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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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그 전개와 결말을 알고서도 다시 찾게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르 귄의 소설이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수십년 전 대학생 때 도서관에서 처음 접한 이래로 몇 차례 더 완독했던 ‘어둠의 왼손’은 저에게 큰 즐거움과 마음의 양식이 되었고 이 인연은 결국 르 귄 전작주의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인친님의 게시글에서 이 소설을 보니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수십만 년 전, 헤인인들은 테라로 불리는 지구를 포함한 수많은 세계를 식민화 하였으나,헤인 문명이 모종의 이유로 붕괴하면서 각 세계들은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서로를 잊게 됩니다. 이후 성간 여행과 동시 통신이 가능한 앤서블이 발명되며 새로운 인류 연합 에큐멘이 등장하고 이들은 인류가 거주하는 모든 행성을 연합하고자 합니다. 테라 출신인 겐리 아이는 에큐멘의 특사로서 게센의 국가들에게 연합 가입을 촉구하는 임무를 부여 받고 단신으로 행성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곳은 혹독한 추위의 겨울 행성으로, 이곳의 인류는 평소에는 무성으로 지내다 26일을 주기로 성별의 변화가 가능한 ‘케메르’라고 하는 독특한 생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위와 케메르는 게센인의 사회와 문화, 역사 전반에 걸쳐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천년 전 전기를 발명했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 문명을 이룩하고 사회 역시 문명 수준에 맞는 고도로 복잡한 정치 사회로 발전한 게센은, 그러나 폭력성이 드러나는 대규모 군대와 전쟁, 탐험심의 발로인 장거리 이동 수단 등 남성적인 특성이 거의 없어 보통의 인류의 발전사와 매우 이질적인 면모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겐리 아이는 처음 도착한 게센의 국가인 카르히데의 왕과 만나기 위해 고위 관리인 에스트라벤의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현 당일 겐리는 왕국 내 복잡한 정치 파벌간의 반목으로 아스트라벤이 반역죄로 추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왕은 에큐멘 연합 가입을 거부합니다. 낙담한 겐리는 몇 달간의 여행 후, 이웃 나라 오르고레인에 합류를 제안하려 했으나 이곳에서 그는 모종의 정치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극지의 노동 수용소로 보내지게 됩니다. 한편, 에스트라벤은 겐리의 처지를 아게 되어 그를 탈옥시키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인적이 없는 극한의 장소를 경유하는 80여일 간의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됩니다. 과연 그들은 무사히 카르히데에 도착하여 게센을 에큐멘의 일원이 되게 할 수 있을까요?

평소에는 무성인이나 일정 주기마다 성행위와 임신이 가능해지는, 상대에 맞추어 남성 혹은 여성이 될 수 있는 인류라는 설정은 지금 보아도 파격적인데,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1970년대에는 얼마나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지 짐작이 갑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발표 이후 극찬을 받으며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 수상한 SF 장르문학에서의 업적과 별개로, 당시에 불타오르던 페미니즘 논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페미니즘에 심취하여 ‘성(性)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쓴 소설이었습니다. 각기 장단점이 있는 남성과 여성의 특성이 제거된 사회는 어떻게,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고 실험인 것이죠. 소설의 중심 인물인 겐리 아이와 에스트라벤의 관계와 심리 변화에 주목하며 이 소설을 읽는다면 르 귄의 페미니즘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첨언하자면, 이 소설은 반 페미니즘과 페미니즘 양쪽에서 모두 공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녀는 소설 서두에 삽입된 40주년 기념 서문에 과거의 실착을 겸허히 인정하고 변화된 자신의 페니미즘에 대한 생각을 적어두었으니 이 또한 참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둠의 왼손은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도교와 불교를 연상시키는 게센의 종교와 사상, 게센인의 성적 특성에서 비롯된 독특한 개념인 관계에 있어 평등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한 시프그레소, 소설의 1/3에 걸쳐 묘사되는 겐리와 에스트라벤의 극지 탈출기, 1인칭 서술과 보고서와 편지, 신화의 구술 등이 뒤섞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스타일 등 우리 독서가들에게 기쁨과 영감을 주는 요소의 향연이 펼


쳐지니, 우리의 눈과 귀를 호강시켜줄 것임을 보장합니다!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함께 있다.

