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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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양자 따위의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일컫는 ‘소립자’라는 독특한 제목이 인상적인 이 소설은, 프랑스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가인 미셸 우엘벡의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은 성풍속과 종교라는, 다시 말해 속된 것과 성스러운 것이라는 상반되는 두 주제에 대한 격한 비판으로 발표 당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서구사회를 뒤흔든 위대한 소설’, ‘20세기를 마무리하는 작품’ 등의 최고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수년 전에 이미 이 책을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이름값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읽는 것을 망설이다가 최근에 읽었던 제가 제일 좋아하는 러브크래프트의 거의 유일한 평전이 미셸 우엘벡의 첫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반가운 마음에 완독에 도전해보았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소립자’는 소설의 주인공인 뛰어난 생물학자인 미셸 제르진스키의 연구의 키워드이기도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서구 사회의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물질 만능주의와 풍속-특히 성과 관련한-과 사상의 급진적인 변화에 따라 계몽주의와 평등주의, 관념주의와 자유주의 등의 인류가 이상이 실현 불가능한 것임을 인식하게 됨에 따라 원초적 욕망과 쾌락을 쫓으며 파편화되어가는 개인-브뤼노와 그의 이복 동생 미셸로 대표되는-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작가인 브뤼노는 어렸을 적 왕따를 당했을 정도로 못난 외모와 왜소한 성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한 반발심으로 책임감 없는 성 자유주의자들을 경멸하나 그 자신은 성적 욕망의 실현에 모든 삶을 투자한 섹스중독자가 되었습니다. 타인과의 차이를 좁히기 위한 수단으로 섹스를 선택한 것이죠. 그는 이성과의 육체적 결합을 진정한 구원으로 여기며, 이를 통해 정신적 구원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결국 평생에 걸친 끊임없는 시도 끝에 완전한 파트너를 만나게 되었으나 상대방이 사고를 당해 신체적으로 불능이 되며 브뤼노의 꿈은 산산조각 나게 되며, 그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생물학자인 미셸은 여러 모로 브뤼노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성적 욕망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자연히 가져야 할 욕구가 대부분 결여된 인물이죠. 그가 추구하는 것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인위적으로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인류입니다. 그는 인류의 쇠퇴가 ‘유전적 차이’ 때문이라 보고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무성생식을 통한 새로운 인간종을 탄생시키고자 합니다. 서로간의 격차로 불행하기보다는 서로 같아지므로 합리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우월하다고 본 것이죠.

