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헝거 게임 시리즈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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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잘어치는 별로 싫지 않았다. 군사적 관점으로 볼 때 흥미로웠다. 그러나 모킹제이는 뭔가 혐오스러웠다. 그들이 즉흥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자연이 미쳐 날뛰는 일이다. 그들은 죽어 없어져야 했고 빨리 죽어야 했다. (p.467)



적들을 벌할 수 있는,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그들이 내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방법을 고안하라는 게 숙제였어. 마치 퍼즐 같았지. 나는 퍼즐을 잘 풀어. 그리고 모든 좋은 창작물이 그렇듯 핵심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순해. 헝거 게임. 가장 사악한 충동을 영리하게 스포츠 행사로 포장한 거시. 엔터네인먼트로 만든 거야. (p. 575)



헝거 게임 시리즈의 메인 빌런 코리올라누스 스노우는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어 반란을 억제하고 수많은 정적들을 독살로 제거하며 수십년간 독재자로 군림한 엄청난 능력자입니다. 그러나 정작 본편에서 그 능력을 직접 발휘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죠. 이는 본편이 캣니스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형식적 특성과 그녀의 적대자가 서사적으로는 스노우 개인이 아닌, 판엠이라는 독재 국가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본편에서의 위상에 비해 과소평가되었던 그의 과거를 다룬 프리퀄이 만들어진 이유는 영화판 스노우 역의 고 도널드 서덜랜드의 열연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 덕분에 스노우 대통령은 엄청난 카리스마와 존재감을 자랑했고, 이 설정의 일부가 본서에 그대로 차용되었을 정도라고 할 정도니 말이죠. 그렇다면, 이 소설은 스노우 대통령의 어떤 과거를 담고 있을까요?



스노우 가문은 판엠의 명문가였으나 13개 구역과의 전쟁 당시 반란군의 기나긴 수도 봉쇄 기간 중 생존을 위해 가문의 재산을 모조리 써버렸고,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이 모두 사망하며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 남은 것은 쓸만한 자재는 모조리 떼어 써버려 폐허나 다름없는 아파트 한 채와 허울뿐인 캐피톨 아카데미 학생(명문가 자제면 무료 재학이 가능한)인 자신과 사촌 누이, 친할머니, 거기에 굶주림뿐. 그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금년 헝거게임에서 처음 도입되는 조공인에게 한 명씩 배정되며 아카데미 학생 중에서 선발하는 멘토 24인 안에 드는 것. 여기서 좋은 결과를 거두게 되면 대학 장학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그는 진심을 다했고, 결국 멘토로 선정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조공인은 가난한 12구역 출신 소녀 루시 그레이 베어드였습니다. 그녀는 추첨식에서 기이한 행동을 보이며 주목받았지만, 우승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연약한 소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녀의 생존을 위한 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캐피톨 시민에게까지 서로 죽이는 살인게임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인기가 없던 헝거 게임을 부흥시킬 방안을 찾아내라는 멘토 과제에 성실히 임해 스폰서십, 승자예측 도박, 우승자 포상 등의 규칙을 제출하여 호평을 받게 됩니다. 또한 루시 그레이의 신뢰를 얻기 위해 조공인들만 갇힌 우리 안을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나 이 시도는 별다른 신뢰는 얻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맙니다. 과연 스노우와 그레이, 두 소년 소녀는 각자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프리퀄을 만드는 목적이 팬심 충족이라면, 저는 이 책을 그 목적 이상으로 부합하는 잘 만들어진 소설로 정의하겠습니다. 실제로도 본편만큼은 아니지만 소설과 영화 모두 큰 인기를 얻었기도 하구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헝거 게임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비열한 독재자, 잔인한 데스게임에 환호하는 우매한 대중과 이에 편승하는 쇼 비즈니스 산업, 활을 든 소녀 영웅 등의 장르소설적 설정이 아니라, 스티븐 킹이나 빌 게이츠 등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극찬한 수잔 콜린스의 ‘엄청난 필력’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착착 감기는 찰진 대화들과 인물의 심리 묘사, 촘촘한 스토리 전개는 내가 지금 영 어덜트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진지한 순수 문학을 읽고 이는 건지 헷갈리게 합니다. 장르문학 치고는 조금은 가벼운 배경과 설정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헝거 게임 시리즈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데는 작가의 공이 절대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스노우와 함께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루시 그레이 베어드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는 반대로 말하면 작중 스노우가 엄청나게 매력적으로 그려졌다는 말이죠)과 초기 헝거게임의 모습이 적은 비중으로 그려졌다는 점 등입니다. 하지만 스노우 대통령의 다양한 과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사실상 스노우 원맨쇼인 이 소설, 읽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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