케메르를 맹세한 연인처럼,

마주 잡은 두 손처럼,

목적과 과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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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웬디고 - 코즈믹 호러, 만물의 의식에 가닿다
앨저넌 블랙우드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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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와 코즈믹 호러의 창시자 러브크래프트는 생전에 정말 많은 작가들과 서신을 통해 교류했으며, 이 책의 저자인 앨저넌 블랙우드의 작품을 ‘이제껏 쓰인 가장 훌륭한 초자연 소설’이라며 극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블랙우드와는 랜선친구 사이였던 셈이죠. 러브크래프트는 극찬으로도 모자라 아예 자신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메인 테마인 ‘코즈믹 호러’를 대표하는 ‘크툴루’를 이 딘편소설집에 등장하는 ‘버드나무’에서 따왔습니다. ‘버드나무’는 주인공과 친구의 다뉴브 강 카누 여행기인데, 그들은 여행 도중 숙박하게 된 모래섬에서 강물이 불어나며 조난당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카누의 노와 식량이 사라지고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리는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이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게 되는데, 이 초자연적인 현상은 ‘마치 살아있는 듯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며 공포의 감각을 건드리는 ‘버드나무 숲’에 의해 극대화 되며 주인공과 친구를 광기로 몰아넣게 됩니다. 이 ‘알 수 없는 우주적 힘’이 오늘날에도 장르 문화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크툴루 신화’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작품집에는 버드나무 외에도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설에 등장하는 악마의 괴물을 모티브로 한 ‘웬디고’ 외에도 도시에서의 공포와 스릴러를 다룬 ‘엿듣는 자’, ‘막스 헨직’의 네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러브크래프트의 명성에 가려 있으나 필력만큼은 그를 뛰어넘는 블랙우드의 대표작을 ‘코스믹 호러’ 입문작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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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 - 셀럽과 스타가 탄생하고, 백화점과 루이 뷔통과 샴페인이 브랜딩의 태동을 알리던 인류의 전성시대
심우찬 지음 / 시공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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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 언제인지 물어본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어린 시절이었다고 답할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고, 잠깐의 여흥으로도 마냥 기분 좋았던 그 시절 말입니다. 희망이 나의 모든 정신을 지배했던, 내일은 반드시 오늘보다 좋아질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나갔던 그 시절이 저는 정말 그립습니다. 저에게 어린 시절은 이번에 소개할 책의 주제이기도 한 ‘벨 에포크’와도 같았던, 아름다웠던 시대입니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을 지닌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유럽의 특정 시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쟁이 없어 평화롭고, 산업혁명으로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사람들이 무척이나 낙관적이었던, 모든 사람이 예술로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낭만으로 인생을 살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배우 사라 베르나르, 보석과 유리 디자이너 르네 랄리크, 화가이자 장식 예술가 알폰스 무하, 소설가이자 언론인 에밀 졸라, 패커(여행객들의 짐을 전문적으로 포장해주는)이자 트렁크 제조업자 루이 뷔통, 사진작가 펠릭스 나다르, 발레리노이자 안무가 바슬라프 니진스키, 살롱의 지배자 그뤠필 백작부인 등 우리가 아는, 또는 생소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벨 에포크 시대를 빛나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아름다움의 빛에 심취했습니다.