현대 인간 군상의 대표로 볼 수 있는 작중 두 형제와 그들 못지 않게 파편화된 주요 등장인물들은 그러나, 결국은 인간 보편 감정을 드러냅니다. 미셸은 자신을 키웠던 할머니의 죽음에 괴물처럼 오열하고, 브뤼노와 같은 섹스중독자였던 파트너 크리스티안은 죽음의 순간에 앞서 그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라며 속내를 토로하며, 브뢰노는 자신이 미친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으로 말이죠. 여러분 대다수가 이들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면, 미셸이 창조한 인간종은 아직은 인류에게 시기상조인 존재들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인간 대다수가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때는 그들이 등장할지도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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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도르프 연결공간
반-바지. 지음 / 김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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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동차 튜닝 취미에서 유래된 말인데 ‘대상이 되는 원본을 다양하게 변형한 것들을 접했거나 직접 변형시켜 보았지만 결국은 원본이 제일 낫다’라는 의미로 쓰이며, 지금은 ‘원본이 제일 좋다’라는 관용어구로 쓰이곤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SF 문학에 있어 ‘순정’은 ‘하드 SF’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드SF는과학기술이나 규명되지 않은 자연 현상 등의 자연과학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거나 이를 바탕으로 한 광범위한 규모의 사고실험을 다루는,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용어에 걸맞는 SF의 하위 장르입니다. 이미 수십년 전에 이 개념이 확립이 된 영어권이나 일본 SF계와 달리 한국에서는 SF문학의 최근의 대중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엄밀한 의미의 하드 SF 소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대중적인 인기가 오히려 하드 SF의 발전을 저해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SF 만화도 정말 좋아하는데, 한국 만화 역시 그 희소성이 더욱 심해서, 수십 년 전의 출판 만화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SF 만화는 거의 없는 것이 실정입니다. 그런데 하드 SF 단편 만화를 그리는 작가의 작품집이 북펀딩으로 나왔다니, 참여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디시인사이드 만화 갤러리를 거쳐 현재는 X와 개인 블로그를 통해 활동하는 ‘반-바지’-라는 가명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 국내에 거의 유일한 ‘하드-SF-만화-아마추어’ 작가입니다. 그가 2018년에 출간하여 큰 호응을 얻었던 ‘슈뢰딩거의 고양희’와 이후 그린 만화들을 모은 두 편의 단편집을 알라딘 북펀딩을 통해 출간했습니다. 그를 기억하고 있던 팬들은 즉시 환호했고, 1,695명이 참여한 6천여만원의 매출 및 목표금액을 5745% 초과 달성하며 알라딘 북펀드 역대 참여인원 기준 3위, 매출 기준 7위를 기록했습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나 박경리의 토지, 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등의 거대한 팬덤이 존재하는 책의 펀딩과 맞먹을 정도의 성과인데, 저와 같은 하드-SF-만화 매니아들이 이런 펀딩에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 잘 알 수 있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엽편 분량이 대부분인 이 책의 단편만화는 시간여행부터 인공지능, 외계문명, 안드로이드, 다중우주, 양자역햑 등 SF의 온갖 소재를 그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이고 따뜻하고 수다스럽게 풀어냅니다. 특히 ‘시간여행’ 관련 단편이 정말 많은데, 전통적인 출판만화 구도를 활용하여 컷 사이를 넘나든다던지, 왼쪽과 오른쪽의 모든 방향으로 보아도 스토리가 성립된다던지 하는 형식상의 참신함도 이 책의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남은 두말하면 잔소리죠. 다만 최소화된 채색과 필압의 조화가 돋보이는 극화체의 작화는 요즘 시대의 그것과는 거리감이 있으므로 감상에 주의를 요합니다. 수록된 작품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솔직히 재미가 없는 것도 있다는 점도 함께 말이죠.

작가의 SNS와 블로그에 가면 모든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참된 SF 장르의 독서가라면, 이 좁디 좁은 세상이 잘나가는 옆 세상처럼 언젠가는 창대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땅히 구매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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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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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 생물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의 지식을 결합하여 거시적인 관점에서 문명을 조망하여 이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탐구하는 ‘빅히스토리’ 서적-및 이런 종류의 벽돌책-은 내용의 방대함과 다양성, 전문성으로 인해 쓰는 것과 읽는 것 모두 매우 어려운 책 중 하나입니다. 나름 독서가라고 자부하는 저도 집에 쟁여 놓은 벽돌책이 한 아름인 경우가 많으니 말 다한 셈이죠. 취미를 영위함에 있어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산 이 책 ‘사피엔스’,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빅히스토리’ 책은 그 특성상 역사 등의 거시적인 관점이 주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그 좋은 예시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사피엔스, 즉 인간을 중심에 놓고, 인간이 지구의 역사에 지금까지 끼친 막대한 영향력과, 이제는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인간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결정론적 역사관-또는 역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사실-혹은 사실에 가까운-서술 방식과는 달리, 이 책은 문명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큰 주장과 이에 대한 해석과 정리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서술 방식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전문 지식과 사고력 수준이 낮은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있다는 장점과, 상당히 논쟁적일 수 있는 극단적인 주장과 이에 대한 나이브한 해석이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주장에 대한 근거의 서술이 논리적이라 해서 주장이 참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책을 읽는데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 저는 상반되는 주장이나 내용을 서술한 책을 병렬 독서로 읽곤 합니다. 예를 들어 이 책과 ‘총 균 쇠’를 같이 읽거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를 읽는 식으로 말이죠.

