 또한 오래된 안락의자를 변형하여 바퀴 달린 수레를 만들기도 했으며, 냉장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이치에 관해 어렴풋하게 생각해 내기도 했다. 둔은 기계를 잘 다루는 자신의 재능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이런 둔조차 감도 잡지 못하는 단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전기’였다. 전선을 따라 흐르고, 전구 안으로 흘러 들어와 빛을 밝히게 하는 그 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둔은 발전기를 단 한 번만이라도 관찰할 수만 있다면 필요한 실마리를 충분히 찾아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것으로부터 엠버 시의 불빛이 영원히 밝게 빛날 수 있도록 해결책 찾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둔은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발전기를 한 번 본 것만으로 둔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분명히 깨달았다. 둔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발전기의 작동 과정을 보게 되리라 기대했었다. 바퀴가 돌아가고, 불꽃이 튀고, 서로 다른 지점들을 연결하는 전선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둔은 괴물같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이 기계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를 아는 이가 이들 중 단 한 명이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마치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단지 기계가 산산조각 부서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쓸 뿐인 것 같았다.

 둔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둔이 위층으로 올라와 장화와 작업복을 벗어놓고 있을 때, 둔은 발전기실에서 만났던 노인을 발견했다. 둔은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제게 발전기에 대해 설명 좀 해 주실 수 있으세요?” 둔이 물었다. “발전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게 알려 주시겠어요?”

 노인은 한숨만 내쉬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강물이 발전기를 움직인다는 것뿐이라네.”

 “하지만 어떻게요?”

노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누가 알겠나? 우리 일이란 게 그저 발전기가 망가가지 않도록 유지할 뿐인 걸. 부속품이 부서지면 새로운 부속을 갖다가 바꿔 끼우고, 부품이 굳어서 작동을 멈추면 거기다 기름을 치는 것이 고작이라네.” 노인이 지친 듯 손으로 이마를 훔치자 검은색 기름 줄무늬가 생겼다. “나는 20년 동안 발전기 관련 일을 해 왔지.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칙칙폭폭 잘 작동해 왔다네. 하지만 올해는…… 나도 모르겠어. 마치 몇 분마다 발전기가 붕괴하고 있는 것 같으니.” 노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얼마 안 가서 전구가 동이 날 거라는 소문은 나도 들었다네. 그렇게 되면 발전기가 작동하든 안 하든 크게 상관이 없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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