벨 에포크는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산업 혁명으로 촉발된 기술과 산업의 발전은 예술이라는 촉매와 결합하여 인류에게 전에 없을 정신과 물질의 풍요로움을 안겨주었고, 상류층만 향유할 수 있었던 예술의 문호가 일반 대중에게도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포스터, 광고, 삽화, 광고전단에서 아름다운 무하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고,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을 관람하며, 만국박람회에서 출품된 최신 제품을 봉 마르셰 백화점에서 구매하고, 살롱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실내악과 시낭송을 감상하는 ‘예술의 대중적, 상업적 소비’가 가능해진 것이며, 이는 열광하는 셀러브리티와 스타와의 콜라보로 탄생한 명품을 백화점 웨이팅을 해서라도 구매해야 하는 현대의 신인류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벨 에포크에 열광하는 것은 ‘유행은 돌고 돈다’는 진부한 말과 찬란했던 옛 시절의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그 시절은 우리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인류의 전성시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두 이 책을 펼치고 순수한 아름다움의 세계로 빠져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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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공가의 행운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길(도서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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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일반 대중에게는 그저 ‘프랑스에서 가장 불효자는?’이라는 넌센스 퀴즈의 답으로 거론될 정도로 존재감이 매우 낮은 에밀 졸라는, 세계적인 대문호이자 그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알린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한, 행동하는 지식인이기도 했습니다. 국장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수만 명의 군중이 몰려 그를 애도하였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제르미날’에 감명받은 탄광 노동자들이 수시간 동안 ‘제르미날’을 연호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생의 대표작인 ‘루공 마카르 총서’는 아직도 완역되지 않았는데, 저는 그 이유가 그의 이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빅토르 위고,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르셀 프루스트, 프랑스와즈 사강,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아나톨 프랑스, 알베르 까뮈, 오노레 드 발자크, 기 드 모파상, 조르주 페렉… 얼마나 ‘프랑스’적이고 아름다운 이름들입니까! 그런데 왜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만 하필 그렇게 들리는건지...!

최근 ‘목로주점’, ‘제르미날’,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등 졸라의 주요 저작을 번역하였던 박명숙 님이 에밀 졸라의 필생의 역작 ‘루공 마카르 총서’의 대망의 1권인 ‘루공가의 행운’을 번역 출간하여, 당연하게도 바로 구매하여 들뜬 마음으로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루공 마카르 총서’는 ‘프랑스 제2 제정 하의 한 가족의 자연적, 사회적 역사’라는 주제로 아델라이드 푸크라는 이름의 여성이 루공, 마카르와 각각 결혼하여 낳은 후손들의 5개에 걸친 이야기를 다룬 방대한 시리즈 물입니다. 아델라이드 푸크와 정원사인 ‘루공’과 결혼하여 낳은 피에르 루공과 그 자손들은 상류층이 되어 푸크의 장손인 피에르의 부와 욕망을 물려받고, 그녀와 알코올중독자 밀렵꾼인 마카르와 동거하여 낳은 앙투안 마카르, 위르실 마카르와 그 자손들은 하류층이 되어 가난과 유전적 결함을 물려받습니다. 루공과 마카르 가문이 물려받은 바로 이 유산이 시리즈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되어 후손들의 다사다난한 인생사의 천형으로 작용하는 것이죠.

‘루공가의 행운’은 이 가문의 유산의 시원(始原)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푸크의 적자이자 별볼일 없던 소심한 기름장수인 피에르 루공이(그러나 권력과 부에 대한 욕망은 그 누구보다도 드높은)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초대 대통령인 루이 나폴레옹의 친위 쿠데타와 이에 대항하는 공화파와 민중의 봉기가 뒤섞였던 극도로 혼란했던 사회인 제2 제정 성립기에 어떻게 기회를 잡고 성공했는지를 적나라해 보여줍니다. 피에르의 조카인 열렬한 공화주의자 실베르와 연인인 본능적이고 순수함 그 자체인 미예트가 봉기군을 따라 나섬에 따라 맞이하는 허탈한 죽음은 그가 혈육을 짓밟고 얻어낸 권력과 부의 행운과 비교되며 그 비극성이 배가됩니다. 루공가의 행운은 상기 두 인물 외에도 가문의 시조이자 후손들의 원형인 아델라이드 푸크의 일생, 가문의 그 어떤 유산도 물려받지 않고 객관적으로 가족들의 행태를 관찰한 피에르 루공의 아들인 파스칼 루공, 아내와 자식들에게 빌붙어 살며 폭력을 일삼았던 마카르 가의 장남인 앙투안 마카르 등 가문의 초기 세대 인물들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루공 마카르 총서’의 프리퀄로서 에밀 졸라의 팬이라면 꼭 구매해야 할 책인 것이죠. 팬으로서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가문의 혈연관계와 등장인물들이 총서의 어떤 소설에 등장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에밀 졸라가 첫 소설을 집필하기도 전에 작성하고, 총서 완간 이후 최종 수정하여 발표한 ‘계통수’가 실려 있다는 점입니다.