‘사피엔스’ 역시 상기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인지도와 엄청난 판매량 때문에 이런 반대의 목소리가 묻히고 있는 것일 뿐이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책에 대한 이런 비판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사피엔스’는 결국은 역사의 끝에 서게 될 인류의 미래에 대한 대담한 제언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는 그 해석과 관계없이 이미 벌어진 사실입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과감한 해석도 필요합니다. 이 책을 읽은 모든 이에게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볼 여지를 제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사피엔스’의 가치는 충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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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의 상자
정소연 지음 / 래빗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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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읽고 있는 책에서 아는 작품이나 작가가 언급될 때면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리뷰할 ‘미정의 상자’의 정소연 작가는 번역가로도 활동하는데, 알고 보니 제가 읽었던 여러 SF 소설-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어둠의 속도, 플랫 랜더, 허공에서 춤추다 등-이 정소연의 번역이었는데, 재미있게 읽은 작품도 있어 기회가 되면 다시 읽고 싶습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친한 지인을 만나게 되면 반가운 마음이 들게 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잠깐이라도 멈추어 근황을 묻고, 시간이 맞을 경우 약속을 잡게 되기도 합니다. 인간은 관계에 목말라 있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우리는 고독을 바라면서도 진실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문학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이런 ‘관계에 대한 탐구’가 주된 소재로 사용됩니다. ‘미정의 상자’처럼 말이죠.

[카두케우스 이야기-관계의 변화] 우주 공간 사이를 단숨에 건너갈 수 있는 비상점의 발견 이후 인류는 이를 통해 초광속 이동이 가능한 ‘도약’ 기술을 발명하였고, 인류는 우주 곳곳에 진출하게 됩니다. 이 기술은 ‘카두케우스’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어 모든 인류는 이 회사에 종속된 ‘카두케우스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회사의 탐욕스러운 자원 개발을 위해, 인간은 수백수천만의 덩어리로 비상점 너머의 행성에 던져져 생체 채굴 기계가 됩니다. 회사는 이들과 계약을 맺고, 이들이 캐내는 자원을 대가로 생계지원 프로그램을 수백 년 간 제공하는데, 광물이 고갈되면 이 프로그램은 종료되어 개척민들은 스스로 생존을 책임져야 합니다.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동생의 치료를 위한 의료 행성으로의 이사 때문에 우주 비행사의 꿈을 접은 소년, 조난당한 우주선을 구한 행동이 규칙 위반으로 결론이 나 최종 실기 시험에서 탈락한 우주 비행사 후보생, 도약을 할 때마다 발생하는 시간 지연 효과 때문에 며칠 전 작별 인사를 한 배우자가 재회의 순간마다 자신보다 늙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우주 비행사. 광막하게 늘어난 공간만큼 사람 사이의 관계의 밀도도 엷어지는, 그렇기에 관계에 목마르거나 또는 나의 꿈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파편화된 인간들. 정소연은 이야기합니다. 헤어지지만, 우리는 서로의 마음 속에 있다고. 그래서 우리의 작별은 가슴 시리도록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하다고.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관계의 상실] 펜데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시켰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지내던 이가 아프고 죽을 때 옆에 있을 수조차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슬퍼한 경험이 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 역시 상실을 경험합니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친구의, 가족의 아파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좌절합니다. 무너진 세상에서의 펜데믹은 이 무력감을 더욱 증폭시켰고 우리는 홀로 이 늪에 빠지게 되어 허우적거릴 체력과 정신조차 고갈되어 버렸습니다. 소설 속 미정이 사랑하던 유경을 떠나 보내고, 살기 위해 인적 드문 곳으로 떠나다 우연히 발견한 신비로운 ‘미정의 상자’는 상처받고 지친 미정에게 또다른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미정은 상자를 통해 과거로, 미래로, 현재로 나아가 그 가능성의 실현을 체험합니다. 관계의 상실을 치유하게 되는 것이죠.

