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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4월
평점 :
이 소설은 작가인 세스지가 일본의 소설 창작 사이트에 석 달간 올렸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와 관련된 괴담들’의 게시글을 편집하여 출간한 작품입니다. 긴키 지방은 일본 혼슈 서부 지역을 광범위하게 일컫는 지역명으로, ‘수도에서 가까운 지역’을 의미하며, 교토가 수도였던 시절의 지명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경인 지역’인 셈이죠.
소설의 서두는 친구가 실종되어 재보를 받고 있다는 호소로 시작됩니다. 작품의 중심은 1에서 4의 넘버링으로 이어지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들인데, 자신을 본서의 작가와 동일한 ‘세스지’라고 칭하는 화자와 호러 잡지의 의욕적인 신참 편집자가 되어 소속 회사가 과거에 다루었던 긴키 지방 괴담을 파헤치다 실종된 ‘오자와’군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중심글 사이에 이 잡지의 단편, 독자 투고글 및 편지, 인터뷰 녹취, 인터넷 정보 수집글, 심령 전문 인플루언서의 심령스팟 탐사 스레 등이 무작위로 배치되는데, 그 내용도 하교 길에 행방불명된 소녀, 수련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숙소 베란다에서 보이는 산속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의 목격담, 유명 심령 스팟인 터널에 들어가 라이브 방송을 하던 인플루언서의 돌변, 호기심에 찾아간 심령 스팟에서 목격한 얼굴만 내밀고 무슨 말을 지껄이던 남자가 자신의 일상에서 계속 목격되자 패닉에 빠져 버린 대학생, 입지 찢어질 만큼 활짝 웃으며 2층까지 점프하는 여자, ‘기다리는 거야’라고 말하며 항상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 있던 모친이 윗층의 자살자가 끔찍하게 추락한 장면을 ‘생글생글 온화하게’ 웃으며 지켜보던 어머니, 크고 흰, 사람처럼 생긴 동물과 같은 존재를 산에서 목격한 아이, 신자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는 ‘스피리추얼 스페이스’라는 교단의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편집자의 잠입 취재기 등으로 가지각색입니다. 그러나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괴담들이 모두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며, 독자는 화자의 친구가 실종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인상 깊게 느꼈던 점은, 분명 소설임을 알고 읽기 시작했음에도 점차 느끼게 되는 사실감이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흔한 인터넷 괴담 정도 수준의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작가인 세스지가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와의 연관성을 집요하게 강조하며 점차 현실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여러 지역에 걸쳐 있는 엄청나게 넓은 공간에서 ‘있을법한 유사한’ 사건이 계속 벌어지니 독자들은 이를 ‘그럴 듯’하다고 인지하게 되는 것인데, 감정을 자극하고 단순화되고 반복적이며 99%의 거짓에 1%의 진실만을 담은 괴벨스의 선동에 나치 독일 치하의 국민들이 넘어갔던 것과 유사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획득한 리얼리티는 정체가 불분명한 화자와 친구의 실종의 미스터리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게 되며, 마침내 목도하게 되는 이 모든 것의 근원에 독자는 진실로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의 화자의 독자를 향한 고해는 이 공포감의 마지막에 도돌이표를 추가하게 됩니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괴담을 다시 읽게 되며 느끼게 되는 소름은, 나도 소설 속 에피소드에 등장한 희생자들처럼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자포자기의 심정이 발로인 것입니다. 웰메이드 모큐멘터리 호러 소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관하여’를 읽고 다같이 저주에 빠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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