계통수를 보니 아직 번역되지 않는 작품 목록이 눈에 띕니다. 제가 죽기 전까지는 꼭 모든 작품을 읽고 소장할 수 있기를.

#루공가의행운 #에밀졸라 #도서출판길 #루공마카르총서 #루공마카르 #프랑스문학 #문학 #책리뷰 #책읽기 #내돈내산 #국내초역 #서평 #도란군 #도란군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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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떨어진 남자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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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테비스는 할리우드의 신성 안야 테일러 조이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퀀스 겜빗’의 원작 소설 작가로 국내에 처음 알려졌는데, 퀸즈 겜빗과 본서를 포함 무려 네 작품이나 영상으로 각색되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소설가입니다. 드라마 공개 이후 국내 번역되었던 퀸즈 겜빗과 본서를 포함한 그의 대표작 5편 시리즈를 신생 출판사가 야심차게 내놓았으나 큰 주목은 받지 못했습니다. 국내 SF 장르 문학 저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하는데, 그 유명한 듄 시리즈조차 모든 책의 알라딘 기준 세일즈포인트를 모두 모아도 10만점이 안되는게 현실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릅니다.

핵전쟁으로 절멸의 위기에 처한 행성 안테아에서 남은 자원을 쥐어짜 간신히 만든 1인용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도착한 안테아인 뉴턴. 그는 안테아의 우월한 기술과 지식을 이용하여 지구에서 부를 쌓은 후, 이를 이용해 우주선을 건조하여 안테아인들을 멸망 위기의 행성으로부터 지구로 탈출시키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지구에서의 상대적으로 높은 기온과 강한 중력과 태양광에 극도로 취약한 안테아인의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뉴턴은 오로지 사명감 하나만으로 고향 행성에서부터 오랜 기간 지구인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아 인간들의 의심을 사지 않는 수준이 되는 데 성공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의 도움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큰 부를 축적하여 우주선을 건조하기 시작한 뉴턴은 그러나, 지구에서의 삶이 갈수록 힘겨워만 갑니다. 신체적인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아닌, 지구인과의 정신적,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절망감은 그를 은둔하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나락으로 빠지게 하는데… 과연 뉴턴은 얼마 남지 않은 안테아인들을 모두 지구로 데려와 지구인과의 공존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SF의 단골 소재인 ‘퍼스트 컨택트’, 즉 외계문명과 지구문명의 첫 만남은 대부분 두 종류의 양상-적대적인(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또는 우호적인(드니 뵐니브 감독 컨택트) 만남-으로 전개됩니다. 반면에 ‘지구에 떨어진 남자’는 같은 퍼스트 컨택트 장르임에도 외부로 드러나는 두 세력의 갈등이나 협력이 아닌, ‘개인의 심리적 양상’을 주제로 선택하였습니다. 월터 테비스는 외계 문명 속에서 철저히 외부자일 수 밖에 없는 뉴턴의 입장에서, 지구를 이해해보려는 그의 노력이 끝내 좌절되는 과정에서 그가 겪는 심리적 변화와 절망을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한 시각과 인간적인 묘사로 그려냅니다. 그럼으로 인해 인간보다 오히려 인간다운 뉴턴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 인간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아름답고 비옥한 세상에서 당신들이 하려는 짓을 보고 있으면 무척 경악스럽습니다.”라는 말로 인간을 격하게 비난했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에게 의지하고 인간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뉴턴의 경고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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