미정은 상자를 통해 희망을 엿보고 위안을 받을 수 있었고, 이는 미정의 상자를 발견한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책을 읽은 이들 또한 정한 것이 없는 이 상자를 통해 크고 작은 관계의 변화와 상실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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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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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그 전개와 결말을 알고서도 다시 찾게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르 귄의 소설이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수십년 전 대학생 때 도서관에서 처음 접한 이래로 몇 차례 더 완독했던 ‘어둠의 왼손’은 저에게 큰 즐거움과 마음의 양식이 되었고 이 인연은 결국 르 귄 전작주의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인친님의 게시글에서 이 소설을 보니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수십만 년 전, 헤인인들은 테라로 불리는 지구를 포함한 수많은 세계를 식민화 하였으나,헤인 문명이 모종의 이유로 붕괴하면서 각 세계들은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서로를 잊게 됩니다. 이후 성간 여행과 동시 통신이 가능한 앤서블이 발명되며 새로운 인류 연합 에큐멘이 등장하고 이들은 인류가 거주하는 모든 행성을 연합하고자 합니다. 테라 출신인 겐리 아이는 에큐멘의 특사로서 게센의 국가들에게 연합 가입을 촉구하는 임무를 부여 받고 단신으로 행성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곳은 혹독한 추위의 겨울 행성으로, 이곳의 인류는 평소에는 무성으로 지내다 26일을 주기로 성별의 변화가 가능한 ‘케메르’라고 하는 독특한 생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위와 케메르는 게센인의 사회와 문화, 역사 전반에 걸쳐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천년 전 전기를 발명했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 문명을 이룩하고 사회 역시 문명 수준에 맞는 고도로 복잡한 정치 사회로 발전한 게센은, 그러나 폭력성이 드러나는 대규모 군대와 전쟁, 탐험심의 발로인 장거리 이동 수단 등 남성적인 특성이 거의 없어 보통의 인류의 발전사와 매우 이질적인 면모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겐리 아이는 처음 도착한 게센의 국가인 카르히데의 왕과 만나기 위해 고위 관리인 에스트라벤의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현 당일 겐리는 왕국 내 복잡한 정치 파벌간의 반목으로 아스트라벤이 반역죄로 추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왕은 에큐멘 연합 가입을 거부합니다. 낙담한 겐리는 몇 달간의 여행 후, 이웃 나라 오르고레인에 합류를 제안하려 했으나 이곳에서 그는 모종의 정치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극지의 노동 수용소로 보내지게 됩니다. 한편, 에스트라벤은 겐리의 처지를 아게 되어 그를 탈옥시키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인적이 없는 극한의 장소를 경유하는 80여일 간의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됩니다. 과연 그들은 무사히 카르히데에 도착하여 게센을 에큐멘의 일원이 되게 할 수 있을까요?

평소에는 무성인이나 일정 주기마다 성행위와 임신이 가능해지는, 상대에 맞추어 남성 혹은 여성이 될 수 있는 인류라는 설정은 지금 보아도 파격적인데,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1970년대에는 얼마나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지 짐작이 갑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발표 이후 극찬을 받으며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 수상한 SF 장르문학에서의 업적과 별개로, 당시에 불타오르던 페미니즘 논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페미니즘에 심취하여 ‘성(性)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쓴 소설이었습니다. 각기 장단점이 있는 남성과 여성의 특성이 제거된 사회는 어떻게,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고 실험인 것이죠. 소설의 중심 인물인 겐리 아이와 에스트라벤의 관계와 심리 변화에 주목하며 이 소설을 읽는다면 르 귄의 페미니즘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첨언하자면, 이 소설은 반 페미니즘과 페미니즘 양쪽에서 모두 공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녀는 소설 서두에 삽입된 40주년 기념 서문에 과거의 실착을 겸허히 인정하고 변화된 자신의 페니미즘에 대한 생각을 적어두었으니 이 또한 참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둠의 왼손은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도교와 불교를 연상시키는 게센의 종교와 사상, 게센인의 성적 특성에서 비롯된 독특한 개념인 관계에 있어 평등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한 시프그레소, 소설의 1/3에 걸쳐 묘사되는 겐리와 에스트라벤의 극지 탈출기, 1인칭 서술과 보고서와 편지, 신화의 구술 등이 뒤섞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스타일 등 우리 독서가들에게 기쁨과 영감을 주는 요소의 향연이 펼


쳐지니, 우리의 눈과 귀를 호강시켜줄 것임을 보장합니다!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함께 있다.

케메르를 맹세한 연인처럼,

마주 잡은 두 손처럼,

목적과 과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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